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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교회구원1-5] 에클레시아

한국교회허와실 정용섭 목사............... 조회 수 79 추천 수 0 2025.02.03 09: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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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dabia.net/xe/1098050 

[교회구원1-5] 에클레시아

 

2025년은 <교회 구원> 글쓰기로 시작합니다.앞으로 200번 정도는 나가게 되겠지요.

이런 글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글쓰기의 흐름에 비약이 있어서 따라 읽기 힘들다거나 성경구절 인용이 잘못되었다거나 너무 부정적인 표현이 많아서 불편하다거나 ...

고맙습니다. -정용섭 목사 

 

1.

 

2천년대에 들어서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줄었으며, 지금도 줄어드는 중이다. 각 교단 총회 보고서 통계에도 나타나고 실제 교회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줄어드는 속도가 가파르다. 인구절벽 현상이 우리나라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니까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그리스도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나라 교회도 어쩔 수 없긴 하다. 현대인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삶의 재미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까 굳이 종교 생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무신론적 경향도 여기에 한몫한다.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위축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세의 유럽처럼 그리스도교가 거의 국교처럼 군림하는 현상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 보면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소수의 남은 자가 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 하나님께서 어디 숫자와 크기와 세력으로 일하는 분이신가. 문제는 대한민국 교회가 실제로 ‘소수의 남은 자’처럼 신앙의 본질에 천착해서 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구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밝힐 뿐이니라.”(마 5:13)

개인이나 조직이나 집단이 위기에 처하면 일단 자신의 존재 이유나 정체성을 뒤돌아보는 게 우선이듯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정직하게, 끈질기게 붙들어야 한다. 사실은 위기를 맞기 전부터 이런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면 위기를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기를 맞더라도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당연하다고만 여길 뿐이지 교회 자체에 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이 없으면 대답도 찾지 못한다. 진리는 원래 그렇다. 질문만이 진리의 문을 연다. 가장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하자.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셨을까? 예수는 교회에 관해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제자들이 세운 것은 아닌가? 아니 제자들도 지금과 같은 교회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지금과 같은 교회가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2.에클레시아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의 서신에는 종종 나오나 복음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에만 두 번 언급되었다. 16:18절과 18:17절이다. 16:18절이 잘 알려진 구절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로마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근거로 베드로는 1대 교황이며 그 이후의 교황이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κκλησ?α)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교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영주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려고 각 지방의 책임자들을 소집하는 행위와 그런 모이는 과정이 바로 에클레시아다. 교회 언어가 아니라 세속 정치 언어였다. 그런 에클레시아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후 제자들에 의해서 교회를 가리키는 단어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교회는 곧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예수는 당연히 에클레시아를 모른다. 예수께서 그 단어를 베드로에게 사용했다는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공동체가 형성되던 시절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마태복음 기원후 80 전경에 기록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 본문이 기록된 ‘삶의 자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복음은 마태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고, 마가복음은 마가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으며, 누가복음은 누가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보다 눈에 뜨일 정도로 내용과 형식에서 크게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당시 시대정신인 그리스 철학으로 변증한 문서다. 그래서 첫 구절부터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이 로고스를 언급한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절과 14절)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그 시대의 역사적 한계나 세계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을 무시하고 성경에 나온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태도는 광신이지 진리에 토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다. 성경이 실제로 말하려는 핵심과 당시의 세계관을 혼동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렇죠. 저는 10년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30년 40년 전 기억으로 복음서를 썼으니 그걸 감안해야겠죠.-최용우

 

3.예수와 하나님 나라

 

기원후 40-60년대에 바울이 쓴 여러 편지에, 예를 들어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등등에 나오는 에클레시아가 이보다 훨씬 뒷날 기록된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아니라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공생애에서 선포한 첫 말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후 전개되는 예수 활동과 운명은 모두 하늘나라와 연결되었다. 만약 오늘의 교회가 근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우선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와의 관련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제자들은 교회를 조직했다는 어느 신학자의 말이 옳든 그르든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관련성을 찾지 않거나 그런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면 교회의 근본 토대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와 운명에 따르면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가 우선하기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신약성경 언어인 그리스어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βασιλε?α το? Θεο?)의 번역이다. 나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는 어떤 공간적인 영역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힘이다. 통치이고 다스림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곧 하나님 나라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한다. ‘하늘나라는 … 같다.’라는 표현을 반복하셨다. 거기에는 교황의 자리가 없다. 목사의 자리도 없고 당회원의 자리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 충만하다. 하나님의 통치에만 영혼의 중심 무게를 두었기에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어떤 여자를 용서하실 수 있었으며, 소위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둘째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잔치를 베풀 수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권력에 단호히 저항할 수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앞에 자신을 낮추면서 굴복시키고 있을까?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저는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모였던 시기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시기(주로 신약성경이 기록된 시기)를 '초기'교회로 보고  그후 4세기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기 전까지 카타콤에 숨어서 모였던 교회를 '초대교회'로 보고 그후 로마의 권력에 의해 의해 조직된 교회를 '로마교회'로 구분해 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교의 제의방식으로 재구성된 '로마교회'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초기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조직'이죠. 그럼에도 뾰쪽한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냥 '교회'로 모입니다.-최용우

 

4.하나님 나라와 천국

 

한국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천국이 더 익숙하다. 죽어서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국, 즉 하늘나라는 하나님 나라이기에 천국은 곧 하나님 나라다. 우리말 성경 번역자들이 똑같은 개념인 하늘나라(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와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를 각각 한자인 천국과 순수 우리말인 하나님 나라로 번역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 하나님 나라를 한자로 번역하면 신국이 된다. 한자로 통일하든지 우리말로 통일하든지 일치시켜야만 했다. 이런 불일치로 인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이 두 단어를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인다. 이런 오해가 쌓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교회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고 천국에는 관심이 크다.

천국은 죽어서 가야 할 어떤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일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이걸 눈치채고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 일상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은폐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걸 느끼지 못하고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을 꿈꾼다. 그들이 꿈꾸는 천국은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또는 그 이상의 복지 사회다.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도 않으며 모든 먹고사는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어서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천국이라면 나는 천국을 사양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아무리 잘 먹고 잘살면서 명예와 권력을 누려도 영혼의 만족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 교회는 일상에 은폐된 하나님의 다스림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죽어서 가게 될 하늘나라만 꿈꾸는가. 죽음 이후에는 하늘나라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올 것이다.

 

올해 '햇볕같은이야기' 글쓰기 주제가 '순수순혈복음'인데, 큰 챕터의 두번째 제목이 '천국은 하늘에 있는가?'입니다.^^ 3월과 4월 두달동안 제가 쓸 글의 주제와 완벽하게 일치된 글을 목사님이 먼저 써 주셨습니다.^^-최용우

 

5.일상 가운데 

 

하늘나라가 여기 우리의 일상에 은폐되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폐성을 가리킨다. 성경은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게 곧 은폐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것처럼 유추되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기는 한다. 천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메타포(은유)다. 하나님은 창조와 종말 전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기에 한순간을 사는 인간은 그분을 직접 대면할 수가 없다. 우리의 손바닥에 있는 박테리아가 우리를 직접 경험할 수 없듯이 말이다. 특히 사람은 시간과 공간에 지배당하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간접 경험만 가능하다. 우리 손바닥에 있는 박테리아가 우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손바닥 일부만은 경험할 수 있듯이 말이다. 부분적이고 간접적인 경험은 전체적이고 직접적인 경험과 차원이 다르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경험이 최선이다. 은유가 최선이라는 뜻이다. 그런 경험이 깊어지면 우리는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는 영광으로 나타나실 때 모세를 반석 틈에 숨기시고 손으로 그를 덮어서 보호하신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3) 구약 인물 중에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간 인물로 알려진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은 못 보고 등만 보았다. 하나님의 얼굴이나 등은 종교적 메타포다.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한 최선의 경우에 하나님의 등만 본다. 하나님의 등만 본 사람이 얼굴을 본 것처럼 떠벌리기도 한다. 사실은 하나님의 등을 보기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일상의 과잉으로 하나님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모세처럼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가운데서 살지는 못하나 자기 안에 갇히지 말고 세상과 일상을 열린 영혼으로 대하면 모세의 경험과 비슷한 경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일천한 제 경험으로는 '관상기도'의 방법으로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어 몸부림을 치다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관상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은 순전한' 상태가 되었을때, '일상' 가운데 숨어있는 하나님의 흔적이 보이는것 같더군요. (그냥 제 경험치입니다.)-최용우


댓글 '1'

최용우

2025.02.04 05:12:54

하나님을 만나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일천한 제 경험으로는 '관상기도'의 방법으로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어 몸부림을 치다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관상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은 순전한' 상태가 되었을때, '일상' 가운데 숨어있는 하나님의 흔적이 보이는것 같더군요. (그냥 제 경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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