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교회구원6-10] 하나님의 얼굴

한국교회허와실 정용섭 목사............... 조회 수 89 추천 수 0 2025.02.06 08:02:26
.........
출처 : http://dabia.net/xe/mark 

[교회구원6-10] 하나님의 얼굴

 

6.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등에 관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과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한 일상에서의 경험이다. 칠십이 넘은 지금도 나는 사시사철 일주일에 격일로 세 번씩 테니스장에 나간다. 시니어 동호회원들과 함께 뛰고 라켓을 휘두르면서 공을 따라다니다 보면 한겨울철에도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흐른다. 몸의 균형을 잡고 뛰면서 공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침팬지도 비슷한 몸동작을 훈련할 수는 있으나 그 훈련의 성과에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사람만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서 특별한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문화 활동 전체가 다 그런 능력이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이 고릴라는 아무리 잘 가르쳐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할 수 없으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노래할 수 없고,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릴 수 없고, 한강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만들 줄 모른다. 물론 포도주를 담글 줄 모르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릴 줄 모른다. 설거지를 비롯한 마당 눈 쓸기와 낙엽 태우기와 꽃밭과 텃밭 가꾸기를 못한다. 어설프게 흉내를 낼 수는 있으나 사람 수준에서 실행하지 못한다. 양쪽에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영장류 그들과 사람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만 일상에 은폐된 창조와 진화의 비밀 안으로 들어가서 누릴 줄 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만난다. 그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보석처럼 대하고 보살피면서 누린다. 그림자부터 시작해서 구름 한 점과 시장 바닥의 소음까지 모든 일상은 그들에게 생명의 신비로 경험된다. 이런 일상의 깊이와 신비로 들어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병들어서 힘들고 외로워도 일상을 황홀하게 살아낼 것이다. 그런 경험이 곧 하나님의 등을 본 것이 아니겠는가.

 

쳇을 이용하여 제목만 입력하면 바로 시를 근사하게 써 주는 홈페이지가 있더군요.

인간들은 침팬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의 감정'을 가진 AI도 등장할까요?  하겠죠? -최용우

 

7.우주론적 차원의 하늘나라

 

일상에 은폐된 하늘나라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태양의 나이는 줄잡아 45억 년이다. 빅뱅은 138억 년 전 사건이다. 태양을 도는 행성인 지구는 태양에서 대략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인 태양 빛은 8분여 후에 지구에 닿는다. 그 태양 빛은 지구의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다. 이 모든 물리적 현상이 우리가 다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은 곧 태양 에너지를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 태양 에너지는 빅뱅 이후 만들어진 흑암 에너지와 연결된다. 우주 전체와 우리의 일상이 하나를 이루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 현상인가. 미시 물리의 세계도 거시 물리의 세계와 역시 비슷하다. 그 모든 미시와 거시 물리 세계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말씀은 종교적인 관념이 아니라 명백하고 궁극적인 사실이다. 교회는 예수의 이 선포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다. 창조 신앙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창조 신앙 없이는 교회는 존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신조라 할 사도신경이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내가 담임 목사로 사역한 교회에서는 매달 한 번씩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성찬 예식에 필요한 도구는 빵과 포도주다. 빵은 예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의 피라는 문구가 성찬 예식문에 나온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문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실제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다. 고체로 된 빵을 우리가 씹어서 먹고, 액체로 된 포도주를 마시는 방식으로 우리는 지구와 우주와 연결된다. 나는 성찬 예식을 거행하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인간으로 인해서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지구에 여전히 먹을거리가 생산된다는 사실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성찬대 위에 놓인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우주론적 창조 능력이 작용했습니다. 포도가 맺히고 발효되는 과정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전체가 작용했습니다. 개인으로나 인류 전체로나 언젠가 더는 먹지 못하며 마시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믿고 받아서 먹고 마시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이라 할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서 교회 구원도 측정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오... 저런 아름다운 기도가 드려지는 성찬식에 참여해 보고 싶네요.^^ 성찬식을 하는 주일이 정해져 있나요? 저는 지난 늦가을에 밭에 마늘을 놓는 할머니를 보면서 계절마다 심는 씨앗이 다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 씨앗마다 터지는(발아되는)온도다 다 달라서 마늘은 겨울의 온도가 되어야 싹이 나고 '독한' 겨울을 나기 때문에 그렇게 '독한' 마늘이 되는 것이겠죠.-최용우 

 

8. 질문들

 

예수께서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으나 제자들이 교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필연적인 사태에 직면했기에 교회가 역사에 등장했다. 아무도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필연의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 필연적인 사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각종 서신에 나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그 하늘나라가, 또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가르침과 운명에서 현실이 되었다는 깨달음이다. 이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간단한 말로 바꾸면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을 제자들이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의 증인이 된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에게서 구원이 발생했다는 제자들의 경험은 실제로 무엇인가? 그 구원 경험이 오늘 한국교회에도 온전하게 전승되는가? 한국교회에는 구원의 껍질만 있을 뿐 구원의 내용은 없거나 빈약한 것은 아닌가? 설교자들은 실제로 구원을 설교하는가? 아니면 변죽만 울리는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구호만 무성하게 울리는 건 아닌가? 교회는 자기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파는 데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으니 교회 안으로 빨리 들어와야만 한다고 선동하는 건 아닌가? 오늘의 한국교회는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까? 거기에 관심이라도 있을까? 순교까지 불사한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 경험을 존재의 근거로 삼는 오늘의 교회가 물신숭배인 자본주의 체제에 조금이라도 저항한 적이 있나? 종교적 열정은 넘쳐나는데 삶과 역사에 대한 진정성이 공허할 정도로 빈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의 한국교회는 예수가 없는 게 오히려 교회를 운영하는 데 낫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값싼 은혜, 인민의 아편, 집단적 노이로제, 아류 힐링캠프, 성 소수자 혐오, 기복주의에 떨어진 교회가 말하는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21세기를 압도하는 자연과학과 대화할 준비를 하였나? 자신의 진리성을 철학적으로 변증할 능력을 갖췄나? 그런 준비와 능력이 없어도 무조건 믿기만 하면 대수인가? 교회가 성장하기만 하면 광신 집단이나 무속 집단으로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인가? 질문할 게 수없이 많다. 일단 제자들이 예수에게서 경험한 구원의 현실(reality)이 무엇인지를 먼저 간략하게나마 짚어야겠다. 그래야만 교회에서 벌어지는 사이비 구원론의 허상이, 또는 그 무기력성과 세속성과 난폭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무겁고 중한 질문들입니다. 

<교회구원>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시작했다가,  

오늘 글을 읽고 갑자기 자세를 바로 잡고 똑 바로 앉게 되네요.-최용우

 

9.부활의 경험

 

제자들과 예수와의 관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은 예수의 부활을 왜 제자들만 경험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부활의 예수가 제자들이 모인 방에 나타났듯이 산헤드린 공회에 나타났다면,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 광장에 나타났다면 많은 사람이 부활을 경험했을 텐데 말이다. 복음서와 서신이 이에 관해서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기에 우리는 당시에 예수 부활과 연관해서 어떤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는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에 예수와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예수께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예수께서 나타나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영적 사건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기에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도 편견에 떨어진 우리가 모든 실체를 다 보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두 가지 예외가 있긴 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이었지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활 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른 하나는 바울이다. 그는 예수 생전에 일면식이 없었는데도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사도행전은 바울의 이 경험을 세 번에 걸쳐서 약간씩 다른 버전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 이후에 바울을 만나려고 하늘에서 다시 내려온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 사도행전의 이런 표현을 사실 보도로 읽으면 곤란하다. 사도행전에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천사가 기적적으로 구출하는 이야기 말이다. 소위 다메섹 도상의 회심 이야기는 종교 경험에 대한 은유로 읽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한둘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제자들만이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었던 예수를 ‘살아있는 자’로 경험했다. 부활을 경험한 이들의 목록은 고전 15:1-8에 나온다. 예수 부활과 제자들의 경험에는 우리가 쉽게 가닿기 힘든, 그리고 제자들 스스로 당혹스러워한 생명의 심연이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부활체'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작년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에 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부활체'가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었습니다. 손에 잡히면서도 공간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말로 설명이야 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우리가 부활체가 되어 보기 전까지는 진짜는 모르겠죠? -최용우

 

10.오늘 대한민국 교회는 부활 공동체 맞나?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 예수의 십자가 처형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로 여성 제자들이 유월절 축제가 낀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에 예수 시신이 묻힌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갔다가 예수의 시신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반응이 복음서에 따라서 다르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8) 마가복음이 전하는 부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막 16:9절 이하에 나오는 몇몇 보도는 사본에 따라서 없는 이야기다. 무슨 말인가? 빈 무덤이 예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빈 무덤에서 부활 신앙이 일어난 게 아니라 부활 신앙에서 빈 무덤 전승이 나온 것이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실증적으로 너무 분명한 어떤 생물학적 사건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죽었던 예수가 제자들 앞에 살아있는 자로 현현했다는 고백을 문자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절대 생명 앞에서 두려움도 없고 떨림도 없으며 놀람도 없다. 부활 사건의 그 아득한 깊이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믿을 뿐이다. 그런 믿음은 순박하기는 하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어디 부활만이겠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를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는다. 믿는다는 열망만 강렬하지 믿음의 내용은 허술하다. 자신의 종교적 열망에만 매달리다 보니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간다. 영혼이 갈급하고 절실한 게 아니라 메마른 것이다. 따라서 영혼의 울림과 공명이 일어날 수 없다. 진리에 대한 간절함도 없다. 그런 건조한 영혼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힘드니까 신자끼리의 경쟁, 교회끼리의 경쟁, 세상과의 경쟁에 과도하게 열을 올린다. 인문학적 소양이 전혀 없으면서 부동산 투기로 운 좋게 졸부가 되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오늘 대한민국 교회는 부활 공동체 맞나? 절대 생명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약장사처럼 떠벌리는 거 아닌가?

 
최근에 글을 쓰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책을 참고로 읽었는데, 알라(The God)에 대한 이슬람의 5대 의무가 루터의 튤립TULIP(5솔라)와 그 구조가 비슷해서 깜짝놀랐습니다. 아마도 루터가 이슬람의 5대 의무를 본따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예수, 오직은혜, 오직 영광'이라는 말을 했지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글을 쓸까요? 오늘 글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을 써 봤습니다. -최용우

댓글 '1'

최용우

2025.02.06 08:03:49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무겁고 중한 질문들입니다.
<교회구원>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시작했다가,
오늘 글을 읽고 갑자기 자세를 바로 잡고 똑 바로 앉게 되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48 인기감동기타 교회의 기도 — 예배에서 가장 위험한 순서 new 최주훈 목사 2026-02-12 5
3647 인기감동기타 [회개77] 기도겠습니다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3 43
3646 주보회보신문 [회개76] 도둑놈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3 41
3645 인기감동기타 [회개75] 불평만 했던 것을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3 37
3644 인기감동기타 [회개74] 니가 한번 경비 해 볼래?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3 39
3643 인기감동기타 [회개73] 이길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2 40
3642 인기감동기타 [회개72] 자미 아놔 file 손제산 목사 2025-10-22 23
3641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26-30] 바울이 본 동성애 [1] 정용섭 목사 2025-03-02 98
3640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21-25] 동성애와 죄 문제 [1] 정용섭 목사 2025-02-28 57
3639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16-20]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1] 정용섭 목사 2025-02-21 51
3638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11-15] 제자들의 예수 경험 [1] 정용섭 목사 2025-02-20 53
»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6-10] 하나님의 얼굴 [1] 정용섭 목사 2025-02-06 89
3636 한국교회허와실 [교회구원1-5] 에클레시아 [1] 정용섭 목사 2025-02-03 79
3635 논문신학성경 성경 해석 file 브니엘남 2025-01-31 79
3634 논문신학성경 불교와 기독교의 인간론의 차이 서재생 목사 2024-11-02 522
3633 수필칼럼사설 돈과 복과 부자 브니엘남 2024-10-28 139
3632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4] 순교자 file Yong K. Park 2024-06-11 125
3631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3] 초대교인의 자격 file Yong K. Park 2024-06-10 109
3630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2] 교회의 시작 file Yong K. Park 2024-06-08 117
3629 더깊은신앙으로 [이야기 교회사01] 모든 길은 로마로, 복음은 로마를 통해 file Yong K. Park 2024-06-08 93
3628 100가지,50가지 설교자를 위한 100가지 제언 제임스 밀러 2024-04-03 188
3627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24장, 요추 전만이 중요한 이유 file 윤주만 목사 2024-03-20 93
3626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 *끝]제25장, 운동 요법의 허와 실 윤주만 목사 2024-03-20 51
3625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23장, 여자가 남자 보다 오래 사는 이유 file 윤주만 목사 2024-03-20 86
3624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22장, 배가 나온 사람이 오래 사는 이유 file 윤주만 목사 2024-03-15 107
3623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21장, 우울증과 척추에 대하여 file 윤주만 목사 2024-03-12 53
3622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20장, 건강한 뼈는 바로 아이들의 뼈이다 윤주만 목사 2024-03-08 24
3621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9장, 부드러우면 살고 딱딱하면 죽는다. 윤주만 목사 2024-03-05 74
3620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8장, 신장의 역할과 척추 윤주만 목사 2024-03-04 68
3619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7장, 척추를 만지면서 질병을 알아보기 file 윤주만 목사 2024-03-01 207
3618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6장, 척추교정 후 몸살에 대하여(no pain no gain) 윤주만 목사 2024-02-28 63
3617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5장, 교정을 삼가(어려운)야 하는 경우 윤주만 목사 2024-02-27 26
3616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4장, 척추교정 후 달라지는 신체의 변화 윤주만 목사 2024-02-24 31
3615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3장, 뇌와 척추의 관계 file 윤주만 목사 2024-02-21 85
3614 정치건강취미 [척추와 질병]제12장, 만성 위장질환과 척추 file 윤주만 목사 2024-02-20 36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