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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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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성경 : 빌4:4-7
제목 :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
찬송 : 321(351), 69(33), 64(13), 95(82)
빌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는 바울사도가 A.D.62~63년경 로마에서 ‘온 이태를 자기 셋집’(행27:30)에 연금된 상태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감사와 칭찬이 가득한‘기쁨의 서신’으로 알려진 바울사도의‘옥중서신’입니다.
바울사도가 2차전도 여행(A.D.50~52년)중에 소아시아의 서북부 지역 부근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마게도냐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의 항구도시인‘드로아’에 있을 때,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는 환상을 보고, 지금의‘튀르키예’(Turkiye)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북쪽 지역인 유럽의 마게도냐 지방에서 복음을 전한 첫 번째 도시가 빌립보였으며, 유럽에 세운 첫 교회가‘빌립보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사도가 복음의 시초에‘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다’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4:15-16)라고 기록할 정도로 바울사도가 그곳을 떠난 다음에도 바울의 선교 활동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이러한 감사와 기쁨으로 빌립보교회에 보낸 빌립보서는‘기쁨의 편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쁨의 서신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빌2:17~18절에는‘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고, 빌2:28~29절에는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하였으며, 빌3:1절에서는‘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하고 기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빌4:4절에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주님 밖에 있으면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말씀과 같이 주님 주시는 평안이 주워졌으니,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빌4:4절 후반부터 7절에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항상 기뻐하면서, 관용(寬容;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베풀고,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주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마6:25-34절에서도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바울사도는 본문에 이어 빌4:8-9절에 ‘8.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말씀했는데,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이 바로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고 칭찬 받으며,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참되고 경건하고 정결하여서 기쁨이 충만한 역사가 임하시므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즐거워하는 것’을 영적 생활과 경건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땅에서 고행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한 수도승은 살아생전에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59년 동안 수행을 하면서, 10년 동안 밥 대신 솔잎과 쌀가루만을 먹었으며, 10년은 등을 방바닥에 눕거나 벽에 기대지 않는 장좌불와(長座不臥)의 처절한 수행을 하였습니다. 20년 동안 집 울타리에 철조망을 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신도 나가지 않는 동구불출의 수행을 했으며, 1년에 6개월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 하여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유언 열반송에서 ‘활염하 비한만단’(活焰何 鼻恨萬端: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된다)라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교인들 중에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는 말씀을 철저하게 자신을 학대하며 육을 죽이고 고행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은 기뻐하는 것을 부인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주인 됨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 역시 기쁨을 부인하라는 말이 아니고 사명에 대한 헌신을 말합니다.
시37: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고, 빌3:1절에는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혔으며, 살전5:16-18절에는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신론 철학자‘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한평생을 보낸 슈바이처 박사는 "물 없는 강처럼 기쁨 없는 그리스도인, 기쁨 없는 신앙, 기쁨이 없는 사랑이 세상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은 비관적 인생관과 염세주의 철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비관하고 부정하고 거부하는 생활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주신 우리의 삶을 기뻐하는 것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니다. 생은 한없이 아름답고 풍성하며, 우리에게 여러 모양의 기쁨과 행복의 아름다운 향연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가르치는 소요리문답 제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32:10-11절에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옛날 희랍의 전제국가의 한 왕이 자기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하여 쾌락도와 행복도를 더 높이는 수단과 방법을 상금을 걸고 천하에 널리 구하였습니다. 별별 기발한 새 아이들이 실험되었으나 그의 불만도와 갈증은 날로 가중되기만 했습니다. 새 아이디어의 제공자들은 그를 실망시킨 벌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왕 앞에 행복의 새로운 제안자가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소녀는 왕 앞에서 꾸짖는 눈빛으로, "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의 표정은 숙연해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며, “딸아 그대의 말이 옳도다”하고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잠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전3:12-13절에는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의 특징은 주님 안에서 기쁨보다는 교리적 신실성 등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주님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요17:13절에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기쁨을 교회 특징의 출발로 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분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그러자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답니다. 목사님은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세요!" 하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 하고 말씀 하셨답니다.
우리 가운데 세상의 무거운 짐은 다 홀로 지고 가는 사람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는 많이 웃지만 나이가 들면서 웃음이 줄어들고 마지막은 웃는 일 없이 지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의대의 심장 전문의 존 코긴 박사는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백 번을 웃는데 비해 어른은 겨우 열 다섯 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많이 웃어야 합니다. 웃는 사람이 취업이 잘되고, 웃고 사는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도 높고, 웃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많습니다. 웃는 사람이 물건도 잘 팔고, 웃는 사람이 친구도 많습니다. 웃는 사람이 건강하고 웃는 사람이 장수합니다. 강의도 웃음이 있는 강의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심지어는 경건해야할 설교도 웃음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즐거워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살다보면 인생은 즐거운 것입니다.
요즈음 건강에 대하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면 웃어야 합니다. 1분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합니다. 5분간 웃을 때 5백만원 상당의 엔돌핀이 몸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웃으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암도 물리친다고 합니다.
일본 작가 ‘가와무라 노리유키’ 씨는 ‘약한 나를 인정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에, 인간의 뇌에는 ‘보상 계’(reward system)와 ‘벌 계’(punishment system)라는 신경영역이 있다고 합니다. ‘보상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괘감’을 느끼는 신경영역이고, ‘벌계’는 ‘불쾌감’을 느끼는 신경영역이라고 합니다. 연구와 실험을 통해 ‘보상 계’가 자극을 받으면 인간의 몸은 좋은 영향을 받아 건강해지고, ‘벌 계’가 자극을 받으면 인간의 몸은 나쁜 영향을 받아 스트레스가 쌓이며 심할 경우 병에 걸린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보상 계’를 자극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웃음이라고 합니다. 웃음에 의한 ‘보상 계’의 자극으로 인해, 체내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 활기차게 변해가고 특히 면역계의‘NK 세포’(Natural killer; 자연 살해세포, 면역세포)가 매우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폐암에 걸린 30대 중반의 여성이 항암 치료가 거의 소용없을 만큼 악화되어 6개월을 넘기기가 어려웠었는데 웃음과 즐거움으로 치유되어 암을 극복했다고 합니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감마’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며 세포 조직의 증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웃을 때 통증을 진정시키는‘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웃으면 부신에서 통증과 신경통과 같은 염증을 낫게 하는 신비한 화학물질이 나오고, 동맥이 이완되었기 때문에 혈액의 순환과 혈압이 낮아진다고 합니다.
웃음은 신체의 전 기관에 긴장 완화를 주고 혈액 내의 코티졸의 양을 줄여준다고 합니다. 웃음은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의 완화로 심장마비를 예방하고 뇌졸중의 원인이 되는 순환계의 질환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사는 길은 즐겁게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보약보다 좋은 것은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하였고, 시16:3절에‘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신12:7절에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즐겁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므로 즐거워’하다보면 우리의 인생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뻐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첫째, 기뻐하면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잠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의사들에 따르면 밝은 마음을 가진 환자들은 더 빨리 질병에서 회복된다고 합니다. 또 많이 웃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하는데, 웃을 때에 횡격막이 내려가고 허파가 확장돼 보통 때보다 2-3배의 산소를 더 마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서도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이웃을 위해서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아갑니다. 내가 기뻐하면 주위에 좋은 선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늘 기쁘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로 말미암아 가정이 밝아지고 직장이 즐거워지고 교회가 은혜로워지며 사회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남들을 위해 기뻐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기뻐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하나님이라고 말해도 전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눅10:17-20절에 주님이 보낸 70인의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하며 기뻐하자 예수님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소유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가정도 재물도 건강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환난과 핍박을 당하며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고, 항상 주님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자도 웃음도 기쁨도 없던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너무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7-28)하며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성령으로 기뻐’(눅10:21)하셨고 바울사도는‘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면서,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빌4:10)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서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면서 성도들의 사랑과 교제 안에 있으면 평생을 기뻐하면서 살게 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수고함으로써 낙을 누리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수고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수고할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고 환난과 핍박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크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에 힘쓰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서로 관용하고 사랑하므로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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