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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8:2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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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8장 29절-31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이 말씀을 오늘날 자기에게 대고 생각을 해봐라.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내 심부름 좀 갖다 오너라’ 하게 되면 심부름을 시키는 분과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의미가 되는데 여기서는 주님은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과 소원도 같고, 목적도 같고, 취미성도 같고, 추구성도 같고, 지향성도 같아서 늘 같이 움직이는 의사 단일성이라는 말이다. 성령의 결합으로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이 상태를 말한다. 이런 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모든 면에서 인격적 결합성이라는 거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구원의 일이 된다. 전부는 살리는 운동, 사는 운동, 안 죽게 하는 운동, 죽는 것을 차단시키는 운동이 된다. 교회의 운동이 이래야 하고, 개개인적으로 자기가 가지는 신앙의 질이 이래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좋은 말을 했으면 좋은 그 소리가 여전히 흘러가는 거고, 나쁜 말을 했으면 나쁜 그 소리가 여전히 흘러가는 거다. 그런데 자기가 한 말이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전달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면 그런 죄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내 입이라고 해서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성경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것을 밝히겠느냐? 복음의 말은 자기가 한 번 뱉으면 이 말소리는 시간 속에 묻히고 사라지지만 이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떨어지면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 사람의 마음에 박혀서 그 효력성이 변치 않고 영원히 간다. 이게 우리의 신앙생활이요, 믿음이고, 교훈이다.
자기가 옳은 것을 많은 사람의 마음 밭에 뿌렸다면 이게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좋은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면 추수할 때 이게 누구의 것이 되느냐?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물질의 소유적인 것을 가질 줄만 알았지 영적인 면은 심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면 이 사람은 손이 말랐다. 생명이 없는 손이다. 사는 역사에, 말하는 역사에 힘이 없다. 이건 마른 거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풍부하게 줄줄 알아야 하는데 없으면 못 준다. 그러니 이것도 마른 거다.
교회에서는 영적인 면을 풍부하게 하고, 부자가 되게 하고, 아무리 퍼줘도 새로운 물이 나오는 교훈을 해야 한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어야 한다. ‘예수 믿어서 부자가 되자’ 라고 하는 것은 썩은 물이다. 이건 영생도 아니요 구원도 안 된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은 성령님께서 떠나지 않는다는 거다. 성령이 떠난 사람은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세상이 허망하고, 자꾸 죽고 싶어진다.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죽기 전에 참 사는 길을 찾아나 보고 죽든지 하라. 죽는 용기를 가지고 예수를 바로 믿으면 얼마나 빛 된 사람이 되겠느냐? 세상이 나를 왕따를 시켜도, 세상이 나를 다 떠나가더라도 항상 하나님과 의사단일로 있으면 늘 성령님의 감화로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정신과 자세가 된다.
예수 믿으면서 외로우냐?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기대봐야 세상은 자기에게 상처만 준다. 세상을 붙들고 있으면 자기에게 상처를 주고 근심과 걱정을 주다가 결국은 다 떠나간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붙들면 주님은 안 떠난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지 왜 자꾸 세상을 붙들고 세상에 있는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느냐?
30절: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예수님께서 2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이 믿었다고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믿을만한 거냐?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가 된다’ 라고 해야 믿을만한 게 아니냐? 세상 인본주의 교회에서는 무슨 말을 하느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언행심사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거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떤 언행심사를 하셨느냐? 사람들을 하나님과 의사 단일성으로 되는 일을 하셨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과 의사 단일성이 되게 하는 것은 참된 일이라서 이 말을 많은 사람이 믿었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참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하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거다.
‘참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믿더라’ 이게 고상한 거지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만사형통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은 마귀의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되면 참사람이요, 참사람으로 만들어지면 이 사람 뒤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따른다. 그러나 세상 것을 붙잡고 살면 빼앗기기도 하고, 도둑맞기도 하고, 안 뺏기려고 붙잡고 있다가 죽기도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정신으로 살면 하나님 앞에서 넓은 길 심판의 길로 가는 거다. 이건 믿음의 정신이 아니다. 이렇게 믿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는 건설은 없고 사망뿐이다.
요단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고기들은 전부가 사해바다에서 죽는다. 사는 게 없다. 소금의 바다인 사해를 좋은 쪽으로 보면 주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옛사람을 사해바다에 다 버려서 죽게 해야 한다. 그래야 새사람이 산다. 주님 앞에서 옛사람이 살아있으면 은혜를 못 받게 되고, 사람에게 덕이 안 되고, 교회에 덕이 안 되고, 자기 얼굴은 똥이 된다. 반면에 예수 믿으면서 참사람으로 만들어지면 도덕성이 고상하고, 심성이 곱고, 사람이 모든 면에서 좋다.
31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살면, 안 죽는 말씀을 붙잡고 살면 참 내 제자다’ 이 말이다. ‘내 말에 거한다’ 함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본질로 만들어져서 자기 속에서 구원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역사를 한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 떨어지면 자기 속에서 자꾸 구원역사가 되어 나온다. 인격적 성품적으로 구원역사가 되어 들어간다. 자기 속에서 이런 역사가 있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요, 희망이 있는 사람이요, 힘이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복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참사람으로 아는 사람은 이 사람을 따르게 된다. 사람을 따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따르고 좋아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대강 알 수 있다. 믿는 우리는 일반사람들처럼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본질적으로 정확하게 서서 다스리며 사는 거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예수님의 속성으로 닮아가면 참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참 제자’ 라고 하는 것은 거짓된 제자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참 제자가 안 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자칭 제자다. 질을 두고 참이라고 하는 거지 껍데기를 보고 참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자칭 목회자가 많다. 자칭 교인도 많다. 이게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말세교회의 현상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어느 쪽에 속했는지 자기를 잘 판단하고 심사를 해야 희망이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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