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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6권] 창조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1부 제6권 (44-49)

S.T Aquinatis 지음/정의채 옮김

348쪽 15,000원 바오로딸 1999.초판

 

44.피조물들의 하나님으로부터의 발출과 모든 유의 제1원인에 대하여

45.사물들의 제1근원으로부터의유출의 양태에 대하여

46.창조된 사물들의 지속의 시작에 대하여

47.사물들의 구별 일반에 대하여

48.사물들의 구별에 대한 각론

49.악의 원인에 대하여

 

44. 피조물들의 하나님으로부터의 발출과 모든 유의 제1원인에 대하여

①모든 유(萬有)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은 필연적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흰색’이 필요하지는 않는 것처럼,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특징에 속하지 않는 어떤 것이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고로 어떤 유(有)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지 않았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②제1질료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생성되는 모든 것은 기체와 또다른 어떤 것과의 합성이다. 그런데 제1질료의 기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어떤것과 합성할 수도 없는 것이다.

③모형인 혹은 원형인은 하나님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사실 모조품은 모형(원형)과 유사성을 갖는다. 그런데 피조물은 하나님과 유사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조물의 원형이 아니다.

④하나님이 만물의 목적인은 아니다. 목적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은 목적을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목적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하나님이 행동한다는 것는 하나님께 적합하지 않다.

 

45. 사물들의 제1근원으로부터의 유출의 양태에 대하여

①창조한다는 것은 무(無)에서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만든다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이고, 창조한다는 것은 벌써 존재하는 어떤 것에서 어떤 것을 이끌어내어 설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②하나님은 어떤 것을 창조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無)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리(公理)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일지라도 제1근원명제에 반대되는 것까지 그 능력이 미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능력이 전체가 부분보다 크지 않게 한다던가 혹은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참(眞)이게 한다던가 할 수는 없다. 

③창조는 피조물 안에서의 어떤 것이 아니다. 창조는 수동적으로 피조물에 귀속되는 것과 같이 능동적으로는 창조주께 귀속된다. 그런데 능동적 의미로 취해진 창조는 창조주 안에서의 어떤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럴 경우 하나님 안에 시간적인 어떤 것이 있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④창조된다는 것은 복합적이며 자립하는 것들이 아니다. 창조된다는 것은 무(無)에서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합된 것들은 무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복합되는 요소들에서 된다. 고로 창조된다는 것은 복합적인 것들이 아니다. 

⑤창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 아니다. 자기와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피조물들도 가능하다. 불은 불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그러므로 비질료적 실체는 자기와 비슷한 실체를 만들 수 있으므로 창조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는 고유한 것은 아니다.

⑥창조한다는 것은 어떤 위격에 고유한 것이다. 더 먼저 것은 후의 것의 원인이고 완전한 것은 불완전한 것의 원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격의 발출은 피조물의 발출보다 더 먼저 것이며 더 완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격이 그 근원과의 완전한 유사성 안에 발출하는데 피조물은 불완전 유사성 안에 발출하기 때문이다.

⑦피조물들 안에서 삼위일체의 흔적이 반드시 발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사물은 그 어떤 것이든 다 그 흔적에 의해 탐구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위격들의 삼위일체는 피조물들로부터 탐구될 수 없기 때문이다.

⑧창조는 자연과 기술의 작용에 혼합된다. 그 이유는 자연과 기술의 어떤 작용에 있어서도 어떤 형상(形相)이 산출되는데 형상은 자기 부분으로서 질료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것으로부터 산출되지 않는다. 고로 그것은 무(無)로부터 산출된다. 이렇게 창조는 자연과 기술의 어던 작용에도 있다. 

 

46. 창조된 사물들의 지속의 시작에 대하여

①피조물들의 전체 즉, ‘세계’라 불리는 것은 시작된 것이 아니며 영원으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질료’이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라면 질료는 세계 이전에 존재하였다. 공(公)은 비어 있어 무엇을 채울 수 있다. 공(公)은 비어있지만 이미 ‘빈’이라는 형태로 존재한 것이다. 

②세계가 시작하였다는 것은 신앙조항이 아니고 논증 가능한 결론이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지속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계의 능동적 원인인 것은 권위있는 철학자들이 이미 논증적으로 증명하였다.

③사물들의 창조는 시간의 시작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간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시간에 속한 어떤 것 안에도 있지 않다. 사물들의 실체는 창조를 통해 존재가 되는데 시간은 사물들의 실체를, 그리고 특히 비물질적 사물들의 실체를 재는 척도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는 시간의 시작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47. 사물들의 구별 일반에 대하여

①사물의 다수성과 구별은 하나님에 유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인 것은 항상 하나인 것을 만드는 본성을 갖는데, 하나님은 최고도로 하나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하나의 결과만 산출할 수밖에 없다.

②사물들의 불균등은 하나님께 유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는 것은 최선자에 속하는 것인데 최선의 것들 사이에서는 하나가 다른 것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균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최선자인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③세계는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사물들을 창조하였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것과 같이 다른 세계도 창조하실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의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무한하기 때문이다.

 

48. 사물들의 구별에 대한 각론

①악은 일종의 본성이다. 어떤 유(類)이든 다 일종의 본성이다. 

②악은 사물들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물들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다 (有)이거나 비유(非有)이다. 그런데, 디오니시우스의 ‘신명론’은 ‘악은 존재자에게서 떨어져 있으며 비존재에서는 더욱 떨어져 있다.’고 한다. 고로 악은 어떤 형태로도 사물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③악은 주체로서의 선 안에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선은 존재자들이다. 그런데 악은 ‘존재자도 아니고 존재자들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악은 주체로서의 선 안에 있지 않다.

④악은 선 전체를 소멸시킨다. 반대대립적인 것들의 하나는 다른 것에 의해 전적으로 소멸 된다. 선과 악은 반대대립적인 것들이므로 악은 선 전체를 소멸시킬 수 있다. 

⑤악은 벌과 죄과에 의해 충분히 구분된다. 모든 결함은 일종의 악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이 존재에 있어 자기를 보존할 수 없는 어떤 결함이 있다. 그 결함은 벌도 죄과도 아니다.

⑥벌은 죄과보다는 악의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죄과는 벌에 대해 마치 공적이 포상에 대한 것과 같은 관계에 있다. 그런데 포상은 공적보다도 선의 성격을 더 많이 갖는다. 그것은 포상이 공적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49. 악의 원인에 대하여

①선은 악의 원인일 수 없다. 성경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7:18)고 한다.

②하나님인 최고선이 악의 원인이다. 제2원인의 결과는 제1원인에 환원된다. 선이 악의 원인인 것은 선이 제1원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선의 원인이니 또한 어떠한 악이든 다 하나님으로부터 있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③모든 악의 원인인 하나의 최고악은 존재한다. 서로 반대되는 결과들에 대해서는 서로 반대되는 원인들이 존재한다. 최고선은 실재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것과 반대되는 모든 악의 원인인 최고악도 존재한다. 

 

-요약,정리: 최용우 

-월간<들꽃편지> 2025.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