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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월요 편지 3582] 2025년 2월 17일 월요일
삶의 걸음걸이를 체크해보셔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2월 17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곳 김포는 지난 12일에 눈이 조금 내린 후, 요즘은 푸근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3년 반째 인테리어필름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는 도승현(22) 씨는 그 자신이 고교 시절 이과에서 전교 1등을 여러 번 했지만, 그러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기술을 배워 월수입 400만 원을 달성한 이야기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문득, 우리도 삶에서 억울하게 자꾸 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일도 잘 안 풀리고 인간관계도 꼬이고, 뭔가 될 것 같았는데 안 되고 그렇게 자꾸 넘어지곤 합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나도 남들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도대체 나더러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넘어져서 울고 싶은 아이처럼 그렇게 막막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삶에서 부딪히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이유를 밖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내 걸음걸이를 한 번은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컨대, 반복해서 넘어지는 내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이 동네에서 넘어지니까 이 동네를 떠날 거야.’ ‘자꾸 이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이 직장을 떠날 거야.’ 그래서 계속 옮기고, 옮기고, 또 옮깁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 자신 안에 갇혀있던 나를 밖으로 꺼내어 내 걸음걸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안짱다리는 아닐까요?(출처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김창옥)
●악인의 길은 캄캄한 어두움과 같아서 그들이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넘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한다.(잠4:19)
●아픈 마음에도 간절함은 희망을 피울 수 있다는 걸. 후회의 페이지 또한 나의 일부였다(김정은)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공무원 '홍 누나'의 조용한 죽음
오랜 인연이라 해도 그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고 끝까지 그러하리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 짧은 부고가 실렸습니다. ‘홍선옥(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씨 본인 상(喪), 향년 66세’.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SNS에 그를 기리는 추억담이 잇달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가리기로 정평 난 까칠한 기자들의 글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일을 놓을 수 없던 천성, 자기주장 대신 언제나 듣는 데 열중했던 누나…. 그들이 평소와 달리 넘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슬픔과 회한으로 추억하는 ‘홍 누나’가 어떤 이였는지 궁금했습니다.
몇몇 사람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 출신은 아닌 듯한데, 수십 년간 교유하고도 공무직인지 몇 급인지 그의 신분과 지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목소리로 홍선옥이야말로 문체부 홍보 행정에서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레전드’라고 했습니다. 그는 문체부와 언론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메신저였습니다. 대통령 9명, 장관만 31명을 거쳤고 1만여 기자의 연락처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보도 자료 전달부터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대처하는 장차관의 인터뷰까지, 기자 T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일개 사무관으로서 ‘장관급 대응’을 했습니다.
홍선옥 씨 개인에 대한 자료는 ‘박물관 신문’ 제578호의 인터뷰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198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홍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17년 동안 매달 ‘박물관 신문’을 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니고 학벌도 없었던 그는 오로지 발로 뛰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증명했습니다. 올해로 창간 55주년을 맞는 ‘박물관 신문’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박물관사의 사료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선옥 씨의 특이점은 성과나 역할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한 그림자이자 조력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긴요하고 대체 불가능했습니다. 기자 P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바탕으로 어느 누구도 적으로 두지 않는 인간관계를 그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았고, 먹었다고 대충 답하면 “뭘 먹었냐?”고 꼭 물었습니다. 공무원 대 기자(記者), 공무원 대 민원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습니다. T가 해직 기자 시절 우환으로 고생할 때 대기업 재단에서 공모하는 논문 프로젝트를 소개해 숨통을 틔워 준 것도 그였습니다. 한편, 여행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H 씨가 사전 통보 없이 협회비 미납으로 관광업 허가가 취소되는 날벼락을 맞았을 때,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사업자 등록증으로 영업이 가능한 방도를 일러준 사람도 그이, 홍선옥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졌을 때, 기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정식 채용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루에 카카오톡 메시지만 수백 개를 받아 응답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을 성심껏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암 수술 후에도 후임을 구하지 못해 복직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일했고, 끝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특별한’ 공무원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무능과 무기력, 헛짓거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풍토는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때, 모두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습니다. 비명을 듣고 놀랄 사람들을 염려해 고통을 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세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도 작지 않은 일입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흔들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 그 자리의 소임을 끝까지 지켰던 홍선옥씨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참으로 흔치 않기에, 그를 잃고 나서, 많은 이들이 이토록 애통해 하는 것이리라.(출처; 김별아의 문화산책,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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