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적 이단과 삶으로서의 이단 누가복음 6:17~26 세속이 지향하는 바와 기독교의 가치는 다릅니다. 그런데 이 둘이 일치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경제개발에 전념하느라 독재도 묵인한 슬픈 근대사가 있습니다. 그때 교회도 ‘현세의 복’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더라도 주님 가르침의 본질은 아닙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을 무시해도 괜찮을까요? 주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세속의 것과 혼동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교리적 이단보다 삶의 이단이 더 치명적입니다. 교리적 이단은 교회의 정죄를 받았으나 삶의 이단은 교회를 정복했습니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눅 6:21, 북한 성경) 그림설명: 안톤 아이젠호이트(1553~1603), <이단의 여신>, 1589, 에칭,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박물관, 브라운슈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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