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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공동체 안전망]
1. 오늘 점심에 직원들과 식사 후 커피 한 잔 같이 하면서 내가 한 말.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예배 드리는 멤버가 어림잡아 모두 50명 안짝인데, 그 적은 인원(요원, 의원 아님)들 가운데서도 끈임 없이 아픈 사람들이 속출해요. 그러니 한국 사회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이야기야."
2. 정말 그렇다. 우리 예배 모임 식구들을 한국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표준적인 샘플 집단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50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가정을 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지난 1년 간 우리가 겪은 일들을 거칠게 복기하면, 각종 암, 뇌졸증 등 중증 환자들이 계속 발생했다.
다행히(?) 아주 심한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 등은 없다(고 안다).
나는, 현재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공동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거나, 또는 전체적으로 상황이 더 안 좋을 것이라고 본다.
3. 감사하게도, 우리 예배 공동체는 구성원 개인이 이런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모든 멤버가 내 일처럼 여기고 간절히 (교회 안에서 쓰는 용어로) '중보 기도'를 한다. 그리고 서로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필요할 경우 치료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중보기도를 통해서 소위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의학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서도, 그런데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멤버들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공동체가 있다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되는 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4. 사실, 나는 '공동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계면쩍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우리가 정말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늘 나를 괴롭히고 성가시게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어쨌든 예배 모임 식구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간다는 의식이 조금씩 더 뚜렷해지는 것 같다.
5. 주지하듯, 우리는 2023년 5월 마지막 주일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임으로 시작했다(2024년 1월부터는 한 달에 두 번으로 예배 횟수를 늘렸다).
모임을 갖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오랫동안 교회를 떠난 사람들, 교회에서 쫒겨나 신앙생활을 중단한 사람들끼리 모여 예배를 다시 드려보자는 의도였다.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뭣 하나 손쉬운 게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한 달에 한 번만 꼴랑 얼굴을 보고 헤어지는 모임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뭔가 삐그덕거리는 일들이 빠짐없이 일어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오해도 생기고,
기대도 어긋나고,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고, 서먹서먹한 감정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 동안 만나는 모임에서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것이 난망해보일 때도 있었다.
6.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것에 비례하여, 오해도 줄고, 이해는 늘고, 공감도 늘고, 협력도 늘었다.
점점 서로서로 살가워지기 시작했고, 일상을 공유하고 사생활을 오픈했으며, 멤버들의 상처와 아픔을 놓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뭔가 '소속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아마도, 현재는 이 정도의 공동체 의식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소박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있다면, 바로 중보기도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는 수많은 난제들을 정직하게 오픈하고, 그 일을 다 함께 자기 일처럼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이 세상에 내가 혼자 존재하는 외톨이가 아니구나 하는,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가는 중이다.
7. 나는 '죄용서'나 '구원'이나 '영생' 같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종교적 개념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한국사회에 굉장히 필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고립된 개인이 크게 늘어나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노동과 업무를 제외하곤 사회적 연결망이 두절되어 가는 것이 일상화-정당화되어 가는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이 속출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서로서로를 챙기고 보듬는 따뜻한 공동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것이 종교가 수행해야 할 진정한 덕목일 수도 있다.
한국 개신교가 아프고 병든 개인은 외면한 채 비뚤어진 정치과잉의식으로 광장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포기하고 '비정치적임'을 선언한 다음 차라리 개인과 개인을 따뜻하게 연결하고 묶어주는 소박한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어쩌면 아주 최소한으로나마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는 이도 저도 다 벅차보인다.
한국 신학교의 교수들은 자신들의 신학 교육이 현장에서 완전히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신학 교육을 재구성해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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