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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교회구원26-30] 바울이 본 동성애

한국교회허와실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15 추천 수 0 2025.03.02 2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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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dabia.net/xe/1099873 

[교회구원26-30] 바울이 본 동성애

 

26.바울이 본 동성애

 

바울은 로마 문명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5) 바울은 이어서 동성애 문제를 거론한다. 26절과 27절이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로마 문명의 한 예가 동성애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자와 남자가 차례대로 나온다. 우리말 성경의 표현인 ‘순리대로’는 그리스어 성경 τ?ν φυσικ?ν χρ?σιν의 번역이다. 영어로 the natural use이다. 직역으로는 ‘자연스러운 사용’인데, 풀어서 보면 ‘자연스러운 성행위’이다. ‘역리로’는 τ?ν παρ? φ?σιν(that contrary to nature)의 번역이다. 우리말 성경의 표현인 ‘역리로 쓰며’는 어색하다. 성행위는 상대를 쓰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마틴 루터는 naturliche Umgang과 unnaturliche Umgang으로 번역했다. 영어 성경과 비슷한 뜻이다. 무슨 말인가? 바울은 이 문제를 옳음과 그름이 아니라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자연스러운 성관계는 이성애이고, 부자연스러운 성관계는 동성애이다.

전체 맥락으로 볼 때 동성애는 부끄러운 욕심과 음욕에 기인한 것이니까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바울이 동성애만 끊어서 악하다거나 죄라거나 동성애자들은 지옥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가 본 것은 동성애라는 현상보다도 그것이 드러나게 된 인간의 욕망과 탐욕과 정욕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탐욕과 정욕을 그대로 허락하시어 인간이 그에 상당한 대가를 받게 하신 것이다.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동성애 현상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욕과 욕심과 음욕이다. 이는 25절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것이며, 피조물(created things)을 창조주(the Creator)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성애자들도 정욕과 욕심과 음욕과 교만 가운데서 살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정용섭)

 

-아직까지 저는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미디어에서나 접해봤을뿐... (최용우)

 

27. 로마 문명과 동성애

 

바울은 28절부터 인간에게 나타나는 악한 일들을 열거한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자랑, 악 도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신의 없음), 무정, 무자비이다. 이런 모든 악행은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데서 나온다. 로마 문명권에 대한 바울의 분석이다. 동성애에 관해서 한 마디 언급하는 고전 6:9절에서도 바울은 동성애만 콕 집지는 않고 당시의 여러 불의한 행태 중에 하나로 본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로마 제국은 겉으로만 세련되었지, 실제로는 우상숭배와 불의에 기울어져 있다. 그들에게는 롬 2장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그 하나님의 심판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다. 율법 준수나 로마 문명으로도 이 죄와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의로움은 오직 하나님께 있을 뿐이다.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실제로 삶이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롬 8:38-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점은 본문의 맥락이다. 바울은 종교적으로 탁월한 사람이나 세속적으로 세련된 사람도 모두 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동성애 현상을 언급한 것이다. 동성애 자체가 글쓰기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명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그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고 매도하고 혐오하는 태도는 바른 성경 읽기가 아니다. 물론 그 본문을 쓴 바울에 따르면 그것이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성애만이 아니라 인간의 수없이 많은 생각과 행위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만약 동성애 현상을 비판하고 싶다면 다른 것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비판해야 한다. 21세기 바알숭배라 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동조하거나 침묵하면서 유독 동성애만 ‘콕 찍어’ 200만 연합예배로 밀어붙인다는 게 한국교회의 슬픈 현주소다. (정용섭)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으로 설교를 하면 '동성애'라는 단어 하나가지고 한시간 하죠. 하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잡아서 설교를 하면 그만큼 분량이 안 나옵니다. (최용우)

 

28.동성애와 마녀사냥 

 

‘당신은 동성애를 찬성하는가?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나는 동성애 자체에 관해서 할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이성 지향성으로 사는 사람이기에 동성 지향성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태적 욕망으로 동성애자가 된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 말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되는지도 단정해서 말하지는 못한다. 기본적으로는 선천적이라고 생각은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일종의 병적 현상이기에 치료해야 하며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동성애자였다가 이성애자가 되었다고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동성애자들은 말 그대로 성 소수자라고 생각한다. 왼손잡이가 소수자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소수이듯이 말이다. 그들도 성 다수자인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이성애자들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하듯이 동성애자들의 존엄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도 성 다수자와 마찬가지로 성 소수자로서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안고 살면 된다. 이건 상식적인 문제가 아닌가. 2024년 여름에 동성 커플의 의료보험 혜택을 대법원에서 인정한 것이 대한민국 모든 교회가 벌 떼처럼 일어나서 반대할 일인가? 이번 <1027> 집회는 동성혼 합법화를 막겠다는 것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같은 이야기이다. 그들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차마 그럴 수 없다면 침묵을 지키지 못할망정 마녀 취급하는 한국교회 행태가 몹시 불편하다. 그들이 그런 행태를 복음에 충실한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나는 제자의 길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 (정용섭)

 

-어떤 분이 '동성애 때문에 교회 망한다'고 해서 '걱정 마세요. 안 망합니다.  동성애 따위에 망했으면 기독교는 벌써 없어졌습니다.'라고 했는데 별로 제 말을 듣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최용우)

 

29. 성행위와 동성애

 

동성혼을 합법화하면 가정과 나라가 무너지며 자녀 교육이 파탄에 이른다는 비판이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책임을 동성애로 돌린다. 말이 안 되는 논리다. 동성애 성향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에 전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한민국 출산율은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낮은 출산율 자체가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전체 인구가 줄면 주는 대로 맞춰서 살면 된다. 우리나라 현재 인구에서 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여전히 2천5백만 명이나 된다. 북한과 합치면 5천만 명이다. 여전히 세계에서 작은 나라가 아니다. 문제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무한 성장에 대한 욕망에 있다. 모두 알듯이 세계 인구는 지금 너무 많다. 그 많은 사람의 소비로 인해서 지구가 병들고 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지구의 생태적 위기가 목전에 놓였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차원에서 볼 때 인구의 축소는 좋은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어서 경제 수준이 지금보다 낮아져도 사는 데에, 예수 말씀대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 사실만 받아들인다면 출산율의 저하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을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해도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은 돈으로 대체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동성혼 합헌으로 가정과 자녀 교육과 나라가 거덜 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실체가 없는 선동이다. 내면이 궁핍한 사람들은 이런 선동에 쉽게 흔들린다.

말이 약간 옆으로 흘렀다. 동성애가 죄라는 그들의 주장을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겠다. 근본적으로 동성애가 포함된 섹스가 무엇인지, 그들이 말하는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창조 원리의 근본이 무엇인지, 성 윤리와 복음의 관계는 무엇인지, 1만 년 미래의 인류도 우리처럼 일부일처제와 결혼제도를 고수할 것인지 등등을 살펴야 한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구원과도 연결된다. 그리스도교가 증언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는 종말론적 구원에 동성애자들은 제외되는가? 예수는 바울과 달리 동성애에 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나? 성폭력은 동성애자들에게 많이 발생하는가, 아니면 이성애자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는가?

우선 성행위(섹스)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부터 시작하자. 그것이 밝혀져야만 동성애에 관한 판단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주제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게 아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그리고 가능한 한 솔직하게 말하겠다. 섹스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래 섹스도 포함된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의 보존과 창조의 완성,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적 구원과 그 미래를 평생 생각하면서 살았기에 크게 틀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그리고 잘못된 생각이나 표현은 어떤 식으로든지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정용섭)

 

-둘만 낳아도 '역적' 취급을 하면서 산아 제한을 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또 안 낳는다고 난리인 그런 장단에 놀아날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 (최용우)

 

30.창조와 섹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섹스 없이 후손을 번식할 수 있게 했다면 오늘날 섹스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아예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아직 완료된 게 아니니까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섹스 없이 자식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라는 예수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다. 결혼제도가 사라져도 섹스는 가능할 수 있으나 ‘천사’처럼 된다고 하니까 섹스도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부활 생명으로 변화하는 하늘나라에 결혼이 없다면 당연히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 사이에 섹스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 창조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구약성서 신학에서 E 문서로 불리는 창 1:27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무미건조한 문장이다. 그런데 J 문서에 속한 창 2:18절 이하를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잠들었을 때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풍성한 문장이다. 그들은 나체였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둘이 한 몸을 이루라.’는 문장이 섹스를 암시하는지는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본문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 있는 상태인데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걸 보면 남녀의 결혼과 가부장 제도가 자리를 잡은 후대의 관점이 여기에 투영된 것이다. 선악과 사건 뒤에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이때부터 섹스가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라고 하지 않으셨겠는가. 에덴동산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적인 글쓰기이기에 이를 근거로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 사이에 섹스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문제는 오히려 생물학적 진화를 근거로 접근하는 게 옳다.

 

내가 그동안 배운 자연 상식에 따르면 인간의 섹스는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결과다. 인간만이 아니라 포유류를 비롯한 모든 짐승은 암놈과 수놈의 섹스를 통해서 후손을 번식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물고기도 그렇고, 곤충도 그렇고, 식물도 근본에서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섹스는 다른 포유류들의 섹스와 구분된다. 다른 포유류들의 섹스는 오직 후손 번식을 위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섹스는 후손 번식만이 아니라 몸의 쾌감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적인 쾌감이 인간의 생존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자식을 건사하려고 남자는 더 열심히 수렵 활동을 하고 농사도 지으며 여자는 집안을 열성적으로 관리한다. 두 사람 사이에 성적인 교감이 탄탄하게 유지된다면 그들은 일상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낼 것이다. 성적인 교감만이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인간 사이에는 그 외에도 많은 교감이 있을 수 있으나 섹스는 아주 특별하기에 두 사람의 교감을 더 돈독하게 하는 건 분명하다. 요즘 섹스리스 젊은이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가 쌓여서 생명력이 고갈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생 인류가 모든 포유류 동물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섹스 행위자들로 진화되었다는 사실은 곧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또는 지금도 창조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섹스가 없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그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미래를 살아야 할 우리 후손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정용섭)

 

-일본에서는 사람보다도 더 사람 같은 섹스인형이 많이 팔린다네요.사람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원하는 모드대로 다 해준다니 (최용우)


댓글 '1'

최용우

2025.03.02 23: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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