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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8:3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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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8장 31절-36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31절-32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어디에서 자유냐? 죄에서 자유, 정죄에서 자유, 죽음에서 자유, 유혹과 미혹에서 자유, 무식에서 유식으로 되니 자유, 무능력에서 능력자가 되니 자유다. 이 능력은 죽음과 사망과 마귀까지 이기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가지면 사망적인 시험이 오는 것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러니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거다.
그러면 주님은 어떤 자유냐? 당신 스스로 죽을 수도 있고, 죽은 목숨을 찾아서 다시 살 수도 있다. 이렇게 하기 이전에 이렇게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분이다. 이 세상에 이런 자유의 존재가 있느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 자유를 주려고 하신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이런 것을 알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거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 되고’ 하는 것은 땅속에 사는 지렁이나 할 짓이지 예수 믿는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 교회의 교훈은 일반교회나 기독교계 방송에서 듣는 것과는 확실히 질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일반교회 교인들이 우리 교회 교훈이 자기들과 같지 않다는 의미에서 ‘이단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다. 하기야 예수님께도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교훈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대로 예수가 이단이라면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하겠느냐? 이단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지 못한다. 죽어도 살 수 있는 것을 알게 하지 못한다. 기독교의 교훈은 현재에서 이룰구원으로 죽은 것에서 산 것으로 살게 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이 맛을 모르면, 이 진가를 모르면 안 된다.
33절-34절: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무슨 죄를 범했다는 거냐? 아침저녁으로 성경을 달달 외우는데 무슨 죄를 범했느냐? 이들의 사고방식은 생명과를 먹은 지식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선악과 먹은 지식, 즉 안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영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이들이 죄를 범했다고 하는 것은 남 죽이고, 사기 치고 했다는 게 아니라 신앙이라고 하는 그 정신이 육적으로 되어있다는 거다. 정신과 소원과 목적이 생명이 없는 세상 것에 가 있고, 변질이 되는 쪽에 가 있고, 사망 쪽에 가 있다. 이게 죄다. 그때로 말을 하면 로마 밑에 있는 게 죄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독교인은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원 목적 위의 것인 천국의 것 주님의 것을 가져야 하는데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을 하는 게 죄다.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분이 죄인지 아닌지를 왜 모르시겠느냐? 그렇다면 이 분의 정신과 삶을 보고 배운 우리도 죄인지 아닌지, 교회가 죄적으로 놓여있는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35절-36절: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무엇으로 자유케 하는 거냐? 진리로.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오셨고, 이 땅에서 죄와 사망과 유혹과 미혹을 이기셨고, 환난과 고난과 핍박과 시험을 다 이기셨으니 한 마디로 세상을 다 이긴 분이다. 영능의 만능의 능력자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이 아들을 압박하고 죽일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 전에 이미 죽지 않을 생명이 들어있는 거다. 주님은 죽음을 이겼는데 죽음 아래 있는 자들이 어떻게 이 주님을 죽이거나 없앨 수 있겠느냐?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어떻게 하던 예수님의 육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이용 활용 응용해서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해 살아야 한다. 세상을 이용 응용 활용하려면 영능의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를 가르치는 목사가 제일 중요한데, 목사가 이런 이치를 안 주면 못하는 거고, 안 되는 거다. 이런 면에서 십자가를 붙였다고 해서 교회라고 보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사망 아래 놓여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알지만 모르는 자는 모른다. 이방인들도 모르는 거고,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으로 사는 자도 모른다. 그러나 이룰구원을 위해 영적으로 사는 자는 안다. 그런데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케 되는 실력과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게 문제다.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는 그것이 자기의 실력화로 되어서 나오는 게 진짜 아는 거다. 날마다 새벽기도에 가서 울고 짜는 것보다 실력화로 되는 게 더 믿음이 있는 거다. 기도하기 전에 성경을 한 장 더 보는 게 은혜가 더 많다.
오직 아들이라야 참 자유케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당신의 주권과 독권으로 우리를 죄 아래서 자유케 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도다.’ 또 하나는 이룰구원 차원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참사람으로 만들어져야 자유자가 된다. 이렇게 되면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사람을 의로 인도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소원 목적이나 방향을 볼 수 있어야 인도할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게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백성들이다.
사람에게 참 자유를 주려면 오직 아들이라야, 주님이라야 만이 된다. 사람을 주님의 성품으로 자체화 되게 해야 참 자유인이 되는 거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를 세상에서 끄집어 내놓고 가버린 게 아니라 세상에 살게 하면서 이런 저런 사건과 환경을 거치게 하면서 성령님으로 통해 영능의 실력을 키워주는 거다. 어느 교회든 목사로 통해서 이런 교훈과 인도가 나와야 한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람을 죄 아래로 더 처박는 거다. 우리의 원 축복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돈 때문에 도둑질하고, 감옥에 가고, 부모 형제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는 것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세로부터 받은 성경을 가지고도 참 자유를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려고 하는데 이것을 모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 이방인들이 이 참 자유를 어떻게 알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만들어져야 만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고, 내 마음을 잡을 수도 있는 거고, 이게 참 자유인데 유대인들은 세상 일반적인 자유만 알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자들은 참 자유를 알고 있을까? 대부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방인들이 참 자유를 어떻게 알겠느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참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참 자유를 알게 하고 주시는 거다. 세상사람이 참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다.
세상사람들은 참 자유를 모른 채 세상 일반적인 자유만 알고 있다. 자유라고 할 때, 첫째로는 육신적 압박에서의 자유가 있고, 두 번째는 정신적 이성적 자유가 있다. 사람들이 이 자유에 압박을 받으면 자유하려고 대립과 마찰과 충돌을 한다. 그런데 육신적 육체적 정신적 압박에서 자유하려면 일반적인 지혜지식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비유다. 타락된 인간들은 영적인 면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것을 비유로 들어서 성도들이 깨닫는 도구로 쓰신다. 그래서 세상은 다 비유요 비사다. 현상적인 거다. 요즘 시리아의 IS 피난민을 보면서 믿는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나라를 이룰구원을 위해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네가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해 봐라.’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주인이라고 떠들어대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믿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예수 믿는 내가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이 있는 거다. 믿는 자기의 중요성, 위치, 신앙의 정신을 생각해 봐라. 극심한 가뭄 때 애굽이 요셉의 덕으로 살았다. 요셉의 지혜로 그 나라가 하나님의 은복을 받았다. 이런 요셉을 죽이면 애굽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니까 애굽은 하나님을 믿는 요셉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다.
오늘날 예수 믿는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위치를 봐라. 가정을 살릴 자가 누구냐? 사회를 살릴 자가 누구냐? 국가를 살릴 자가 누구냐? 이에 앞서서 교회를 살릴 자가 누구냐? 결코 많은 사람이 아니다. 말씀에서 자기의 존귀성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같다.
자유라고 할 때, 세 번째는 일반적으로 종교적 활동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있다. 이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참 자유가 아닐 수도 있다. 참 자유는 사람이 죄와 유혹을 이기는 실력인데 이 실력이 없는 자유가 있다. 이것은 참 자유라고 할 수 없다.
네 번째는 유대인들은 정치적 종교적인 자유만 알고 있었다. 이런 자유는 선악과 따먹고 나온 타락적인 자유라서 참 자유가 아닌 죄 아래의 사망적인 자유다. 사망적인 정신에서 나오는 것은 참 자유가 아닌데 이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참 본질의 신앙을 가지고 죄와 사망을 이기며 생명 길을 가는 자유가 있다. 이게 참 자유다. 생명 길을 가는 사람은 참 자유인인지, 죄 아래의 자유인인지를 안다.
오늘날 자기에게 어떤 유혹이나 미혹이 와도 이걸 다 이길 수 있겠느냐? 생명 길로 가지 않고 세상 넓은 길 사망 길을 가면 이 사람 속에는 미혹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에 유혹과 미혹을 이길 수 없다. 진리이치가 명확히 가르쳐 주기 전에는 마귀의 유혹과 미혹을 모르는 거고, 빛이 들어오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늘 살펴야 한다. 이게 참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자기는 옳다고 생각을 해서 어떤 일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차’ 하는 게 많다. 이게 바로 너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거냐? 이건 안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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