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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피해자가 가짜뉴스의 가해자로 변질됨]
1. 19세기 서구 열강에 주권을 침탈당한 중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반 외세 정서가 크게 확산되었으며, 특히 1858년 텐진조약 체결 후 이런 경향이 노골화되었다.
1868년 양주 폭동 때,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죽거나 사라지면 "선교사가 아이들을 잡아먹거나 부녀자를 성폭행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중국인들은 <벽사기실>이란 책을 통해, 선교사는 중국인의 눈을 빼서 약을 만들고 여자를 겁탈하는 서양귀신(양귀)이므로 선교사와 기독교 신자들을 죽이고 기독교 서적을 불태울 것을 선동하였다.
후일 한국에서 활동하던 헤론 의사는 <벽사기실>이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2. 1884년 일본을 등에 업고 추진된 갑신정변을 제압은 중국은 조선에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그 틈을 타서 중국 상인들이 대거 한반도에 진출하였다. 그런데 중국 상인들 일부는 어린이들을 납치하는 노예상인이었다.
이들에 의해 어린이 유괴 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선교사의 소행으로 꾸미는 자들이 등장하였다.
3. 언더우드가 1886년 서울 정동에 고아원을 개설하자, "어린이들을 미국으로 보낼 것이다" ,"어린이들을 살찌워서 잡아먹을 것이다"란 루머가 돌았다.
4. 1886년 6월 서울에서 어린이 몇 명이 실종되자, 프랑스 공사관에서 일하던 한국인 청년이 "외국인들이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을 봤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잠적했다.
그러자 "선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국인 애들을 통째로 구운 것이래" , "아이들을 죽이기 전에 지하실에 데리고 가서 마약과 사진기를 만들기 위해 눈과 혀를 뽑는다는군" , "그 마약을 차나 음식에 몰래 넣는데 그것을 마시거나 먹으면 마음이 변해서 예수교를 믿지 않을 수 없다지" 등의 악성 소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의료 선교사들이 제중원 수술실에서 어린아이의 눈과 혀를 빼서 약을 만든다는 유언비어도 떠돌았다.
이를 실제 사실로 믿은 일부 한국인들은 선교사 살해와 주택 방화를 계획하기도 했다.
5. 사태가 심각해지자 1886년 6월 18일 미국 공상인 딘스모어는 선교사들에게 선교 중단 명령을 내렸고, 한국 정부에도 가짜뉴스 유포자들을 엄하게 단속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고종은 6월 19일에 가짜뉴스 유포자들을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교지를 내렸고,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영아소동>은 6주 만에 막을 내렸다.
6. 그런데 이렇게 선교 초기에 각종 음해와 모함을 받으며 어렵게 출발한 한국 개신교는 1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제 한국사회에서 가짜뉴스를 앞세운 가장 강력한 <혐오세력>으로 등장한다.
사실상 지난 80년의 남북 분단구조하에서 군사독재와 반공이념에 기생하여 '북한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선동하던 핵심 세력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던 한국 개신교는, 윤석열 정권들어 '중국인 혐오'의 온상으로 포지셔닝을 살짝 바꾼다.
7. 한국 극우 개신교를 축으로 한, 한국 극우 세력의 반 중국 감정은 2024년 12월 3일밤에 발령되었던 불법 비상계엄으로 극에 달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안병희'라고 하는 신학생 출신의 과대망상증+허언증 환자가 유포한 가짜뉴스가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안병희는 자신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에서 활동하는 비밀특수요원이라고 속이고, 자신이 가진 정보에 따르면 중국인 해커들이 한국의 선관위 서버를 장악하여 한국내에서 부정선거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황당한 가짜뉴스를 제조하였고, 이를 스카이 데일리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언론이 받아서 대량 유포하였으며, 또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한국의 우익 정치인들과 개신교 세력이 쟁점화하면서, 한국사회는 일순간에 '중국인 혐오'에 빠져들게 되었다(물론 그 전에도 한국사회 안에 반 중국인 정서가 저변에 만연한 것은 사실임).
거짓말쟁이 안병희에게서 촉발된 중국인들이 한국의 부정선거를 배후 조종한다는 가짜뉴스는 전혀 근거가 없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과 극우 집단은 여전히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려고 시도하는 실정이다.
8. 말하자면, 선교 초창기에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수 집단이라는 이유로 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국 개신교는 10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 자신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반공구조와 개발독재에 기생하면서 축적한 엄청난 사회적 힘과 욕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최대의 가짜뉴스 제조집단이자 혐오세력으로 변질된 것이다.
과연 누가 오늘 골병이 든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타파하고 수술할 수 있을까?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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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에 발생한 <영아소동>은 옥성득, <한국교회 첫 사건들>에서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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