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월요 편지 3591]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남의 말, 남의 눈길
할렐루야! 기쁨과 소망의 주가 되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2025년 부활절에 감사와 소망과 기쁨이 가득하신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부활절답게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집에는 화분과 꽃이 서로 간 그 조합이 잘 어울리지 않는 화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난초 화분과 거기에 심겨진 군자란입니다. 누군가 버린 군자란을 아내가 가져다가 비어있던 난초 화분에 심어놓은 것입니다. 처음보다 조금 큰 화분에 옮겨심기는 했으나 화분과 군자란이 여전히 잘 어울리지 않는 꽃 화분입니다. 하지만, 그 군자란이 아름다운 꽃을 피었습니다. 그 일생을 제대로 다 마치지 못할뻔했던 군자란을 아내가 살려서 꽃까지 피게 한 것입니다.
저는 남이 하는 말을 두 가지 방법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첫째, 저의 사정을 잘 모르거나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의 비판은 무시합니다. 그런 사람은 저에게 관심도 없고 제 사정도 모를뿐더러 그저 자기감정대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하여 생각할 가치가 없습니다. 별 의미 없는 말에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 힘들 정도로 심한 말이라면 ‘너는 나를 모른다!’라고 내처 버려야 합니다. 당연히 예외도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의 말이 무언가 저를 찌르는 의미를 직감할 때는 이를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저의 사정을 잘 아는 가까운 사람의 비판에는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말은 저의 거울인 셈입니다. 마음이 괴로워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인 고로 말입니다.
저는 남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면이 성숙한 사람은 남을 비난하는 말을 쉽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약하지 않느냐며 남의 잘못에 너그럽습니다. 제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반면, 스스로 정리가 안 된 사람일수록 남을 자주 비난합니다. 자기를 보는 눈으로 남을 보기 때문입니다.(출처; 좋은생각 2025년 5월호에서, 윤재윤 변호사)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언제나 헐뜯고 비난이나 하고 있다면 피차 파멸을 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하십시오.(갈5:15)
●일상의 성실함에서 성취되는 행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짜 행복입니다.(정용수)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현대판 노예살이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민주사회가 된 지금 우리는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는 '현대판 노예'일 수도 있습니다. / 셔터스톡
십여 년 전, 한 저녁 모임에 친구들이 모였을 때의 일입니다. 국제기구의 간부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에 4명의 직원을 채용하는데 256명이 몰려들었어. 토익 점수부터 시작해서 실력이 정말 쟁쟁하더라구. 요즘 아이들은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는 것 같아. 우리 애도 지금 로펌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자기 시간이 없다는 거야. 힘들다고 하더라구.”
그 말에 로펌의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로펌에 취직을 했더라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아. 채용하면 일단 3년 정도 혹독하게 다루지. 사자가 새끼를 키우는 방법을 연상하면 돼. 절벽에 던지고 살아서 올라오는 놈만 키우는 거야. 직장이 아주 냉랭한 분위기일걸.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사람이 없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지. 위에서는 지켜보면서 키울 놈과 버릴 놈을 구별해. 제대로 올라서지 못하는 놈은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거야. 자기 시간이나 내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선택하지 않아.”
로펌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로펌에서 근무한 지 몇 년 되는 또 다른 친구의 아들이 내게 했던 이런 말이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고, 불의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계속 로펌이라는 조직에 있어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들어요.”
아버지의 정의감이 아들에게 그대로 유전된 것 같았습니다. 그 아버지도 도중에 정치부 기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방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방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90%가 9급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달고 있어. 일반 기업체들이 겉으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지방대학은 아예 서류 심사에서 탈락시킨다는 거지. 면접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라는 거야. 그러다 보니 9급 공무원 시험에 다들 목숨을 건다는 얘기야.”
아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사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지방대를 얘기했지만 철저한 역차별도 있어.”
모인 중 한 친구가 그렇게 말하면서 끼어들었습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패거리에 속하지 않으면 살기가 불가능하지. 지방 도시를 예로 들어 볼게. 지방 고등학교와 지방대 출신이 꽉 차 있는 조직이 있었어. 그런 곳에는 스카이 대학의 우수한 애들이 가도 결국 견뎌내지 못해. 잘하고 그곳 분위기에 맞추고 겸손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패거리들은 이쪽에서 아무리 바보처럼 행동하고 비위를 맞춰도 사자 새끼를 키우는 기분일 텐데 그걸 받아들이겠어? 중간에 죽여 버리거나 내쫓는 거지. 그게 패거리 문화야. 능력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조직의 문화에 적응하고 굴종하면 어디까지 해야 할까요? 우리 세대는 이미 그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들어가 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의 책임자로 일했던 고교 선배의 아팠던 경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건설회사에 들어가 사우디의 현장 책임자가 됐지. 사우디에서 공사를 따려면 현지에서 뇌물을 줘야 했어. 회장의 명령으로 사우디 정부의 건설국장에게 돈을 주다가 걸려 감옥에서 2년을 살았지.
회장과의 관계를 대라고 추궁하면서 때리더라구. 39번 때리는 매를 맞았어. 감옥 안의 겨울은 담요를 세 겹으로 덮어도 춥고 여름은 태양 복사열로 뜨거워서 매트리스에 물을 뿌리고 증발을 이용해서 식히고 잤지. 그 후, 서울로 왔는데 회장은 모른 척하더라구. 그게 회사라는 조직이었지.”
우리들이 살아온 세상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살던 세상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밥을 가족의 입속에 넣기 위해서는 자기가 없어져야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마시는 소주잔에 눈물이 반쯤 섞여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젊은 날, 밥을 벌기 위해 군에 직업 장교로 들어갔었습니다. 그 시절, 군대는 계급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나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던 고위 관료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조직에서 평생 있다 보니까 관료주의가 머릿속에 꽉 찼어. 관료주의의 핵심이 뭔지 알아? 굶은 쥐들을 같은 독 안에 넣으면 어떻겠어? 서로 증오하고 잡아먹지 않겠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급하고 성공해서 장관이 되려면 착하기만 해서 됐을까? 경쟁자와 싸우고 누르고 그 자리를 쟁취하는 과정이었지. 그렇게 하다 보니까, 철학도 목표도 없어지는 거야. 삶이 우울해지는 거지. 지금 내가 회장인 모임에 역대 총리, 경제 장관,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다 있어. 그런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없어. 과거 장관이라는 게 오히려 자유를 제약하는 멍에인 것 같아. 얼굴 표정을 보면 다 우울해.”
모든 조직에 공통된 생리를 그는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인간은 운명적으로 노예로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전 생애 동안 줄곧 노예로 남는 것은 아닐까요?
링컨은 노예 해방을 선언하면서 겉의 신분은 평등해질지 모르지만, 미래는 돈에 의해 더 많은 실질적 노예들이 생기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에 의해서만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육욕의 노예이고 욕망의 노예이기도 합니다.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노예 상태에 대한 기나긴 투쟁의 연속이 아닐까요?
노예는 자기가 노예인지 모릅니다. 노예는 자유도 모릅니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평생 진리의 말씀을 조금씩이라도 공부해 온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출처 ; [엄상익의 마음 길 따라 세월 따라], 엄상익 변호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