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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1-4690] 질투하는 전염병, 질투는 바이러스, 시각 차이, 반듯한 처신, 너처럼....
만가지생각 최용우............... 조회 수 22 추천 수 0 2025.04.20 06:52:27
[원고지 한장 칼럼]
4681. 질투는 전염병
질투는 전염병입니다. 질투는 마치 결핵처럼 옆에 있는 사람을 감엽시킵니다. 질투로 인한 ‘잔소리’는 행복의 기관지를 공격하는 기침과 같습니다. 질투에 전염되면 ‘의심’과 ‘열등감’이라는 각혈(피를 토하는)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야금야금 갉아 먹다가 마침내 가정을 풍비박산(風飛雹散)냅니다.
4682. 질투는 바이러스
질투는 바이러스입니다. 일단 질투가 ‘조직’안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퍼집니다. 조직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뢰와 협동과 단결을 야금야금 무너뜨립니다. 정치든 종교든 교회든 가정이든 일단 ‘질투’가 들어왔다 하면 이미 늦은 것이니 사전에 철저하게 방어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질투를 일으킬만한 일을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4683. 시각 차이
내가 나를 보는 시각과 다른 사람이 나를 ‘실제로’ 보는 시각은 차이가 납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은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할 때 항상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설령 나쁜 행동을 할 때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는 그 이유를 모르니 나의 드러난 행동만 보고 판단합니다.
4684. 등 뒤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을 정직하게 ‘실제로’ 말해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말다툼이 일어나거나 관계가 깨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하는 대신 나의 등 뒤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보고 느낀 것을 정직하게 ‘실제로’ 이야기하는데, ‘험담’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합니다.
4685. 반듯한 처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 꺼리’가 없게 하려면 ‘반듯한 처신’이 중요합니다. 내 중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지혜롭고, 조용하고, 생각이 깊고, 두려움이 없고, 유쾌하고, 진지하고, 너그럽고, 규칙적이고, 자기 말에 진실하고, 단호할 때는 확실하게 단호하고, 그러면서도 양보하고, 배려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죠.
4686. 너처럼
항상 누구에게나 예절 바르며, 항상 똑바른 생각을 하며, 불쾌하게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불쾌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항상 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항상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듯한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을 정직하게 ‘실제로’ 말해줍니다. 너처럼 살고 싶다고.
4687. 소리를 들었다.
바디메오는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막10:46-48)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말리고 꾸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눈에 뵈는 것 없으니) 예수님을 향해 더 큰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예수님의 발걸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체면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4688. 부르는 소리
예수님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디메오를 ‘부르셨습니다’.(막10:49-50) 눈 뜨고 보는 사람이 눈이 감겨 안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눈 뜬 예수님은 눈 감은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바디매오가 먼저 예수님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르고 대답하는 가운데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4689. 무엇을?
예수님은 바디메오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막10:51)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소원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실 수 있는 권한과 권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이미 다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기도로 아뢰라’고 하신 것과 습니다.
4690. 보기를 원합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에게 “보기를 원합니다.”하고 대답했다.(막10:51)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가 만약 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이었다면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본다는 것을 구합니다. 그에게 본다는 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가장 절박한 것입니다. ⓒ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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