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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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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8장 55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나는 하나님을 잘 아는데 너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왜 하나님을 모르느냐?’ 이 뜻이다. 누구를 안다고 할 때 상대를 인격적으로 모르면 그 사람을 모르는 거다. 세상사람들은 상대를 인격적으로 아는 것보다는 주로 외모 모양이나 재산이나 학력 등으로 안다.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상대를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기준의 눈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일이 많은 거다. 이런 한숨소리, 이런 걱정소리가 집집마다에서 끊이지를 않는다.
주님은, 하나님은 영의 눈으로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영으로 보신다는 것은 영원 궁극적인 구원에 놓고 사람을 본다는 거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죽음 저 너머 영적인 것에 이해타산이 있는 게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타산의 눈으로 사람을 본다. 지금까지도 거의가 이렇게 살면서 속고 속이며 살고 있는 게 세상사람들이다. 이게 말하자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거다. 부부끼리도 상대를 인격 대 인격으로 볼 줄을 몰라서 날마다 싸운다. 이건 한 마디로 상대가 자기 기준에 안 맞는다는 거다. 껍데기 기준은 아무리 좋아도 변질성이다. 시간이 지나면 쪼그라지고 변한다. 그러면 어느 기준이 참이냐?
예수님께서 ‘안다. 모른다’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낱낱이 아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격자로, 가치판단을 하는 자로 지으셨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보는 눈이 없어서 자기 눈이 기준이 되어서 보암직에서 다 넘어가 버린다. 믿는 사람은 인간창조의 목적을 놓고 나도 보고 너도 봐야 실수가 없다. 우리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려면 성경이 필요하다. 인간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관을 모르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도 창조의 목적이 없이 사는 거다. 무목적적으로 사는 거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생업을 가지는 것은 목적이 아닌 방편이다. 자타의 구원을 위한 방편으로 일을 하고, 자타의 구원을 위해 사람과의 관계성을 가지는 거다. 그러니까 생업의 활동을 하면서 같이 일을 하는 사람과 일을 놓고 대화를 하고 사귐을 가지고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을 위함 같으나 믿는 우리는 그런 것을 통해 전도의 기회를 가지는 거다. 이러려면 평소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해야 하겠느냐?
사람이 인간창조의 목적과 재세기간의 존재목적을 모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있을 수 없고, 이렇게 사는 것은 목적이 없이 사는 거다. 주님은 이렇게 보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의 존재목적을 뚜렷이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크고 작은 사건이나 환난이나 시험이 오더라도 그걸 다 뚫고 나간다. 다 이길 수 있다. 왜냐? 그런 모든 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구원을 위해 이리저리 몰아붙이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처녀 총각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나는 약속의 땅으로 가자고 하고, 상대는 애굽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처음부터 판단을 잘 하라. 사람을 껍데기를 보고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마귀니라.’ 가룟유다 속에는 처음부터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마귀에게 넘어간 거다. 그러니 회개가 힘이 든 거다. 그러나 옳은 것으로 바로 살려고 하다가 넘어지는 경우에는 힘을 얻어서 올라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힘을 보태줘서 올라오기도 한다.
주님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낱낱이 아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격자로, 가치판단을 하는 자로 지으셨다는 것도 알고,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도덕성 능력성도 아시고, 하나님의 자존성, 무한성, 완전성, 단일성도 아시고, 절대성, 거룩성도 다 아신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다 아시는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하신 거다. 즉 주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주님의 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에게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아버지란 양육자요 상속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를 진리로 낳으신 분께서는 우리를 우리보다 더 아신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표면만 보고 믿고 따르다가 고난과 고통을 겪는 일도 많고, 잘 안다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목숨을 잃는 일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수없이 겪어왔고, 수없이 보아왔고, 현재적으로 자기가 당하기도 하고, 이런 일을 늘 겪고 있고 보고 있으면서도 하는 말과 소원은 여전히 사람의 외부 표면 껍데기 위주로 보고 있고, 그래서 그런 일을 또 당하면서도 또 그런 생각과 말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처녀 총각이 시집 장가를 가려고 할 때 학력이나 재산이나 배후를 보고 갔다가 그런 것들이 자기 원대로 충족되지 않아서 이혼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그런 기준으로 상대를 찾고 있고, 자식들에게도 그 기준으로 가르치고 있다. 자기가 넘어졌으면 되었지 자식들도 부모처럼 넘어지게 하는 것은 사람을 보는 지식이 완전히 잘못된 거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게 큰 문제다. 이건 선악과다. 네가 보기에, 인간 네 기준에, 세상기준에 맞춰서 사는 것은 다 선악과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있다면 계속 넘어질 짓을 하고 있는 거고, 계속 넘어지는 거고, 이로 인해 여전히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살게 된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 안의 거짓 종들이나 거짓 목사들이 여전히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선악과를 먹으라고 가르치고 있고 욕심을 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건 마귀의 앞잡이다.
예수 믿으면서 외부 표면 껍데기 위주로 살고, 또 그렇게 주장하며 살고, 그래서 이로 인해 여전히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이건 사람이 안 바뀐 거다. 사람이 안 바뀐 자는 지옥 같은 환경을 줘도, 천국 같은 환경을 것을 줘도 회개가 안 된다.
성경에 보면 악한 자들이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게 있는데, 이것을 현재로 가지고 와서 자기가 세상에 살면서 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건지? 자기를 불에 태우려는 건지, 연단을 시키려는 건지, 뭘 뽑아내려는 건지? 이걸 알아야 고칠 수 있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수님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자기 속의 고통이 점점 감소가 되고, 가벼워지는 거고, 이게 자기 복인데 오늘날 교인들이 왜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를 않을까?
알면 그렇지 않지만 몰라서 남의 짐을 둘러쓰고, 몰라서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몰라서 모함을 당하는 일이 많은 게 세상이다. 머리가 둔하면 손발이 고생을 한다고 했듯이 자기 머리가 둔하면 판단이 흐리고 마음이 잘못된 쪽으로 돌아가게 되니 사서 고생을 하게 된다. 믿는 우리는 고난과 고생을 이겨내는 용기와 담력과 지혜와 삶의 의욕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믿는 우리가 두려운 것은 세상에서 못 살고 고생을 하는 게 아니라, 죽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가는 게 무서운 거다. 예수님께서 ‘내게 오는 자는 편히 쉬게 하리라’ 라고 했다. 나에게 고난과 고통이 오는 것은 주님 앞에 와서 쉼을 얻으라는 거다. 이게 믿어지느냐? 주님께서 내 걱정을 하고 계시니 주님 앞에 나와서 순종하고 만들어지면 된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알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는데 그 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예수를 믿는데도 성경에 맹탕인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이런 사람은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까? 자기가 성경을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산다면 거짓 종들에게 이용이나 안 당해야 되겠는데 모르니 이용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실컷 이용을 당하고도 당한 줄을 모른다.
주님께서 무리의 병자도 고쳐주시고 좋은 말도 해주니까 주님을 자신들의 왕을 삼으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이 자들이 나를 대우해주고 좋아하는구나’ 라고 하시지 않고 그곳에서 피해버렸다. 왜냐?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 좋겠는데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이나 기사 등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 좋아했기 때문에, 즉 그곳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피한 거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만 그 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상에 속한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면 주님을 모르는 거다. 또는 종교적인 세상을 위해 예수를 믿는다면 이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거다. 이런 신앙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 교인들과 똑같은 신앙정신을 가진 거다. 이러면 예수님을 모르니 예수를 죽이게 되고, 자기에게 온 구원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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