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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성찬>
..... 어린이 성찬 문제도 짚어야겠습니다. 어린이는 떡과 잔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에선 매주 성찬례에 아이들이 성찬대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다만, 목사가 아이들에게 직접 떡과 잔을 주는 대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제가 자세를 낮추고 머리에 손을 얹어 십자가를 그은 다음 이렇게 축복기도를 합니다. ‘이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아무개를 지키고 인도하며 복되게 하시리라’ 그러면서 제가 함께 나온 부모에게 아이와 나누라고 떡을 하나 더 드립니다.
간혹, 나와서 떡 달라고 손 내밀고 애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떡을 줍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엄마 아빠 포도주잔까지 받아서 시원하게 들이키기도 합니다. 가만 보니까 다 제대로 안 알려드린 제 탓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 역사를 살피면 어린이 성찬은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다가 13세기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어린이 성찬이 금지됩니다(1215년 라테란 공의회). 그랬다가 1910년부터 유아세례를 받은 7세 이상 어린이부터 성찬을 받도록 다시 조정하게 됩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10세 전후로 권장합니다.
천주교회가 아닌 종교개혁 전통의 우리나라 개신교회들은 대부분 어린이 성찬을 금지합니다. 무슨 특별한 신학이나 성경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예 논의 자체가 안 된 겁니다. 그러다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주류 교회 가운데 하나인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에서 교단적 논의를 거쳐 2019년부터 어린이도 성찬을 받을 수 있도록 완전히 열어놓은 게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담긴 성찬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요.
독일교회에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했던 작센주 루터교회가 1977년부터 어린이 성찬 논의를 시작해서 1983년에 실행했고, 2010년에 드디어 독일의 모든 개신교회가 8세 이상 어린이 성찬을 실행하게 됩니다. 단, 어린이가 수찬하는 경우엔 반드시 어린이와 부모의 성찬 교육이 필수 사항입니다.
한국 루터교회에서는 통념상 견신례를 받지 않은 아이들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찬을 받을 수 있는 통상적인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신앙교육'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도 매우 귀중한 한국 교회의 유산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찬을 주는 게 옳은가 아니면 기다리게 하는 게 옳은가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물론 무조건 바꾼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이 부분도 교단적 합의가 있어야 할 중요한 미래 과제입니다만, 충분히 개 교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adiapora).
명절 아침 식탁
이렇게 생각하면 이 문제는 간단할 것 같아요. 주일 예배는 명절 온 집안 식구들이 큰집에 모여 나누는 아침 식탁과 같습니다. 전국 곳곳에 살던 가족들이 그날만큼은 연어처럼 고향 큰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명절 아침 서로 덕담을 나누며 온갖 진수성찬의 식탁을 나눕니다. 그 식탁은 가족이면 누구나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어른은 물론이고, 타지에 나가 고생하고 사는 아들 식구 딸, 며느리 손주 할 것 없이 한자리에 앉습니다. 어리다고 눈치 주거나 젖먹이라고 그 식탁에서 내쫓는 법 없습니다.
가족이라면 아이가 어릴수록 오히려 더 사랑받습니다. 종종 아장거리는 아이가 밥 먹다가 소리 지르거나 밥상 위 반찬을 업어버리는 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식구들이 레이저 광선을 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가족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국그릇과 반찬이 엎어지면 가까이 있는 가족이면 누구라도 일어나 치우고 닦아줍니다. 아이 부모라면 다른 식구 밥 먹는데 방해 안 되도록 아이를 안고 얼르고 달랩니다. 그게 가족이고 부모의 상식이지요.
이 명절 아침 식탁 광경은 주일 예배와 같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초대받고, 서로를 위한 축복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유아와 어린이 세례 때 부모와 회중 모두에게 문답을 합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겠냐’고 목사가 물을 때, 부모와 회중에 '예'라고 서약합니다.
이는 부모와 회중의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 자유의 이름으로 아이를 방치하는 건 방종이지, 책임 있는 부모의 태도가 아니듯, 부모와 회중의 서약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는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에서 배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복음의 자유를 갖되, 부모와 회중의 신앙 가운에 양육되도록 배우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성찬을 받는 것은 부모와 회중의 성실한 기도와 양육의 열매입니다.
수찬 방식 제안
교단적 합의가 있기 전까지 이렇게 하기를 제가 제안합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제가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고 떡을 부모에게 주겠습니다. 그러면 그 떡을 부모가 아이를 책임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눠주길 바랍니다. 아이가 잔을 받는 것은 견신을 받기까지 기다리게 하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왜 나는 안 주냐’고 물으면, ‘너도 다 먹을 수 있지만, 형처럼 언니처럼 조금 더 커서 견신을 받으면 그때 스스로 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꼭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명절 식탁 위에 차린 음식이 많아도 때론 아이들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음식이 있듯, 그렇게 부모님들이 잘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부모가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성찬 때 나와서 저에게 손을 쑥 내밀면서 떡 달라고 하는 어린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주겠습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은 목사가 아이에게 떡 준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명절날 멀리서 오랜만에 모진 귀성길을 뚫고 여기 온 아이를 가족사랑의 마음으로 예쁘고 아름답게 품어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바라보는 눈길이며 마음일 것입니다.
성찬에 이야기를 풀면 끝도 없이 나눌 수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례와 함께 성찬을 다시 나누게 됩니다. 세례와 성찬은 참으로 신비입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거시고 거룩한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성찬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작은 떡과 잔에 주님이 임할 수 있다면, 보잘것없는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셈입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때 불의와 불가능에 맞설 힘이 생기고, '과연 세상이 변할까' 하는 절망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바라기는 주님이 마련하신 말씀과 성찬의 힘으로 이 세계에 만연한 구별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사랑과 평화의 가치로 바꾸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
<지난 주 설교 원고에서>
2025.05.18.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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