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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24 추천 수 0 2025.05.25 0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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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9:3-1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3-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기본구원은 전제를 하고 이룰구원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다. 왜냐? 주님이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는데, 기본구원을 전제를 하고, 즉 죽은 영을 살려놓은 후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고 명령을 해야 그 명령에 순종을 할 수 있는 거지 영이 죽은 상태에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 말씀이 이룰구원 차원이 아닌 기본구원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하게 되면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다라고 하는 말씀에 맞지를 않는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하는 것은 영이 죽은 것을 말하는 거고, 선악과를 따먹고 영이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성과 몸은 죽어가고 있는 상태이지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 소경은 이미 기본구원을 받은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통해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된 거다. 이것은 이룰구원에 관한 교훈이면서 아울러 이 역사를 통해 믿는 우리에게 이룰구원 차원에서 영의 눈이 뜨여지는 이치를 말씀해 주는 거다. 믿는 우리는 영적인 면을 보는 눈이 숙달이 되어야 하겠는데, 영적인 면의 눈을 뜨려면 그 분의 지시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지시대로 순종을 해야 한다.

 

뒤에 나오지만 보냄을 받은 곳이 있고, 보냄을 받지 않은 곳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우리가 육적으로 사는 것도 갈고 배우고 닦고 연구를 하고 신경을 써야 세상을 편하고 유익하게 사는 건데 하물며 영적인 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되면 큰 형벌과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받으면서 깨닫고자 힘을 써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가 어려운 건데 인본주의의 교회에서 말씀을 배우면 영의 눈이 뜨이겠느냐?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예수님으로 통해 눈을 뜬 적이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새겨보면 자신의 불행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핑계를 대거나 따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생각하라는 거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보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도 된다.

 

나의 불행을 다른 사람이나 부모 형제에게 돌리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에게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이 일이 있구나하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일이 누구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면 좋겠느냐? 다른 사람보다는 날 때부터 눈이 어두운 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 주님도 이 마음을 가지신다.

 

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낮과 밤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세상 일반적으로 낮에 일을 하지 밤에는 일을 안 한다. 이게 창조 때 정해진 거다. 그런데 지금은 돈을 생각해서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켜놓고 일을 한다.

 

구원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실 때 해야 한다. 영적 믿음의 일은 진리가 있을 때 해야 하고, 영적인 무장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이 있을 때 해야 한다. 밤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라고 할 때 선지자가 없으면 그 시대는 영적인 밤이다. 이룰구원의 신앙이 없으면 징계의 때다. 온 교회가 세속화되고 인본주의의 죄악이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밤에 일을 하게 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병이 발생한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영적인 밤이 오기 전에 살아계신 생명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부지런히 자신을 진리로 자체화 실상화 인격화 시켜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다.

 

6-7: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만능의 능력자 예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소경을 고칠 수 있는 건데 왜 이리 복잡하게 하셨을까? 그 이유가 예수님에게 있는 걸까, 소경에게 있는 걸까? 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가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선지자에게 있는 거냐, 나아만 장군에게 있는 거냐?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 집에 전쟁에서 붙잡혀 온 유대의 여종 하나가 말하기를 유대에 선지자가 있는데 눈을 띄워줄 것이라고 해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오니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에게 사람을 보내서 몸을 요단강 물에 일곱 번을 씻으라고 했다. 그러자 나아만 장군이 우리나라에도 강이 있는데 내가 요단강 물에 씻으려고 왔느냐?’ 라고 하며 돌아가려고 하자 부하가 일단 왔으니 씻으라고 해서 씻으니 문둥병이 나았다.

 

그러면 나아만이 요단강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일곱 번 하니까 깨끗해진 건지, 한 번 들어가서 일곱 번을 씻으니 깨끗해진 건지? 그리고 일곱 번을 씻으니 깨끗해졌다고 하는 게 한 번 씻으면 조금 나아지고 두 번 씻으면 조금 더 나아지고 해서 일곱 번을 씻자 다 나은 건지, 아니면 여섯 번 씻을 때까지 그대로였다가 일곱 번째 씻으니까 다 나은 건지?

 

우리는 이것을 이룰구원 면으로 생각을 하면 씻을 때마다 점차적으로 차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게 좋다. 우리의 신앙이 점점 나아지면서 본질에 바로 서는 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본질의 교회에 한 주일 나갔더니 조금 깨닫고, 또 한 주일 나갔더니 조금 더 깨닫고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본질적으로 위로 향한다면 이 사람은 희망이 있는 거다.

 

그런데 이를테면 우리 동네에도 물이 있고, 즉 교회도 있고, 이 교회의 하나님도 같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는데 꼭 진리본질의 교회를 찾아서 다녀야 하느냐?’ 라고 한다면 말은 맞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진리본질의 교회에서 더 크기 때문에 진리본질의 교회에 다니는 게 중요한 거다. 세상에서 사람의 실력에 따라 월급도 차이가 있고 영광성도 차이가 있듯이 기독교 세계에서도 신앙실력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인격의 세계에서는 이게 없으면 안 된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녔어도 신앙실력이 그대로라면 이건 재앙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소경에게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라고 하신 것은 이 소경의 정신과 마음과 성격과 성질을 아시는지라 이 사람이 눈을 뜨기에 가장 적합하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방법이 이해가 안 될지라도 방법을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연못에 가서 씻어라.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락날락 하라라고 하실 때 이 말씀에 순종을 못할 이유가 있느냐? 이렇게 해서라도 눈을 뜨는 게 낫지 이유를 붙이고 불순종을 해서 평생 소경으로 살겠느냐?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소경의 눈에 바를 때 소경의 마음이 어땠을까? ‘꼭 이렇게 해야만 됩니까?’ 하는 이유가 안 붙었을까? 수치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성질을 내며 돌아갔다면 그 눈이 뜨일까? 그냥 돌아갔다면 평생 예수도 못 보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의 얼굴도 못 보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체와 만물도 못 보고, 캄캄하게 태어나서 캄캄한 세상을 살다가 그냥 죽을 게 아니겠느냐?

 

우리의 몸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반응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이 감염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다. 이렇게 보면 진흙을 눈에 바르심은 예수구원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임한다고 하는 상징성이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실로암이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연못이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느냐? 자기 집에 가서 우물의 물로 씻으면 안 되느냐? 더 가까운 곳에 가서 씻으면 안 되느냐? 자기 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로 가면 안 되느냐? 안 된다. 반드시 지시된 곳에 가서 씻으라. 말씀에 순종을 하라는 거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는 대로 순종이 되니 깨끗이 나음을 받더라.

 

8-9: ‘이웃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소경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던 것을 본 이웃과 다른 사람들이 이가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고 한다.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거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만나서 눈 뜨임을 받은 후에 보는 세계가, 보는 관이, 생애의 노선이, 생애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경이었던 그 때의 인생과, 눈을 뜬 후의 인생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세상을 보는 관이 달라져야 한다. 믿기 전과 같다면 여전히 소경이다. 소경은 소원 목적성이, 신앙의 질이 세상에, 물질에 있다. 이것은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는 거다. 그러나 눈을 뜬 사람은 생의 관이 달라진다.

 

예수 믿으면서, 교회에 다니면서 세상을 구걸하는 영적인 면의 소경이 많이 있다. 왜 영의 눈을 못 떴느냐? 자신이 소경인 것을 몰라서냐,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는 눈을 떴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냐? 예수 믿으면서 지금까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을 못 만나서 실로암이 아닌 곳으로 갔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 믿는 사람이 영의 눈을 뜬 건지, 안 뜬 건지를 몰라도 되는 거냐? 예수 믿으면서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고 따지고 있다면 이는 길가에 앉아있는 소경이다. 그런데 소경은 이웃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오늘날 교회 중에도 예수님께서 보낸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교회 인도자가 세상적으로 가르친다면 이는 주님께서 보내신 종이 아니다. 교회를 질적인 면으로 볼 줄 모르면 바른 교회를 찾기 힘들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다.

 

말세가 되어서 온 세상이 세상을 따라 홍수처럼 흘러가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산 고기처럼 세상의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 짐승을 타고 앉은 여자, 산을 타고 앉은 여자, 물을 타고 앉은 여자가 나오는데, 이게 다 타락된 교회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해를 입은 여자도 있는데, 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했고, 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신앙훈련을 말하는 거다. 해를 입은 여자가 바로 자기여야 한다.

 

말세가 된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교회가 있고, 참 종이 있고, 마귀가 보낸 거짓된 종이 있고, 이단자들도 있는데, 참 보냄을 받은 실로암 못에는 예루살렘 거민을 먹여 살리는 물이 풍부하구나.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고침을 받은 소경이 당당하다. 자신의 말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소경 된 자는 구걸을 하게 되지만 눈을 뜬 자는 당당하게 주님을 증거하는구나. 이것은 질적 인격적으로 차원이 다른 거다. 예수님을 믿되 소경이 된 채로 믿는 자는 세상에 있는 것을 달라고 한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정신과 똑같은 거다.

 

내가 그로라 하니.’ 많은 사람들이 혼돈 가운데 있을 때 눈을 뜬 소경이 혼란스럽게 말을 하지 말고 달리진 것을 확실하게 밝혔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가 확실히 다르고, 세상 육적으로 믿는 교인들과 영적으로 믿는 교인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해야 한다.

 

10-11: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소경이 되었던 자가 눈을 떴으니 확실히 증언을 할 수 있다. 눈을 뜬 소경은 자기에게 변화가 일어난 게 누가 역사를 하셨는지를 확실히 안다. 그리고 어떻게 하니 눈이 뜨였는지도 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말씀대로 했더니 눈이 밝아지더라는 거다. 오늘날 자기는 눈을 뜬 자로 살고 있는 건지, 눈이 감긴 채 그냥 하나의 종교인으로 살고 있는 건지?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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