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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절기엔 무릎도 꿇지 말라>
잠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하시나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나요? 아니면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서 있나요? 저는 한때 무릎을 꿇는 자세가 가장 경건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1,700년 전 교회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주후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라는 작은 도시에 모인 300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교회의 예배를 논의하며 이렇게 결정하게 됩니다. "부활절기와 주일에는 서서 기도해야 하며, 무릎을 꿇지 말아야한다."(니케아 공의회 제20조).
이상하지 않나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무릎 꿇는 게 뭐가 그리 문제였을까요?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치 친구에게 잘못을 빌거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때처럼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자세지요. 하지만 초대교회는 부활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습니다. "부활절은 슬픔이나 회개의 날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부활절은 축제입니다. 마치 오랜 친구가 큰 병을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날, 모두가 웃으며 잔치를 벌이는 것과 같아요. 그런 날에 무릎을 꿇고 울상으로 고개를 숙인다면, 마치 결혼식에서 조문을 하는 것처럼 어색하지 않을까요?
이 전통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저는 살짝 놀랐습니다. 서 있는 자세가 단순한 예배 방식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4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성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부활절기에 서서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 은혜를 기억한다. 이는 장차 올 영광스러운 세계를 예표한다.” (On the Holy Spirit, 27.66, 출처: St. Basil: Letters and Select Works, 1886)
서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음에서 일어난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고, 이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자세라는 겁니다. 비유로 풀어볼만 합니다. 여러분이 힘든 시험에서 떨어져 풀이 죽어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너는 충분히 잘할 수 있어. 다시 일어서!’ 하며 손을 내밀어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순간, 여러분은 새 힘을 얻어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부활절기의 '서서 드리는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죄와 절망에 짓눌린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몸의 고백이며 선언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이 아름다운 전통은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서방교회에서는 12, 13세기 무렵부터 미사에서 성체를 높이 들 때 무릎을 꿇기 시작하게 됩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실제 현존이라고 믿었기에, 그 앞에서 깊은 경외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마치 왕의 면전에서 고개를 숙이듯 마음을 다해 예의를 갖추는 것과 비슷합니다.
반면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부활절기에 서서 기도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합니다. 러시아 신자들은 꼿꼿이 서서 기도하고, 그리스 신자들은 편안히 앉기도 하고요, "루마니아 신자는 무릎을 꿇는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해 봅니다. 꼭 서서 기도해야 할까요? 아니면 무릎을 꿇는 게 더 나을까요?
중요한 것은 몸의 자세보다 마음의 자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는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다시 새 희망으로 일어섭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요. 직장에서 실패하거나, 사람들과 오해가 생기거나, 삶이 버거울 때, 부활의 기쁨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 오래된 전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리는 종종 실수나 부족함에 짓눌려 살아갑니다. SNS를 보면 모두가 빛나는 삶을 사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진 듯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절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이미 새롭게 태어났어. 어여, 일어나 걸어라.”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희망의 선언입니다. 그 희망의 소리가 그리스도인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러고보면, 1,700년 전 니케아에 모인 교회 지도자들은 이 작은 규정 하나로 큰 진리를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것 같습니다. 부활을 믿는 예수쟁이들은 패대기 쳐 엎드러진 존재가 아니라, 일어서서 사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부활절기, 이제 다음 주면 성령강림절이라 부활절기가 끝나네요. 이제 한 주간 밖에 안 남은 부활절기에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기도하겠습니까? 서 있든, 앉든, 무릎을 꿇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일어서는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부활절의 참된 자세니까요. 이제 곧 시작할 새 나라도 그렇게 기쁨과 소망 가운데 모두가 일어서길 기도해 봅니다.
글.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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