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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손해 보지 않고, 똑똑하게

가족글방 양선규 (교수)............... 조회 수 14 추천 수 0 2025.06.06 08: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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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손해 보지 않고, 똑똑하게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정체성'을 아이에게 심어주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합니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라는 말을 아예 꺼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한 아이로 커 보니 남는 게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기가 턱하고 막혔습니다. 얼마나 착하게 살아봤다고 그런 '막돼먹은 가정교육론'을 펼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정말 안 착하게 큰 사람들이 저희 자식 세대입니다. 저희 세대가 모질게 살아남아서 모질라게 키워낸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살기 강박이 있지만 그렇게 살아보지 못한 자들이 자기 자식에게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지 말라고(괴로우니까) 막살기를 권하는 모습입니다. 그 결과가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인생을 초래한다는 것을 아직 몰라서 하는 짓거리들입니다. 그래서 손자의 기특한 행동을 볼 때마다 "아이구 착해라~"를 더 연발하게 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와 실제 자기를 일치시키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관련해서, 오늘은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참고가 될 내용을 조금 적어 보겠습니다. '논술의 기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논술이 어려운 것은 글쓰기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글쓰기 기술은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금방 깨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논술 출제자와 수험자 사이에는 ‘지식의 간극’, ‘이해의 간극’, ‘윤리의 간극’이 있습니다. 결국 이 간극을 어떻게 빠르고 정확하게 메꾸는가가 논술 시험을 잘 치르는 비결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재 우리사회의 수험생들에게는 공통된 강박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손해 보지 않고,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그것입니다. 그 강박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일종의 생래적(生來的) 의무감 같은 것으로 작용해 주체의 인식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거의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검사 논술의 전문가들이 노리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부분에서(강박으로 빚어지는 인식의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수험생들이 보이는 인식의 한계를 밝혀내는 것입니다. 성숙한 어른들은 알지만 미숙한 아이들은 모르는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에서는 출제자와 수험자 사이의 ‘윤리적 간극’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서 ‘윤리 지능’이 탁월한 사람과 미흡한 사람이 명백히 구별되는 문제가 종종 출제가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다음 제시문은 의사 결정의 세 가지 패턴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본인의 선택을 말하고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혀라”라고 하고 ① 강압적인 방법(청나라 왕이 조선의 왕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칙서를 보냄) ② 다수결의 원칙(대한민국 성립기의 국회 상황을 전달함) ③ 설득의 노력(소수자 보호와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에세이를 제시함) 등을 제시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 대학의 수시 논술로 출제된 사례입니다. 이런 문제가 나오면 학생들은(일부 3~40대 성인들도) 헛갈립니다. 주로 ②와 ③을 두고 고민을 합니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서 ‘윤리 지능’이 발달한 사람들은 당연히 ③을 선택합니다. 출제자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윤리적 선택)이라는 것을 (감으로라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정받고, 손해 보지 않고,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쉽게 ③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현실을 지배하는 ‘다수결의 원칙’ 쪽에 서는 것이 실패의 가능성이 적다고 여깁니다. ③은 집단의 퇴행(공익의 퇴보)을 가져올 수도 있는 ‘한계와 약점’을 지닌 (이상에 치우친) 의사 결정의 방법이라는(일 뿐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게 쉽고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요? 그런 논술 태도는 기울인 노력에 비해서는 만족스런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잘해야 ‘잘해야 본전’인 답안을 제출하는 것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면 두 눈 딱 감고 ③을 두둔하는 논지를 전개한 답안지는 어떨까요? 시작부터 후한 점수를 받습니다. “이 친구 인성 바른 친구군!”, 그런 호평 속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 식의 제시문을 주고 논술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이 벌써 ‘윤리 지능’을 문제 삼고 싶은 교수들의 존재(이상적인 삶을 꿈꾸는)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이 사회 지도층을 양성한다는 자부를 지닌 대학에서 특히 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기술이나 지식은 대학에 오지 않아도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익히고 배울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대학교수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세간에서 말하는 소위 ‘윤리 지능’이라는 말은 논술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용될 수 없는 헛말이 됩니다. 세간의 통설은 어떤지 오래된 신문기사 한 토막을 인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의도적이고 악질적인 고객의 요구는 참아야 하나, 거부해야 하나?”, “친구의 불륜을 모른 척해야 할까, 따끔하게 충고해줘야 할까?”, “12세 아들과 함께 영화관에 갔더니 알림판에 <어린이(11세까지) : 반값>이라 적혀 있다. 제값을 낼까, 살짝 속일까?”, “데이트 때 꼭 입고 싶은 드레스가 있는데 돈이 없다. 백화점은 구매 후 2주 내엔 환불해 주는 제도가 있다. 하루만 입고 환불받을까, 말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때로는 뭐가 옳은지 애매할 때도 있고, 뻔히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생명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윤리 전문가로 활동하는 저자 부루스 와인스타인은 미국판 ‘애정남’, 즉 ‘애매한 것을 정리해 주는 남자’이다. 잣대는 윤리지능(ethical intelligence). 와인스타인은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는 기본, 이젠 윤리지능 시대’라고 주장한다. 감성지능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는 해주지만 당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으며 알려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와 나에게 상처를 주지도 입지도 않으며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선 똑똑한 ‘윤리지능’이 필수라는 것이다. 애매한 상황을 구별할 수 있는 다섯 가지 기준도 내놓는다. 그 원칙은 1.남에게 해 끼치지 마라. 2.상황을 개선하라. 3.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4.공정하라. 5.사랑하라.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2012. 6.2)]
위에서 소개하고 있는 ‘윤리 지능’은 사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내용입니다. 이미 그것에 익숙한 것이 우리의 ‘참’ 생활입니다. 위에서처럼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이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요. 집단마다, 직장마다, 세대마다 요구되는 ‘윤리 지능’이 따로 있다는 것까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 대학이라는 직장에서 ‘잘’ 살아온 저의 입장에서는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무조건 하지 않는 것이 ‘윤리 지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욕망의 유혹’에 넘어가면(인사 문제나 전공 교과 문제 등에서) “늙어서 주책이다.”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젊은 동료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더치페이를 고집해도 마찬가지 비난을 받습니다. 무조건 뛰어나가서 먼저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꼭지가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을 ‘지능이론’으로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비학문적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종의 처세술개론에 해당할만한 내용을 마치 위대한 발견이나 되는 것처럼 떠벌리는 것이 그야말로 ‘윤리 지능’이 한참 떨어지는 소행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브루스 와인스타인의 ‘윤리지능’이라는 말이 ‘인정받고, 손해 보지 않고,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는 미숙한 자아의 강박을 일정 부분 위로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윤리지능’이라면 사는 게 참 쉽습니다. 제가 하는 검도교실에서 검도 수업이 끝날 때마다 늘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오늘 정말 모두들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출석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구누구의 이러저러한 발전적인 모습은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흐뭇한 광경이었습니다. 마지막 시합 때의 (누구누구의) 이런저런 태도와 기술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고치면서 검도가 느는 것입니다. 저도 수련생 시절에 이러저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계속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또 호구를 정비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다가가서 개별적으로 한 마디씩 꼭 격려를 해줍니다.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다 잘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윤리 지능’이 있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일화일 것입니다.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마침 얼마 전에도 또 페이스북에 올라와서 저의 무딘 ‘윤리 지능’을 일깨웠던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를 잡아갔다. 나는 거기에 대항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유태인을 잡아갔다. 나는 항거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노조원을 잡아갔다. 그 때도 나는 항거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카톨릭신도를 잡아갔다. 그 때도 나는 항거하지 않았다. 나는 개신교신자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잡혀갔다. 그러나 내가 잡혀갈 때는 이미 항거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 니몰로 목사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사진은 대구 범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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