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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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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원 대천덕 신부님 소천
지난 5월 19일 사고로 입원하셨던 대천덕신부님이
2002년 8월 6일(화) 오전 7:40분에 소천하셨습니다.
현재 빈소는 서울의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제 3빈소에 마련되어 있고 유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치를 예정입니다.
장례는 성공회장으로 치룰 예정이고 미사후에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한 후 예수원에 모실 예정입니다.
=====================================================
[故 대천덕 신부님을 추모하며] “당신은 진정 선지자였습니다”
지금은 사상을 갖추면 실천이 없고,실천을 따르면 왜소해지는 시대입니다. 강원도 태백 깊은 산속에 기도하는 공동체 예수원을 창설하고,불타는 사상과 치열한 실천으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될,거목의 삶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주님께서 불러 가신 분이 있습니다.
8월 6일 아침 7시 40분,루벤 아처 토레이(戴天德신부) 형제님은 84세를 일기로 영원한 안식,주님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1918년 중국 산둥성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 외국인학교를 다니고 미국에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등 고등교육과 필요한 훈련을 마치자 하나님은 그를 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가 태어난 중국 땅도 아닌 한반도로 오도록 강권하신 예수님께 순종하신 이후의 삶은 고난과 인종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전 이후 재만 남은 한국 성공회 미가엘 신학교를 다시 일으키고 다음 사명을 위하여 기도하던 그에게 주님은 생애를 건 진지한 실험을 명령하셨습니다. 세계와 한국 기독교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하나님의 공의를 타협없이 증거할 수 있는 증언대,사랑과 믿음의 바람을 불어 나가게 하는 근원지로서 예수원을 개척하게 했던 것입니다.
산골 목초지를 개간하며 칠십 노인이 손톱이 갈라져 피가 나도록 일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숙연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일을 이분이 하고 있구나’.19년 전,처음 만나 큰 스승으로 모시던 분을 꿈 속에 뵈었는데 신부님은 그날 저녁 넘어지셨습니다. 예수원 창립 37주년을 기념하던 그 날,그 축제의 장소를 마지막으로 우리를 떠나셨습니다.흰 커튼을 가운데 두고 뵌 그 새벽꿈이 당신의 가심을 예고한 것이었는지요.
10여명이 성경적 토지법을 세워야 나라가 살아난다며 신부님을 모시고 한국 헨리조지 협회를 설립한 후,역대 대통령에게,외국의 원수들에게,국회의원들에게,대중에게 글로,말씀으로 피어리게 외치던 모습은 바로 선지자,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뜻만으로 살다 간 다른 분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 모든 일을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성령님의 사역이,동시에 국가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사회정의의 분야에까지 확실하게 미치는 것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성경적인 희년사상에 기초한 헨리 조지의 토지지대 세제운동을 평생 기도운동과 성령운동으로 펼쳐 나갔습니다.
신부님은 국사(國師)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한국에 보내신 것은 사무엘처럼 새 시대를 준비하라는 뜻이 배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통일을 앞둔 한국 민족이 말씀에 기초한 새 나라를 만들도록 성경의 실천적이고 경세적(經世的)인 깊은 가르침이 주어졌다고 보입니다.
그는 무디 선생의 부흥운동의 동역자이며 그 뜻을 계승하여 성령운동과 근본주의 운동을 일으킨 토리 박사님의 손자입니다. 성경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추어 보고 제3의 통합적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이 민족에게 주어진 그의 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벽안의 흰 피부의 선교사. 그는 한국을 ‘우리 나라’라고 부르고 한민족과 민족교회를 위하여 상한 심령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기도의 거인입니다.이제 훌쩍 하늘로 뜨시고,그 기도와 실천의 자리를 채우는 일을 오늘 우리들에게 남기셨습니다.
고왕인 박사(헨리조지협회 전 회장)
지난 5월 19일 사고로 입원하셨던 대천덕신부님이
2002년 8월 6일(화) 오전 7:40분에 소천하셨습니다.
현재 빈소는 서울의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제 3빈소에 마련되어 있고 유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치를 예정입니다.
장례는 성공회장으로 치룰 예정이고 미사후에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한 후 예수원에 모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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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대천덕 신부님을 추모하며] “당신은 진정 선지자였습니다”
지금은 사상을 갖추면 실천이 없고,실천을 따르면 왜소해지는 시대입니다. 강원도 태백 깊은 산속에 기도하는 공동체 예수원을 창설하고,불타는 사상과 치열한 실천으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될,거목의 삶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주님께서 불러 가신 분이 있습니다.
8월 6일 아침 7시 40분,루벤 아처 토레이(戴天德신부) 형제님은 84세를 일기로 영원한 안식,주님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1918년 중국 산둥성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양 외국인학교를 다니고 미국에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등 고등교육과 필요한 훈련을 마치자 하나님은 그를 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가 태어난 중국 땅도 아닌 한반도로 오도록 강권하신 예수님께 순종하신 이후의 삶은 고난과 인종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전 이후 재만 남은 한국 성공회 미가엘 신학교를 다시 일으키고 다음 사명을 위하여 기도하던 그에게 주님은 생애를 건 진지한 실험을 명령하셨습니다. 세계와 한국 기독교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하나님의 공의를 타협없이 증거할 수 있는 증언대,사랑과 믿음의 바람을 불어 나가게 하는 근원지로서 예수원을 개척하게 했던 것입니다.
산골 목초지를 개간하며 칠십 노인이 손톱이 갈라져 피가 나도록 일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숙연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일을 이분이 하고 있구나’.19년 전,처음 만나 큰 스승으로 모시던 분을 꿈 속에 뵈었는데 신부님은 그날 저녁 넘어지셨습니다. 예수원 창립 37주년을 기념하던 그 날,그 축제의 장소를 마지막으로 우리를 떠나셨습니다.흰 커튼을 가운데 두고 뵌 그 새벽꿈이 당신의 가심을 예고한 것이었는지요.
10여명이 성경적 토지법을 세워야 나라가 살아난다며 신부님을 모시고 한국 헨리조지 협회를 설립한 후,역대 대통령에게,외국의 원수들에게,국회의원들에게,대중에게 글로,말씀으로 피어리게 외치던 모습은 바로 선지자,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뜻만으로 살다 간 다른 분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 모든 일을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성령님의 사역이,동시에 국가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사회정의의 분야에까지 확실하게 미치는 것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성경적인 희년사상에 기초한 헨리 조지의 토지지대 세제운동을 평생 기도운동과 성령운동으로 펼쳐 나갔습니다.
신부님은 국사(國師)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한국에 보내신 것은 사무엘처럼 새 시대를 준비하라는 뜻이 배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통일을 앞둔 한국 민족이 말씀에 기초한 새 나라를 만들도록 성경의 실천적이고 경세적(經世的)인 깊은 가르침이 주어졌다고 보입니다.
그는 무디 선생의 부흥운동의 동역자이며 그 뜻을 계승하여 성령운동과 근본주의 운동을 일으킨 토리 박사님의 손자입니다. 성경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추어 보고 제3의 통합적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이 민족에게 주어진 그의 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벽안의 흰 피부의 선교사. 그는 한국을 ‘우리 나라’라고 부르고 한민족과 민족교회를 위하여 상한 심령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던 기도의 거인입니다.이제 훌쩍 하늘로 뜨시고,그 기도와 실천의 자리를 채우는 일을 오늘 우리들에게 남기셨습니다.
고왕인 박사(헨리조지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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