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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월요 편지 3601] 2025년 6월 29일 일요일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6월 29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빗방울도 어쩌다 가끔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한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해 9월 20일, 경기 동두천시에 사는 사공 씨와 김준영(32) 씨의 다섯쌍둥이 자녀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시술이 아닌 자연 임신으로 오둥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국내 최초였다는 겁니다.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사례라고 합니다.
인간은 단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 있는 진통 물질이든, 인간이 개발한 진통제든, 그 용도를 벗어나 사용하면 순간적으로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점점 더 쾌감으로, 더 나아가서는 비현실적인 환각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후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아무리 심각해도 다시금 투약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그 중독을 자제하고 이겨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마약으로 정해서 엄격히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은 소량의 화학 물질에 의하여 좌우될 정도로 약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마약 중독자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약 투약자에 관한 뉴스를 보면, 그들이 경험한 행복이 참 행복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대체로 비참하게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도파민이나 엔도르핀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삶의 동기 부여가 정말 도파민과 같은 물질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인간의 고통을 물질로 없앨 수 있을까요? 우리가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통만 해결하면 참 행복이 오는 것일까요? 인간에 대한 과학의 답은 실제 우리 삶의 경험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어디서 오는지,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세상에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길, 행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마약에 의존하는 인간 삶의 현실을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고도의 마약류를 계속 늘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출처; 빛과 소금 2025년 7월 호에서, 성여은 서울대 교수)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주님의 명령과 계명에 따라서만 사십시오. 여러분이 그대로만 하면 복을 받아 행복해질 것입니다. [신10:13]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를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온유)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결코,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 않음’의 미덕
산책을 좋아합니다. 정확히 말해, 산책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산책이라 부르기에 친구와 내가 걷는 거리는 행군에 가깝습니다. 만 보는 기본, 2만 보 길게는 3만 보를 걷는 날도 있습니다. 3만 보면 20㎞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몸에 사달이 났습니다. 족저근막염. 아침의 첫걸음이 가장 고통스러운 이 병은 그의 일상을 괴롭혔습니다. 유명하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진찰을 받고, 고가의 체외 충격파 치료를 받았습니다. 발바닥 근막을 늘려주는 스트레칭도 숙제처럼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통증을 덮어두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까?” 친구는 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몸을 짓누르던 체중, 아파도 습관적으로 걸었던 발.
“내 몸은 너무 무겁고, 내 발은 쉬고 싶다!” 날카로운 통증의 목소리를 듣자, 끝없는 과부하가 그의 몸을 짓눌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걸어 다녔던 삶. 하지만, 그 자유는 발에게 족쇄가 됐습니다.
고통은 때로 훌륭한 스승이 됩니다. 생각해 보니, 평소 건강식품과 영양제 등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어온 성실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일부터! 오늘까지만!”이란 핑계를 대며 ‘나쁜 것’을 멈추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 대부분 몸에 좋은 10가지를 하는 것보다, 몸에 정말 나쁜 한두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입니다. 의사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실천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혹독한 식단 조절이나 무리한 운동 대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체중을 줄이고, 발에게 휴식을 주었습니다. 걷고 싶을 때 참았고, 오래 서 있고 싶을 때 일부러 앉았습니다. 발의 고통은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때로 진정한 치유는 외부의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닌, 내면을 돌아보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에겐 ‘하지 않음’의 미덕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출처 ; [백영옥의 말과 글],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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