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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0:1-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양의 우리의 문이란 규격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지정해 주신 문이 있는데 왜 문도 아닌 데로 들어갈까? 자기가 신앙이라고 하는 게 지정된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내 마음대로 하는 건지? 성경은 신앙의 문이 지정이 되어있다고 하는데 오늘날 교회가 신비주의나 이방종교나 무당 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지정된 문이 아니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 같으나 사실은 문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양의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는 못 들어간다. 세상은 낙하산 연줄로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예수 믿는 세계에서는 주님께 들어가는 문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양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신학교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는 게 양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냐, 아니면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거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자격을 갖춰야 하느냐? 예수님께서 지정해 주신 문이란 질적으로 어떤 거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의 존재만 달랑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예수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본질로 만들어진 성격 성질 성분 도덕성 인격성의 실상이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가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영능의 실력대로 누리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의 구원의 개념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하늘나라에 올라간다라고 할 때 이는 물질에 속한 게 아닌 영에 속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의 뜻은 예수이름을 부르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게 아니라 계속 예수를 믿어나가면서 인격과 성품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 요소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거다. 이걸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것만 알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지정해 주신 양의 문은 어떤 문이냐? 인간 조작배기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성을 입은 질만 들어가는 문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속성에 100% 맞는 곳이라서 하나님께서 누리시기에 가장 좋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믿는 우리가 그곳에 가서 하나님처럼 다스리고 누리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속성적으로 하나님을 닮지 못한 채 천국에 들어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의사적으로 하나님과 단일이다. 그러니까 천국백성은 하나님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와 의사적으로 단일이 되어야 한다. 의사적 단일이 되면 행동적 단일도 된다.

 

 

천국의 백성이라면 천국을 사랑해야 하는데, 천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천국백성을 사랑하는 거다. 이게 천국백성으로서 최고의 애국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어기고 살면서 내 동포, 내 동포하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쪽으로 나가게 되고, 이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게 된다. 이런 교인은 자기의 타락적인 주관성이 강한 거다.

 

 

주님과 의사단일로 된 영적 사상의 문, 즉 예수의 사상이라야 천국에 들어가는 거지 세상적,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 이질적인 것은 절대로 지정된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사실 지정된 문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부르는 이름만이 아니라 당신처럼 만들어지는 게 포함이 된 거다. 곧 예수님의 속성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믿느냐?’ 라고 할 때는 속성적 사상적 영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거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라는 존재를 믿는 것만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예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의미도 들어있는 건데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으로 만들어지는 영적 본질을 모른다. 그러니 성경을 일반세상의 개념으로 보고 예수님의 표면적인 활동을 따라 하는 것을 신앙으로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 남을 돕고 선행을 하는 것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이방종교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사람을 영적인 면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도 못하고, 이방종교에서도 못하고, 오로지 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거다. 안 된다는 것은 모른다는 말도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천국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자기의 존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으로 닮지 않은 것은 못 들어간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것은 모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혈기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이 혈기를 부린 성질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갔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했는데, 지옥에 간 모세가 예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겠느냐?

 

 

교회는 인간들이 만든 기독교 종교적 제도를 따르는 게 아니라 본질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는 신앙에 서 있어야 한다. 말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 신앙이 자기의 정신과 사상이 되어야 한다. 도둑이 나는 도둑이다라고 하느냐? 도둑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둑에게 속는 거다. 마찬가지로 거짓된 교회는 제도로, 종교권으로 합리화 시켜서 사람들을 속인다. 이건 인본주의 교회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본질이 들어있으면 자타에게 덕을 끼치는 행동이 나온다. ‘네가 예루살렘을 횃불을 들고 활보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가 있는지 보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예루살렘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애국자다. 나라에 이 의인이 떠나가면 쓰레기 취급이 되어서 불살라 버린다.

 

 

세상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첫째로 주님이 밤잠도 주무시지 않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 호소하시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주님의 이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인 세계의 전체 교회를 염려 걱정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살고 있는 것은, 첫째는 주님의 덕이고, 두 번째는 애굽에 의인 요셉 한 사람이 있어서 애굽 전체가 덕을 본 것처럼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것을 영적, 영적하는 것은 추상적인 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 영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거다.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알아주고,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건물은 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있기 때문에 서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반듯한 주님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면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신앙이 넘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로 들어오지 않은 목사는 교회를 한답시고 양떼들에게 세상정신을 붙어 넣는다. 교회 인도자가 영의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교인들에게 세상정신을 불어넣기 때문에 이것은 교인들에게 절도요 강도 짓을 하는 거다. 이것을 절도요 강도라고 하는 것은 교인들의 노력과 땀과 시간과 투자성과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이런 종 밑에서 배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케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자기가 예수 믿고 어느 교회에서건 열심히 충성봉사를 했는데 성경의 이치를 하나도 못 깨달았다면 강도를 당한 거다.

 

 

여리고로 내려가면 강도를 만나게 되어있고 죽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레위인도 서기관도 대제사장도 강도를 만나 자기가 죽을 까봐 다 여리고로 내려갔다. 영의 눈을 가지고 지금의 교회를 보면 교회 인도자가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상을 가지고 가르치니 교인들이 열심히 충성봉사를 한 게 다 여리고 사상에 도둑을 맞는다. 이걸 깨닫게 하려고 육적인 것을 들어서 말씀을 하는 거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순 육적인 신앙이다. 바리새 교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헤롯 밑에서 아부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은 전통이요, 정통이요, 덩어리가 크다고 큰소리치며 심판받을 짓을 하고 있었다. 이런 자들이 하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취급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물 긷는 여자를 들어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가르쳐 주셨고,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를 만난 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참 이웃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오늘날도 믿는 사람들이 뭐가 강도인지, 뭐가 절도인지를 모르고 있다. 이룰구원을 깡그리 망쳐놓는 게 강도요 절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가 참 부활의 의미와 이룰구원의 의미를 알지 못함을 통분히 여기셨다. 예수님의 말씀인즉 성도의 마지막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지금 부활의 정신과 사상으로 사는 게 이룰구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만이 아니라 당시의 바리새 교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현재에서 이뤄가는 이룰구원을 몰랐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미래의 영광을 바라본다면 현재에서 이룰구원으로 살아나야 한다. 죽은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나야 하고, 살아난 자는 말씀의 이치로 성장을 해야 한다. 이것은 용기만 가지고서는 안 되고 속성적으로 주님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이게 영능이다.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이 문이 신학공부로 들어가는 문이냐, 교단이나 교파와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인 의사단일이라야 들어가는 문이냐? 후자다. 이 문은 생명 길, 좁은 길이다. 좁은 길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길이다. 참 진짜 목사는 하나님의 본질로 된 의사단일의 문으로 들어간다. 그래야 교인들을 또 그 문으로 인도할 수 있다. 이래야 만이 양들을 보호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본질로 성장이 된다. 원칙상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하나님의 본질의 문 외에 다른 문은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문제는 신앙의 성장적인 면에서 이질로 성장을 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에 걸린다. 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못하면 점수미달로 걸리는 것과 같다. 본질에서 이탈이 된 교회는 양의 문 밖이다. 이러면 100% 도적을 맞게 되고 강도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볼 때 유형적인 간판을 붙인 것만 보지 말고 그 교회 인도자의 교훈의 질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면 교회 밖이다. 좋게 볼 때 교인들이 예수를 부르고 세상의 복을 달라고 한다면 기본구원을 얻은 것은 전제를 해야 하겠지만 이런 신앙을 가지면 성장적인 면에서 신앙이 성장이 안 된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연다. 무슨 문이냐? 양의 문이다. 그러니까 문지기가 있고, 들어가는 목자가 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문이냐? 하늘 문이 열리는, 영의 눈이 열리는 계시의 문을 열어준다는 거다. 이런 경우 문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를 위하여란 하나님의 본질로 의사단일성으로 살고 있는 참 진실한 종을 말한다. 그래서 성도가 이 말씀대로 바로만 들어가면 계시의 문이 열린다. 교인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은 계시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런 교인들은 문에서 영적 사상적 속성적으로 다 걸린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이것은 신령한 영의 눈을 열어서, 성경을 열어서 하늘나라의 일을 보여준다는 거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본질에 의사단일이 아닌 것은 양의 문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속성으로 된 게 아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다른 것이 쓱 들어오면 이것은 정확하게 계시의 문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말하자면 보았네. 들었네. 꾸었네하는 신비주의 구복주의 구국주의 세상주의 등등은 천국에 속한 계시의 문이 아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목자를 통해 하나님의 본질의 말씀을 듣는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그 음성의 질이 천국성에 관한 건지, 세상성에 관한 건지를 구분해 낸다는 거다. 이 구원의 음성을 들어야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영능의 실력자가 된다. 이러면 자랑을 해도 오직 이 자랑이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란 존재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상이요, 정신이요, 영의 운동이요, 영의 활동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교인의 이름을 불러서 인도한다는 거냐?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의 의사단일에 순종하는 자가 자기의 양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자기 양의 이름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면 주님의 양도 아니고, 자기 교회의 양도 아니다. 질이 그렇다. 믿는 우리는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본질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양이고 교회의 양이다. 하나님의 본질에서 순종이 되는 순종성은 말씀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 활동은 따라오게 된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무엇을 가지고 불러내느냐? 핸드폰으로 불러내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 불러낸다. 깨달아지는 사람은 예수님 앞으로, 말씀 앞으로 순종으로 나온다. 이게 불러내는 거다. 교회의 설교도 불러내는 거다. 참 목사는 성도의 마음과 정신을 자기 앞으로가 아니라 주님 앞으로 불러낸다.

 

 

4: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양을 내어놓으면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진짜 양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왜냐? 양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 의사단일로 잘 만들어진 신앙이기 때문에 내어놓아도 하나님의 본질에서 흩어지지 않고, 혼자 살아도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본질로 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본질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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