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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無 교회가 온다..?!
이 책이 최근 뜨고 있군요. 각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최상위권에 올라와 있습니다. 페친들과 반응과 언론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죄송한데, "아직" 저는 이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가타부타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저도 신학과 저술 활동의 최종 목표는 교회의 갱신과 목회, 설교에 있기에 이런 책은 늘 관심이 있죠.
반드시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급한 일을 마치고 읽어보려 합니다. 이런 류의 책은 제가 꼭 읽습니다. 다만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한 책에 대한 다양한 독서평과 축약된 내용을 접하면서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아직 독서하지 않았음에도 책이 뜨거운 쟁점일 때, 생각을 나눌 필요가 있어서 얼른 몇 자 적어봅니다.
벌써 30년이 되어가군요. 1990년대, 그러니까 제가 30대 시절에 <5無 교회>와 비슷한 운동(?), 또는 트랜드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당시는 교회가 최전성기였죠. 복음주의 운동의 거대한 물결이 한국교회를 휩쓸었습니다. 그때 어지간한 대형교회들이 다 생겼죠.
당시 문화적 트랜드를 가장 잘 따르며 최신식의 세련된 목회를 했던 곳은 온누리 교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파격적인 음악, 악기, 춤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여파는 무정형적 예배의 분위기로 확산되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여기저기 무정형적 예배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열린 예배"였습니다.
당시 교회들은 부흥했지만, 여전히 교회는 율법주의에 기반한 식상하고 경직된 제도화된 교회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점점 실망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새로운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기존의 식상하고, 틀에 박힌 예배와 제도화된 교회로는 더 이상 젊은이들을 끌어올 수 없고, 현재의 문화적 트랜드에 편승하여 젊은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파격적인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도 종로 어딘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 소위 그 "열린 예배"를 몇번 참가해보았습니다.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예배 공간을 가득 채워, 마치 콘서트 분위기 속에서 찬양을 부르고 몸찬양이 시연되고, 토크 형식의 메시지 나눔과 간결한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핵심 그룹이 나중에 교회를 따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교회가 만들어진 이후의 스토리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예배, 어쩌면 교회(?)의 특징이 이러했습니다.
1.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간판도 없었습니다.
2. 장로회, 당회 그런 조직이 없었습니다.
3. 새벽 예배, 그런거 당연히 없었습니다
4. 성경공부? 전혀 새로운 좌담 형식으로 간단히 예배 중에 진행했습니다.
5. 구역모임, 당연히 없었습니다.
쓰고보니 지금의 5無 교회가 되군요. 그렇습니다. 사실은 그 집회는 1990년판 <5無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말씀드렸으니 다 예상하셨으리라 봅니다.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해지더니 2-3년 지나 흩어졌습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이겁니다. 교회의 부흥과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그런 형식적인 변화가 본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형식은 늘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주의자, 형식주의자, 교조주의자가 되어 결국 패망하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기치였죠.
하지만, 형식만 바꾸고 본질은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됩니다. 저는 단연코 말씀드립니다.
위의 십자가가 있고, 장로회, 당회가 있고, 새벽 예배가 있고, 빡친 성경공부가 있고, 구역모임이라는 조직과 체제를 갖춘 교회라 해도, 즉 전통적인 5有 교회라 해도 역동적인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교회는 무엇보다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종교와 기독교는 처음부터 말씀의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그외는 비본질적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가장 중요할 수 밖에 없고, 성경공부는 두번째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게을리하면서, 5무교회로 가야 부흥된다는 것은 결국 위의 90년대의 반짝 유행하는 교회가 되자는 주장밖에 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제가 볼 때, 죄송하지만, 목회자는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목숨을 안 겁니다. 내가 들고 있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 진리라면, 강단에서 쓰러지는 각오로 진리를 설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청중은 반응하고 움직입니다. 정신 바짝 차립시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게 됩니다.
찬양팀도 목숨 걸고 찬양해야 합니다. 실력, 목소리, 무대에 섰다는 성취감으로 찬양 인도해선 안됩니다. 그러면 그냥 영혼없는 식상한 콘서트에 불과한 겁니다. 온 마음과 힘으로 찬양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청중들이 반응합니다.
새벽기도도 여전히 말씀의 역사가 뜨거운 교회는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심지어 새벽기도로 부흥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다만, 새벽기도가 형식화되니 죽을 맛인 겁니다.
쉽진 않지만, 나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나오는 새벽기도 분위기를 만들면 됩니다. 성도들은 은혜받으면 자발적으로 나오리라 봅니다. 한국교회에만 존재하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이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에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성경공부? 목숨걸고, 죽어라 해야 합니다. 제가 글이 길어지니 여기서는 간략히 말씀드리고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은데, 여러분은 소위 <신천지 교회>의 "현상," 김명진 목사의 <빛과 진리의 교회> "현상"에 주목해야 합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도, 성경공부, 훈련에 그냥 올빵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사이비 이단이냐, 건강하냐 하지 않느냐는 지금 주목할 필요 없습니다. 그 "현상"를 주목하라는 겁니다.
성경공부없는 교회? 그러면 왜 저런 이단 사이비, 파행적 교회에 왜 수십만명,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인생을 거는 걸까요? 이만희 설교, 죽어라 못합니다. 황당할 정도로 못합니다.
김명진 목사? 설교 들으면 하품이 나옵니다. 그럼 그들의 비결은 무엇이었나? 다름 아닌 체계적인 철저한 성경 공부였습니다. 김명진의 성경공부 제자훈련은 엄청났습니다. 설교가 약한 분들 중에는 이렇게 말씀공부와 제자훈련으로 우뚝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똥 먹여서 건강치 못한 훈련이 되었지만, 누차 말하지만, 그런 김명진 "현상"에 주목하라는 겁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말씀공부에 목숨을 걸었는지요? 신천지에 교인 뺏길 걱정만 했지, 우리는 성도들에게 무얼 가르쳤는지요?
우리는 그런 사이비 이단들, 건강치 못한 교회들보다 더 열심으로 성경을 가르쳐야하는 겁니다.
안 먹힌다? 그래봤자 안온다? 교인들이 싫어한다? 저도 모르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떡하든 방법을 찾읍시다. 그리고 그들 삶이 바뀌도록 목회자의 인생을 겁시다.
그래서 저는 성경공부 없는 無교회를 만들자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못합니다. 물론 5無 주장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항변할 것이고 저도 그런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저는 어찌 되었든 이런 주장은 그다지 타당해 보이진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파격적인 형식 파괴적 변화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늘 시대에 맞게 조직과 운영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항상 말씀의 본질에 충실할 때, 역사가 일어났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세례 요한은 허허벌판에서 설교했고, 예수님은 이동네 저동네 떠돌며 외쳤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삶이 변했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수 많은 설교자들이 역사적 부흥을 이끌어 왔습니다. 지금 우리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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