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1~18 역사 발전과 하나님 나라
나는 역사의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역사철학자 헤겔의 주장처럼 인류 역사는 자유의 확대라는 지향성을 갖습니다. 옛날에는 왕과 귀족과 종교인 등 소수의 특정인만 누리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자유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더 좋아져서 궁극적인 유토피아가 도래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심판을 언급하여 악한 세상에서 인간의 노력이 허사임을 암시합니다. 종말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므로 이루어집니다. 역사 발전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궤를 달리는 듯하지만 방향이 다릅니다.
그림설명 :
아르투르 미켈레나(1863~1898), <단두대로 끌려가는 샤를로테 코르데>, 1889, 203×154cm,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 카라카스
24살의 코르데(1768~1793)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자코뱅당의 공포정치를 일삼는 독재자 장 폴 마라를 1793년 7월 13일에 살해하였다. 살해 후에도 달아나지 않고 순순히 붙잡혀 살인의 불가피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흘 후인 17일, 혁명재판소는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그날 콩코드 광장에서 기요틴으로 공개 처형하였다. 절망의 순간에도 담담함을 유지하는 코르데의 모습은 단순히 화가의 창작일까?
프랑스 혁명으로 세상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세상이 된 것은 아니다. 화가는 역사의 버성김을 화폭에 담았다. 그때 교회에서는 무슨 설교가 행하여졌을까?
해병대 사단장을 위해 기도했다는 어느 목사의 말이 귀등에도 들리지 않는다. 불어난 물에 휩쓸려 죽은 해병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이 땅의 목사들이 하는 기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명한듯 하여 슬퍼진다. ㅠㅠ
520820547_30504753429139222_740097763340327061_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