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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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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방해꾼?-음악 (최덕신)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사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음악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말하고 싶다.
음악을 배제한 우리네 인생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음악이 우리들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와 활력소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음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음악 없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얼마나 썰렁할까. 그럼에도 나는 이 음악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과 함정을 폭로하고저 한다.
먼저 성경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으나 사탄의 정체에 대한 정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사탄은 음악 즉 찬양을 맡았던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루시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성경은 에스겔서 28장인데 특별히 13절에서
"...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이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루시퍼에게 음악이 맡겨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타락하였을 때에 그의 음악도 함께 타락한 것을 이사야서 14장 11절을 통해 볼 수 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성산에서 추방당할 때에 그가 음악을 가지고 쫒겨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류 최초의 음악인이었던 유발은 살인자 가인의 후손인 것이다.(창4:21) 아무튼 음악의 출발이 별로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원래 하나님을 노래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음악이 잘못된 자에 의해 잘못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음악에는 묘한 힘이 있다. 수많은 선인들과 철학자들도 말해왔듯이 음악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음들의 집합이나 나열이 아니며 그 이상의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음악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음악인들을 따르는 예배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음악과 함께 음악인들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부류들은 교회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성가대 안에 음악을 숭배하는 이들이 과연 없을까. 찬양팀 내에 곡이나 곡조,화성 자체만을 즐기는 이들이 과연 없을까.
또한 전문 혹은 비전문적인 음악사역자들 가운데 연주나 사역 후에 얼마나 많은 칭찬을 기대하고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음악 숭배자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이다. 보라, 사탄이 어찌하여 타락하였으며 하나님의 성산에서 추방 당하였는가. 바로 그의 교만이다. 그는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기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하는 그 영광!
우리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그 영광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모든 음악인들과 전공자들에게서 아주 쉽사리 동일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다 더 큰 무대에서 보다 더 큰 박수 갈채를 받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찬양은 반대이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퍼가 유혹에 빠진 것처럼 동일한 유혹에 빠지기가 아주 쉽다. 아니 어쩌면 그가 지금도 음악과 음악인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찬양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노래하거나, 그분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음악 자체가 이미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쉽게 음악 자체를 즐기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늘 내가 하나님을 즐기고 있나, 아니면 음악을 즐기고 있나 살펴야 한다.
본인의 고백이다. 대학교 1학년 때에, 거듭남을 경험하고 나서, 무심코 늘 즐겨 듣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느꼈던 그런 감흥이 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음악으로 바꿔가면서 이전의 감동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을 때였다.
“덕신아, 너는 아직도 그 음악에 빠져서 즐기고 싶니? 나는 네가 그 음악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나에게 빠져서 나를 즐기기를 원한다.” 주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그 음성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리곤 그 후로 그 음악들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주님은 우리의 감성이 주님 이외의 다른 것에 바쳐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다. 내가 드리고 있는 찬양이 진정으로 주님을 향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은연중에 음악을 숭배하거나 그 속에서 자신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 받은 루시퍼의 타락,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선물로 주신 음악의 타락,
오늘도 우리의 온전한 드려짐의 찬양을 통하여 음악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모든 예배지에서 일으킴으로, 음악으로 인하여 상처받으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자.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사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음악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말하고 싶다.
음악을 배제한 우리네 인생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음악이 우리들의 삶에 부여하는 의미와 활력소를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음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음악 없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얼마나 썰렁할까. 그럼에도 나는 이 음악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과 함정을 폭로하고저 한다.
먼저 성경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으나 사탄의 정체에 대한 정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사탄은 음악 즉 찬양을 맡았던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루시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성경은 에스겔서 28장인데 특별히 13절에서
"...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이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루시퍼에게 음악이 맡겨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타락하였을 때에 그의 음악도 함께 타락한 것을 이사야서 14장 11절을 통해 볼 수 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성산에서 추방당할 때에 그가 음악을 가지고 쫒겨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류 최초의 음악인이었던 유발은 살인자 가인의 후손인 것이다.(창4:21) 아무튼 음악의 출발이 별로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원래 하나님을 노래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음악이 잘못된 자에 의해 잘못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음악에는 묘한 힘이 있다. 수많은 선인들과 철학자들도 말해왔듯이 음악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음들의 집합이나 나열이 아니며 그 이상의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음악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음악인들을 따르는 예배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음악과 함께 음악인들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부류들은 교회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성가대 안에 음악을 숭배하는 이들이 과연 없을까. 찬양팀 내에 곡이나 곡조,화성 자체만을 즐기는 이들이 과연 없을까.
또한 전문 혹은 비전문적인 음악사역자들 가운데 연주나 사역 후에 얼마나 많은 칭찬을 기대하고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음악 숭배자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이다. 보라, 사탄이 어찌하여 타락하였으며 하나님의 성산에서 추방 당하였는가. 바로 그의 교만이다. 그는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기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하는 그 영광!
우리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그 영광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모든 음악인들과 전공자들에게서 아주 쉽사리 동일한 목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다 더 큰 무대에서 보다 더 큰 박수 갈채를 받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찬양은 반대이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퍼가 유혹에 빠진 것처럼 동일한 유혹에 빠지기가 아주 쉽다. 아니 어쩌면 그가 지금도 음악과 음악인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찬양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노래하거나, 그분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음악 자체가 이미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쉽게 음악 자체를 즐기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늘 내가 하나님을 즐기고 있나, 아니면 음악을 즐기고 있나 살펴야 한다.
본인의 고백이다. 대학교 1학년 때에, 거듭남을 경험하고 나서, 무심코 늘 즐겨 듣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느꼈던 그런 감흥이 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음악으로 바꿔가면서 이전의 감동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을 때였다.
“덕신아, 너는 아직도 그 음악에 빠져서 즐기고 싶니? 나는 네가 그 음악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나에게 빠져서 나를 즐기기를 원한다.” 주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그 음성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리곤 그 후로 그 음악들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주님은 우리의 감성이 주님 이외의 다른 것에 바쳐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다. 내가 드리고 있는 찬양이 진정으로 주님을 향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은연중에 음악을 숭배하거나 그 속에서 자신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 받은 루시퍼의 타락,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선물로 주신 음악의 타락,
오늘도 우리의 온전한 드려짐의 찬양을 통하여 음악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모든 예배지에서 일으킴으로, 음악으로 인하여 상처받으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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