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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11권] 인간 영혼의 능력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1부 제11권 (79-83)
S.T Aquinatis 지음/정의채 옮김
311쪽 29,000원 바오로딸 2003초판
79. 지성적 능력들에 대하여
80. 욕구적 능력 일반에 대하여
81. 감성적 능력에 대하여
82. 의지에 대하여
83. 자유의사(自由意思)에 대하여
79. 지성적 능력들에 대하여
①지성은 혼의 능력이 아니고 혼의 본질 자체이다. 그 이유는 지성은 정신과 같은 것인데 정신은 혼의 능력이 아니고 본질이다. “정신과 영은 관계적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오히려 본질을 지시한다.”
②지성은 수동적 능력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물은 그 어떤 것이든 다 질료에 따라 수동하고 형상의 이유로 작용(능동)한다. 그런데 지성적 힘은 지성인식하는 실체의 비 질료성을 따른다. 그러므로 지성은 수동적 능역이 아니다.
③능동지성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감각이 감각적인 것들에 대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지성도 지성적인 것들에 대해 있다. 그런데 감각은 감각적인 것들에 대해 가능태 안에 있기에 능동감각이 인정되지 않으며 다만 수동감각이 인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지성은 가지적인 것들은 가능태 안에 있기에 능동지성이 인정될 필요는 없고 다만 수동적 지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④능동지성은 우리 혼에 속하는 어떤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능동지성의 결과는 인식하기 위해 조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혼보다 위의 어떤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⑤능동지성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체에서 분리된 것은 결코(신체인) 물체의 다수성에 의해 다수화되지 않는다. 그런데 능동지성은 ‘분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능동지성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이다.
⑥혼의 지성적 부분에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거스틴은 ‘혼의 상부에 속하는 것들은 인간과 짐승에게 공통된 것들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기억은 인간들과 짐승들에게 공통된 것이다. 그는 또한 ‘짐승들은 신체의 감각들을 통해 물체적인 것들을 감각할 수 있고 그것들을 기억에 위탁할 수 있다’고 한다.
⑦지성적 기억과 지성은 각기 다른 능력으로 생각된다. 어거스틴은 정신 안에 기억과 각지(覺知)와 의지를 인정한다. 그런데 기억은 의지와는 다른 능력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지성과도 다른 능력이다.
⑧이성은 지성과 다른 능력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하위의 것들에서 상위의 것들에 오르려고 하는 경우 우리가 먼저 만나는 것은 감각이고 그다음은 표상력이고 그다음은 이성이고 또 다음은 지성 이다’ 그러므로 표상력이 이성과는 다른 능력인 것과 같이 이성은 지성과는 다른 능력이다.
⑨상위의 이성과 하위의 이성은 각기 다른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삼위일체의 모습은 이성의 상위의 부분에 존재하며 하위의 부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혼의 부분들은 혼의 능력들 자체이다. 그러므로 상위의 이성과 하위의 이성은 두 능력이다.
⑩각지(覺知)는 지성과는 다른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하위의 것들에서 상위의 것들로 오르려 할 때 우리가 먼저 만나는 것은 감각이고 다음으로는 표상력이고 그다음으로는 이성이고 그 후로는 지성이고 또 그후로 는 각지(覺知, 직관인식능력)라고 한다. 그런데 표상력(상상력)과 감각은 각기 다른 능력이다. 그러므로 지성과 각지도 각기 다른 능력이어야 한다.
⑪사변적(관상적) 지성과 실천적 지성은 각기 다른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파악하는 것(능력)과 움직여주는 것(능력)은 능력의 각기 다른 유(類)이다. 그런데 사변적 지성은 다만 파악하는 것(능력)인데 반해 실천적 지성은 움직여 주는 것(능력)이다. 그러므로 이 양자는 각기 다른 능력이다.
⑫양지(良知)는 다른 능력들에서 구별된 어떤 특수한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부류에 드는 것들은 다 같은 유(類)에 속한다. 히에로니무스는 양지를 능력들인 분노적·욕망적·이성적 세 능력에 대해 구분한다.
⑬양심은 어떤 한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오리게네스는 “양심은 혼의 반려로서 이것을 교정하고 교육하는 영이며 그것에 의해 혼이 악에서 떠나 선에 집착하는 것이다.” 혼에 있어서 ‘영’은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엡4:23)의 말씀에 따라 정신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며 혹은 표상력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표상적 봄은 영적인 것이라고 불린다.
80. 욕구적 능력 일반에 대하여
①욕구는 혼의 어떤 특수한 능력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혼이 있는 것들과 혼이 없는 것들의 공통된 것들에 대해 혼의 어떤 능력을 지정하여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욕구한다는 것은 혼이 있는 것들에도 혼이 없는 것들에도 공통된 것이다. 그것은 선은 ‘모든 것이 욕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감각적 욕구와 지성적 욕구는 각기 다른 능력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능력들은 우유적 차이에 의해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데 감각에 의해 파악되거나 지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은 욕구될 만한 것에 있어 우유적인 것이다.
81. 감성적 능력에 대하여
①감성적 능력은 욕구적 힘일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인식적인 힘(인식력)으로 생각된다. 어거스틴은 ‘신체의 감각들을 지향하는 혼의 감성적 운동은 우리와 짐승들에게 공통적이다’라고 한다. 신체의 감각들은 인식적 힘 아래에 포괄된다. 그러므로 감성적 능력은 인식적 힘(인식력)이다
②감각적 욕구는 각기 다른 능력으로서의 분노와 욕정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혼의 같은 능력이 한 조(組)의 반대적인 것에도 관련된다. 예컨대 시각은 흰(白)색 검은(黑)색에 관련된다. 그런데 적합(適合)과 유해(有害)는 반대되는 것 이다. 욕정은 적합에 관한 것이고 분노는 유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분노와 욕정은 혼의 같은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③분노와 욕정은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분노와 욕정은 감성적 능력의 부분들이다. 그런데 감성적 능력은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뱀’에 의해 표시된다.
82. 의지에 대하여
①의지는 어떤 것을 필연적으로 욕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거스틴은 “어떤 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의지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의지가 욕구하는 것은 다 의지적인 것이다.
②의지는, 그것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필연적으로 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디오니시우스는 “악은 의지 밖에 있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의지는 필연적으로 자기에게 제시된 선으로 향한다. 의지의 대상이 의지에 대한 것은 움직여주는 것이 움직여지는 것에 대한 것과 같다. 그런데 움직여질 수 있는 것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움직여주는 것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의지의 대상도 필연적으로 의지를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③의지는 지성보다 고차적인 능력으로 생각된다. 선과 목적은 의지의 대상이다. 그런데 목적은 원인들 중에서 첫째이며 최고의 원인이다.
④의지는 지성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움직여주는 것은 움직여지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전의 것이다. 그것은 움직여주는 것은 능동자이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능동자는 수동자보다 더 고귀하다.”라고 한다. 지성은 의지보다 더 전의 것이며 더 고귀한 것이다.
⑤의지라는 상위의 욕구에 있어 분노와 욕정은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욕정의 힘이라 불리는 것은 욕구하는 데서 유래하고 분노의 힘이라 불리는 것은 분노하는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감각적 욕구에는 속할 수 없고 오직 의지라고 하는 지성적 욕구에만 속할 수 있는 욕구가 있다. 예컨대 지혜를 바라는 욕정, 즉 ‘지혜의 욕구는 영원한 나라에 이르게 한다’라고 한다. 또한 감각적 욕구에는 속할 수 없으며 다만 지성적 욕구에만 속하는 분노도 있는데, 악습들에 대한 경우가 그렇다.
83. 자유의사(自由意思)에 대하여
①인간은 자유의사를 갖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유의사를 갖는 자는 누구이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7:15)
②자유의사는 능력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자유의사는 ‘자유로운 판단’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 판단은 능력이 아니고 활동을 지칭한다. 자유의사는 ‘의지와 이성의 기능’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능이란 능력의 발동의 용이(容易)함을 칭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능력태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유의사는 능력태이다. 베르나 르두스도는 ‘자유의사는 혼의, 자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태’라 고 한다.
③자유의사는 욕구적 능력이 아니고 인식적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다마스케누스는 ‘자유의사는 이성적인 것에 직결 동반한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성은 인식적 능력이다. 자유의사는 자유판단의 의미로 지칭된다. 그런데 판단한다는 것은 인식력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사는 인식적 능력이다.
④자유의사는 의지와 다른 능력인 것으로 생각된다. 다마스케누스는 텔레시스(0€入nous)와 불레시스(Bovinors)는 각기 다른 것이라고 한다. ‘텔레시스’는 의지이 고 ‘불레시스’는 자유의사이다. ‘불레시스’는 마치 하나를 다른 것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양태로 어떤 것과 관련하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요약,정리: 최용우
-월간<들꽃편지677호>202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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