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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만물의 구원

골로새서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5 추천 수 0 2025.08.30 19: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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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1:15-20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110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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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uRTEL1EMY9g 

성경본문 : 골로새서 1:15-23 

예수 그리스도와 만물의 구원

골1:15-20, 성령강림 후 6주, 2025년 7월 20일

 

골 1:15-20절은 2천 년 전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던 찬송가 가사입니다. 골로새서를 쓴 사람이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고국에 있는 출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한국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가사를 인용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신약성경 학자들은 이 단락을 ‘그리스도 찬가’라고 부릅니다. 이 단락에 나오는 가장 특징적인 단어는 만물입니다. 16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π?ντα는 영어로 all things로 표기됩니다. 그 단어가 명사로 나오기도 하고 형용사로 나오기도 합니다.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15절에 한 번, 16절에는 두 번, 17절에 두 번, 18절에 한 번, 19절에 한 번, 20절에 한 번 나옵니다. 골로새서가 말하는 만물, 즉 ‘모든 것들’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만물의 지평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선 우리집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 방 안에 물건이 많습니다. 책, 책상, 컴퓨터, 연필, 시계, 안경, 선풍기, 에어컨, 침대, 옷걸이 등등,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방을 나가서 집 안을 살피면 훨씬 많은 숫자의 물건들이 나올 겁니다. 벽에 걸린 십자가, 세탁기, 식탁, 쓰레기통, 냉장고, 그림 액자, 테니스 라켓과 가방, 신발, 등산용 지팡이 등등, 죽기 전에 다 처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면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텃밭과 꽃밭에는 각종 채소와 꽃과 나무가 자랍니다. 야생화와 잡초는 오죽 많습니까. 가끔 마당에 똥을 싸는 길고양이들이 자주 들립니다. 각종 밭일 도구와 물통과 벽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벌레들도 많고요. 동네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구 전체를 보면 인공지능이 나서도 숫자를 다 계산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막이 있고, 화산 폭발과 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있으며, 바닷속의 온갖 생명체가 있습니다. 열대 우림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 살아갑니다. 태양계로 넓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더 나아가서 우주로 넓히면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빅뱅 이후 138억 년이 흘렀다고 합니다. 우주 공간의 대부분은 흑암 에너지입니다. 태양이나 지구처럼 질량이 있는 것들은 아주 일부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 어느 곳에 예상을 뛰어넘는 지적인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설명으로 ‘만물’을 모두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설명은 인간의 감각에 포착된 영역에 관한 것일 뿐이지 더 깊은 영역은 우리가 전혀 모릅니다. 그런 영역은 영원한 신비로 남겠지요. 어떤 이들은 자연과학이 더 발전하면 만물의 모든 실체를 다 밝혀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은 밝혀진 것과 비례해서 모르는 영역이 더 많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의 형이상학적 원리로, 예를 들어 자연과학적 원리로 모두 해명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모든 것들, 즉 만물은 각각 의미장(Sinnfeld) 안에서 고유하게 실존하기에 의미장을 넘나들면서 다 해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백일홍꽃을 피우기 위해서 지난밤 뻐꾸기가 울었나 보다.”라는 시구가 있다고 합시다. 시라는 의미장 안에서는 백일홍꽃과 뻐꾸기가 연결되나 자연과학의 의미장 안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세상 전체는 사람의 지능과 기술에 의해서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무엇일까요? 그 안에 있는 만물은 무엇이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만물에는 존재 이유가 있나요? 없나요? 만물의 궁극적인 미래는 무엇일까요? 그런 만물에 둘러싸여서 사는 우리 인간은 그 만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요?

 

하나님의 형상

 

오늘 설교 본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찬가’는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해명합니다. 만물의 근원과 미래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될까요? 먼저 16-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불렀던 찬송가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세상의 막강한 권력자들을 포함한 만물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골로새서의 진술이 현대인들에게서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스도교를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예수는 종교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지 만물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본문이 말하는 왕권만 해도 그렇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로마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작동 방식으로 세상을 지배해나갔습니다. 제국을 이끌어가는 그들에게 예수는 고려의 대상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도 로마 제국의 역사가들이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서는 로마 황제의 권위도 예수로 인해서 실행될 수 있고, 모든 권세는 예수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찬양했습니다. 이런 찬양을 당시 로마 지성인들이 들었다면 가소롭다고 여겼을 겁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위험성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국제 정치를 주무르는 강대국 지도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국가의 권력을 확장하는 데에 거의 맹목적으로 매달립니다. 자기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라고 여깁니다. 기업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이런 세상 앞에서 우리는 예수가 모든 권력과 주권과 통치자와 권세들을 비롯한 만물의 근원이라는 골로새서의 그리스도 찬가를 여전히 따라서 부를 수 있나요? 실제로 공감은 가지 않으나 성경에 나왔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영혼의 무게를 담지 않고 무덤덤하게 찬송을 부르기만 하면 될까요?

 

찬송가는 기본적으로 문의 시(詩) 장르에 속합니다. 시는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시적 경험을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습니다. 거기서 생략된 내용을 찾아서 메우지 않으면 시는 오해될 때가 많습니다. 만물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골로새서의 찬가에서 생략된 내용은 바로 만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만물은 창조되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유한합니다. 설교 앞 대목에서 저의 방에 많은 것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들은 금방 없어집니다. 집도, 돈도, 살림살이도, 건강도 모두 갑자기, 또는 시나브로 소멸합니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지구와 지구가 공전하는 태양도 유한합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도 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별은 이미 우주에서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골로새서의 역사적 배경인 로마는 망하지 않을 듯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으나 결국에는 망했습니다. 로마 제국에 자기 운명을 걸었던 영웅호걸도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미국과 중국은 영원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을 비롯한 사람들의 역사와 모든 문명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피조물’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만물을 포함한 자연의 엄청난 힘과 아름다움을 인정하나 자연을 숭배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골 1:15절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ε?κ?ν το? Θεο?)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4:4절에서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히 1:3절에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나라 이 대통령이 여러 나라에 특사를 보내는 중입니다. 특사는 대통령이 아니나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기에 대통령과 똑같은 권위로 그 나라와 협상을 벌일 수 있습니다. 예수는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사라는 뜻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만물과의 화해

 

우리의 질문은 다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새서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라고 노래하는 것일까요?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근거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를 골 1:19절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충만(πλ?ρωμα)은 그 무엇으로 보충될 필요가 없는 구원 상태를 가리킵니다. 일종의 생명 충만이고 사랑 충만이며 믿음 충만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충만함이 없습니다. 늘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으로 삽니다. 늘 갈급하게 삽니다. 아니면 임시 대용품으로 충만을 경험해 보려고 애쓸 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충만을 20절이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구절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두 문장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평화를 이루셨다.”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나님과 화해되었다.”입니다. 이를 하나로 묶으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만물이 구원받았다.”가 됩니다. 이게 실제로 말이 될까요? 이게 무슨 뜻인지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까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제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함께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 찬가’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봅시다.

 

만물의 미래

 

앞에서 사람을 비롯한 만물이 결국에는 소멸의 길을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고, 어떤 사람은 이 사실에 파묻혀서 늘 초조하게 삽니다. 어떤 사람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까 지금 당장 세련되고 즐겁게 사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세 번째 유형이 가장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나 안동 지역에서 시험 문제지를 학교에서 훔쳐내다가 발각된 학생의 어머니와 교사가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높은 내신 점수를 얻어서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고 했다는 겁니다. 자녀의 미래를 세련되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겠지요. 방법은 유치하면서도 불법적이었으나 그 열망만은 다른 부모의 열망과 비슷했을 겁니다. 만약에 사람이 곧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이 어머니가 엄중하게 받아들였다면 이런 비겁하고 비열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겠지요.

 

다시 한번 사람을 비롯한 만물이 소멸의 길을 간다는 사실을 상기해 봅시다. 여기서 예외는 없습니다. 사람도 죽고 별도 죽습니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런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곧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다시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다고 본문이 노래합니다.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무슨 말인가요?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금은 여전히 소멸합니다. 이 순간은 무상하게 지나갑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순간만 이렇게 함께 지내고 조금 지나면 헤어집니다. 만물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서 이제 만물은 새로운 창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를 요한계시록은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5절)

 

여기서 핵심은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와 부활의 궁극적인 빛을 경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적 억지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고, 그러니까 종교적 독단이라고 말입니다. 과연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합리적으로 다 따져서 그 이치대로만 사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식과 합리성을 초월하는 일들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종종 벌어집니다. 중증 치매 아내나 남편을 극진히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요양시설에 보내면 되는데,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본인이 직접 돌봅니다. 비장애인 남자가 장애인 여자와 결혼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의 인생을 불행할 거라고 예단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모든 부분에서 우리의 경험과 확신은 그렇게 분명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의학 지식을 완전히 허무는 새로운 의학적 사실이 내일이라도 밝혀질지도 모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라는 비유에서 보듯이 사람들의 평판이 나빴던 세리가 오히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문제는 자신의 그 잘난 합리성에 갇혀서 그 너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신비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니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물의 화해에 관한 골로새서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그리스도 찬가’는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차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이 하나님과의 화해에 이른다고, 즉 구원받는다고 노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부활 생명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그리스도 찬가’를 부르는 골로새서 교우들과 함께 믿고 함께 희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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