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_9791165045647.jpg

영의 전투 (토저시리즈37)

A.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248쪽 19,000원 규장 2024

https://gpf.kr/wvRE4

 

“영적 전쟁 한복판에서 살아 나오는 법!!”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와 

세상의 화려한 허상에 넘어가지 말라

날마다 펼쳐지는 영의 전투에서 

진리를 붙잡고 승리하라

 

1. 영의 전투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고 우리의 종교적 형식을 무덤덤하게 쳐다만 봅니다. 하지만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이상한 적개심의 원인을 모르지만, 사탄은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는데 세상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2. 돈에 대한 예수님의 진리

예수님의 돈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 그분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자들과 달랐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예수님의 분명한 선언을 요리조리 교묘하게 설명해서 결국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제는 교회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예수님이 아니라 ‘재정’이 판단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3. 재정과 믿음

예수님께서 재정 교훈을 주실 때 비유한 자녀, 양떼, 새, 백합화는 서로 매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재정적 고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단순하게, 긴장 없이 살면서 하나님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 네 가지 피조물처럼 살기를 바라십니다. 

 

4. 비극적인 교회 성장 패턴

교회나 교파는 꽤 일정한 패턴을 따라 흥망성쇠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먼저 교회는 가난과 능력에서부터 시작하고, 기반을 잡아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재정적 안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을 만큼 성장하면, 드디어 교회가 하나님을 교회에서 내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유지되다가 한 순간에 망합니다.

 

5. 왕관을 쓴 어릿광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실질적인 의사, 정치인, 교사, 농부, 목사같은 사람들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릿광대인 ‘연예인’들이 더 높이 평가되고 떠받드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왕들에게서 왕관을 빼앗아 궁정 어릿광대에게 씌워놓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왕이라도 된 듯 뽐내면서 우리를 깔보고 있습니다.

 

6. 벌과 꿀

벌이 꿀을 얻기 위해 꽃이 많은 곳을 날아다니듯, 영적인 꿀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곳은 온전한 헌신이 있으며 기도에 전념하는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기생충처럼 달라붙어서는 안됩니다.

 

7. 부르심의 이유

그리스도인은 선을 행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분의 선한 행위를 본받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행10:38.요일4:17)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8. 선을 베푸는 기술

우리가 선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과시하기 위해 선을 행하면 그 의미는 완전히 훼손되고 자비의 의미는 퇴색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비롭지 못한 것이 되며, 도움받는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줍니다. 선행이 주님께 받아들여지려면 그 선행을 소문내지 않아야 합니다. 

 

9. 부자 교인들

어떤 부자 교인들은 교회의 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통 크게 헌금을 하고 그것을 일종의 은근한 압력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어떤 가난한 목사들은 부자 교인들의 영향력 아래 너무 깊숙히 들어가 독립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치 부자 교인들에게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것처럼 그들을 의식하느라 진리를 온전히 말하지 못합니다.

 

10. 다윗의 몰두

다윗은 하나님께 온전히 몰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레위 전통에 둘러 쌓여 살았던 유대인이었지만, 종교의 형식에 매몰되지는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16:8) 다윗은 하나님을 예민하게 의식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알아야 할 가지가 있는 존재는 하나님뿐이었습니다. 

 

11. 배움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저를 꺾어주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꺾여진 사람이었기에 그분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배우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모든 배움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상한 배움인 하나님에 대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12. 친밀한 앎

다윗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해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마치 새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토끼가 자신이 태어난 들장미 숲을 알듯이, 다윗은 편안하고 친근하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의 친근함은 경건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통해 거룩하고 깨끗한 친밀함이었습니다.

 

13. 영원한 형벌

이 세상에서 숨을 멈출 때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입니다. 이 영원한 형벌의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 지금까지 교부 중 거의 모든 사람들, 기독교 역사 속의 대부분 학자들, 성도들이 가르쳐온 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이 거북한 교리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14. 죄는 끔찍한 독초

죄는 인간의 천성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독초입니다. 죄는 우리 내면의 삶은 부수어 파괴합니다. 죄는 우리 육체로 하여금 금지된 쾌락을 추구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의 도덕적 판단이 뒤틀리게 해서 종종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보다 시간을, 천국보다 이 땅을, 생명보다 죽음을 선택하게 합니다. 

 

15. 도덕적 의무

소는 독초를 먹고 독성을 체내에 흡수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지성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악이라는 독초를 거부하고 선을 선택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의 독초를 먹은 결과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자기가 져야 합니다. 

 

16. 죄의 해독

인간은 죄의 독초를 먹고 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든지간에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인을 위해 준비하신 샘물에서 그 죄의 독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죄를 회개하고 기회를 잡든지 기회를 포기하든지 그 선택은 ‘본인’ 몫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17. 두려움의 감옥

천국의 아들들이 땅의 아들들 앞에서 공포에 질려 움츠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우리는 진리의 성경으로 성령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가두고 있는 일종의 감옥인데, 그 감옥에 갇힌 마음은 평생을 속박 속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공포에 사로잡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18. 안전한 피난처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여기 이 땅에서도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안전합니다. 육체적 죽음의 관문을 아직 통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명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형언할 수 없는 영광으로 들어가는 밝은 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19. 수입이 늘어났을 때

수입이 늘어났을 때, ①나는 더 벌게 되었으므로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고, 더 많은 종족과 나라의 복음화를 위해 헌금할 수 있다. ②내 수입이 늘었으므로 더 소비하며 즐길 수 있다. =늘어난 수입으로 육신을 더 많이 먹이고 더 많은 사치품을 즐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20. 말로만 하는 사랑

키르케고르는 “성경은 군중 속의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라는 지혜로운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인류를 향한 사랑의 증거는 많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특정 개인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일은 귀찮은 일일 뿐입니다. 

(정리:최용우)

월간<들꽃편지678호>연재

Cap 2025-09-02 07-40-22-18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