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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토저시리즈 38)

A.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320쪽 25,000원 규장 2025

 

“단단한 믿음을 갖는 법!!”

승리자이신 주님을 붙들고 

당신 앞에 놓인 전투에서 승리하라!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뚫고 

날마다 굳건해지는 불같은 믿음

 

1.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인지를 깨달을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시8:4)에서 ‘생각하시며(mimdful)’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늘 마음에 두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별난 점은 유독 인간에게 약하셔서 인류를 향한 마음의 부담을 떨쳐버리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2.다섯가지 질문

인간이라면 반드시 자신에게 해야하는 다섯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①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②나는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③나는 누구인가? ④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⑤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무지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간은 스스로 그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성경에만 있습니다. 

 

3.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데, 영원한 아들을 통해 주어진 말씀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인간들은 육적인 물체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감각기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적인 인간들이 육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언어’로 된 도구를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4.믿음과 행위

어떤 학자들은 야고보는 행위를 주장했고, 바울은 믿음을 가르쳤다고 딱 잘라서 구분하여 가르칩니다. 그런 신학 사조를 이어받은 현대의 교회들은 야고보파, 바울파로 나누어서 서로 논쟁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야고보는 모두 ‘행위와 믿음’을 동시에 가르쳤습니다. 다만 서로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을 뿐입니다. 

 

5.아담과 하와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3:8) 그들은 날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주 전체에 울려 퍼져 속량 받은 자녀들을 불러 모으시는 음성이 마치 그러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6.아브라함

하나님은 깊이 잠에 빠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15:12-16) 하나님께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그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는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7.모세와 선지자들

하나님은 모세와(출3:2)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들었고, 그분은 돌판에 손가락으로 글을 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꿈과 환상과 표적과 상징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8.성경의 영감

하나님은 수많은 저자들에게 영감(靈感)으로 말씀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딤후3:16)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읽을 때도 영감으로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그것을 ‘들을 귀’라고 합니다. 들을 귀가 없으면 성경은 천년 동안이라도 ‘침묵’하지만 영감이 있으면 성경은 깊고도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내용을 깨닫게 됩니다.

 

9.떠벌리는 그리스도인

어떤 그리스도인은 마치 ‘아나운서’처럼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떠벌립니다. 떠벌리기 위해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모든 조언을 다 해 줄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주로 ‘목회자’라고 하는 그리스인들이 그렇습니다.

 

10.주께 맡기는 그리스도인

어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주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성을 주셨고 그 지성을 통해 “이것을 행하는 것이 합당하다. 걱정하지 말라. 나는 올바로 행할 것이다.”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일단 그것을 힘써 삶 가운데 실행에 옮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11.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명령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 회심시키라’(마28:19)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다가 회심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심은 ‘완전한 구원’은 아닙니다. 다만 구원의 여정에서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12.영광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명령은 ‘회심시킨 사람들을 가르치라’(마28:19)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영광에 이르도록 말씀, 훈련, 징계, 기도, 교제로 돕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여정에서 첫발을 떼었으니 이제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달음박질 해야 합니다.  

 

13.영혼의 양식을 먹고

거듭남은 ‘새 생명의 시작’이며, 생명은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성화는 그 생명이 성령, 보혈, 말씀, 믿음, 기도, 훈련, 노력 그리고 환란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양식을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처음에는 젖을 먹지만(벧전2:2) 점점 딱딱한 ‘영혼의 양식’을 먹고 잘 소화시켜 영적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14.아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나 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아빠’라고 부른다면 하나님은 슬슬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성령님께서 심히 슬퍼하시면서 근심하실 것입니다.  

 

15.놀이터와 전쟁터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놀이터’라고 생각하지만, 기독교는 ‘전쟁터’입니다. 차를 타고 편하게 달리는 길이 아니라, 두 발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전쟁터에 넘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난이나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때마다 피할 길을 주십니다. 

 

16.도덕적 안식

하나님은 일을 마치신 다음에 안식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안식은 무언가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리하여 자꾸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도덕적 안식’이라고 하며 그것은 참된 안식이 아닙니다.

 

17.영적 안식

“장차 도래할 날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마주하겠는가? 무서운 심판 날에 내 마음에 죄가 있는 채로 저 빛나는 보좌 앞에 어떻게 서겠는가? 내가 죄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공의를 어떻게 충족할 수 있는가? 내 도덕적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는가?”이러한 고민에 답을 찾은 사람들이 누리는 안식을 ‘영적 안식’이라고 합니다.

 

18.하나님과의 교제

영적인 완전함(히6:2)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즉, 교제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영적인 완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19.십자가 속죄로

영적인 완전함(히6:2)에 이르려면 신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단지 인간을 더 나은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속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무한한 교제를 회복함으로 우리는 영적인 완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20.어거스틴의 고백

어거스틴은 참회록(Confessions) 첫장에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나이다. 우리는 당신 안에서 온전히 안식할 때까지 평안을 모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그 무엇으로도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과 평안은 우리가 영적 완전함을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추진력입니다. 

(정리: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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