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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11] 2025년 9월 7일 일요일
마음을 잡아 두는 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9월 7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는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손가락은 8개, 발가락은 7개. 신체 조건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지만, 세계 최고 테니스 무대에서 당당히 활약하는 인간 승리 주인공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카 존스(25·영국)’는 27일(한국 시각) 미국 뉴욕 USTA 빌리 진 킹 국립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 US오픈 1회전에 나섰습니다. 세계 랭킹 89위인 그는 자신보다 30계단 높은 독일의 에바 리스(59위)를 만나 세트 스코어 0대2(0-6, 5-7)로 패했지만,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지난 20일부터 이어진 예선 3경기를 모두 승리하면서 2015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US오픈 본선 무대를 밟은 것입니다.
1957년, 존스홉킨스대학교 존 리히터 교수가 진행한 물속의 쥐 실험은 다소 잔인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이 점점 차오르는 유리병 안에서 어떤 쥐는 15분 만에 생존을 포기한 반면, 어떤 쥐는 무려 60시간을 버텼습니다.
이후 실험에서는 쥐가 헤엄치며 안간힘을 쓰는 마지막 절망의 순간에 쥐를 건져 주었습니다. 이후 다시 그 쥐들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하자 모든 쥐가 평균 60시간을 버텼습니다. 건져 주는 행위를 통하여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입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혼자서 희망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의 도움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의 어려움을 알고 손을 내밀어 줄 때 비로소 버티고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7년 전 스승의 날, 혜인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더 이상 못 볼 것 같다며 마지막으로 찾아오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무지를 옮긴 뒤라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때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적게나마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습니다. 살면서 자주 떠올리는 한자가 있습니다. 잡을 조(操), 마음 심(心)자를 합한 단어입니다. 조심
두 번째로 부임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일으키는 소동과 여러 민원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조심할 때 조(操) 자가 어떤 한자인지 알아요?”
“손 수(手)변에 입 구(口)자가 세 개(品), 그 밑에 나무 목(木)자가 있는 잡을 조(操) 아닙니까?”
“맞아요. ‘조심’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관찰하고 너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잡아둔다는 말이죠.”
이후 그 말은 삶이 힘들 때 나를 돌아보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감정이 휘몰아칠 때, 사는 게 고되고 어려울 때 조심이라는 한자(漢字)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삶이 훨씬 여유롭지 않을까요?
주위에 마음의 길을 잃은 누군가가 있다면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 봅시다. 나로 인하여 그들이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출처 ; ‘좋은생각’ 2025년 9월호에서, 정왕기〈대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17:3]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다(괴테)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세상 소식 따라가면 내 마음도 읽게 됩니다.
몇 년 전, 친한 사람이 내 험담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여러 좋은 기회를 얻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나를 욕한다고?”
그날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내리듯, 그녀의 연락처와 소셜미디어, 카카오톡까지 모든 흔적을 차단했습니다. 가까웠던 사이일수록 상처는 깊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들은 말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시간이 흘러 이사를 하고, 어느 날 신문을 넘기다 기타리스트 ‘지지’의 사진에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클래식과 전기 기타, 서로 다른 무대를 오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한 기사였습니다. 사진 속 당당한 표정과 도톰한 입술이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래 미뤄둔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내 안에 없는 밝음과 친근함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것. 내가 상처받은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무게에는 질투도 얹혀 있었습니다.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내 옹졸함을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신문은 단순히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더라도 신문사마다 각기 다른 빛을 비춥니다. 활자와 활자 사이에는 독자마다 고유한 통로가 열려 있습니다. 나는 그 통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시에 내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화’라는 감정 속에도 서운함, 부러움, 질투가 숨어 있음을 알아차리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신문을 읽다 보면 ‘나는 왜 이 기사가 이렇게 불편하지?’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 질문 속에서 기사보다 내 감정의 결이 더 선명해집니다.
이것이 마음 챙김입니다. 마음 챙김은 지금 일어나는 내 감정을 붙잡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바라보는 일입니다. 호흡을 고르며 몸에서 올라오는 감각과 생각의 흐름을 살피는 연습입니다.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내가 체득한 마음 챙김이었습니다. 신문은 세상 이야기를 전하면서 동시에 내 안의 세계를 비춰 줍니다. 그래서 신문 읽기는 개인의 마음 챙김이자 사회와 함께하는 마음 챙김입니다. 타인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내 서사의 빈칸과 과장도 함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내가 여닫는 커튼과 같습니다. 순간의 감정에 따라 판단과 행동은 달라지지만, 그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닙니다. 감정을 사실로 오해하지 않을 때, 선택의 여지는 넓어집니다. 알아차릴 때 감정은 흘러가고, 나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오늘, 신문 한 편을 읽어봅시다. 세상 소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드러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에 끌려가는 캐릭터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문은 그것을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바로 나임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장치입니다(출처 ; [김필영의 ‘함께 신문 읽어요’]에서 김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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