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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0:2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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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27절-28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주님과 양, 목자와 양, 주님과 우리가 서로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향해 ‘네가 나를 아느냐?’ 라고 묻는다면 현재적 자기의 신앙이 주님을 안다고 말을 하느냐, 모른다고 말을 하느냐? 안다고 한다. 믿는 사람이라면 이게 당연한 거다. 그런데 주님을 안다고 하는 대답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 모른다고 하실까, 안다고 하실까? 만일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하신다면 나의 주관을 가지고 주님을 믿어온 거고, 나의 주관으로 주님을 안다고 한 거다.
일반적으로 상대를 안다고 할 때 무엇을 보고 안다고 하느냐? 첫째로 같이 오래 있었기 때문에 안다고 하느냐?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살았는데도 자주 싸우는 것은 서로를 몰라서 싸우는 거냐, 알기 때문에 싸우는 거냐? 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존재를 아는 것만 아니라 인격적 성품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여기에서 더 들어가 이룰구원적으로 아는 거다.
일반사람들이 서로 안다고 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실수가 많은데, 이것은 사람의 외모 외형 껍데기를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사람을 보는 것과는 180도로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 주님께서 진리 따르는 양심을 보시듯이 우리도 주님의 이 눈으로 사람을 봐야 한다. 특히 부부간에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부부라면 아담 하와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하나님이 거니시던 때처럼 서로가 깨닫고 고치고 들어 가야지 상대를 긁어서 부스럼을 내면 어쩌자는 거냐? 이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지옥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면 이미 지나간 것은 할 수 없는 거고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결혼을 할 때 상대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했느냐? 껍데기를 보고 결혼을 했으면 사건이 오기 전에, 풍비박산이 되기 전에 진리로 하나가 되어라. 안 그러면 같이 살면서 계속 의사대립이 되니 사는 게 힘이 들게 된다. 세상은 다 지나간다. 내가 먼저 죽든지 상대가 먼저 죽든지 다 지나간다. 그러니 남 탓을 하지 말고 나부터라도 진리로 달음박질을 하라.
안다고 하는 게, 두 번째는 인정정실로 안다고 하느냐? 이것으로 아는 것은 사실은 상대를 모르는 거다. 세 번째는 재산을 보고 안다고 하느냐? 네 번째는 학벌을 보고 안다고 하느냐? 다섯 번째는 사회의 직을 보고 안다고 하느냐? 여섯 번째는 외모 껍데기를 보고 안다고 하느냐?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안다고 하시느냐? 진리 따르는 중심을 보시고 ‘내가 너를 안다’ 라고 하신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여섯 가지의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성령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여섯 가지 중에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될 줄도 모른 채 그 사람을 따라간다.
예수님께서 나를 안다고 하는 것은 신의 성품을 입은 것을 보고 안다고 하시는 거냐, 세상적인 어떤 조건을 보고 안다고 하시는 거냐? 오늘날 목사가 교인을 알기를 신의 성품을 입은 것을 보고 ‘믿음이 좋다. 안 좋다’로 안다고 하는 건지, 세상적 물질적 학벌적 지위적인 세상의 조건을 놓고 안다고 하는 건지? 하나님께서는 만능의 능력자요 온 세상이 당신의 것인데 이런 분이 나의 세상적인 조건을 보고 안다고 하시겠느냐? 우리 주님은 ‘인격적 성품적으로 너도 나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라’ 라고 하신다. 그러니 교회 인도자도 여기에 맞춰서 사람을 봐야 한다.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양들이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거냐? 자기의 주관적인 눈으로 보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망한다. 자기도 망하고, 망할 그 자기로 타와 연관이 되면 타도 망한다. 영원히 망한다. 사업이 잠깐 망해도 고통스러운데 사람이 영원히 망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일반적으로 사람이 임시적으로 망하는 것은 다 안다. 마약이나 먹고, ‘돈 돈’ 하며 돈에 이해타산을 두고 사는 것은 사람이 망한 거다. 그런데 자기 주관적인 눈으로 보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이 사람은 영원히 망한다. 현재 살아있어도 이 사람 속의 영원한 것이 망한다. 반대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예수님을 통해 천국이 보여진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
자기가 안다고 하는 앎의 지식이 잘못되면 사람이 영원히 망하는 것을 모른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예수를 잘못 믿어서 망한 사람이 참 많다. 이단자들만 아니라 거짓된 신앙지식을 가지고 믿는다면 이 사람은 이미 망한 거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과 환경과 환난과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적 실상적 온전으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잘 살아도 사람의 정신이 넘어지면 다 넘어진다. 넘어질 사람은 환경 탓을 하거나 ‘나중에 믿으면 되지’ 이런 식이다. 못 믿을 사람이다.
예수님의 양이 아닌 사람은 마음중심에 세상을 품고 있다. 불탈 거, 변질될 거, 진동되고 요동되면 넘어질 것을 품고 있다. 세상 것은 다 불타고 변질되고 썩고 냄새나고 진동되고 요동되는 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좋네. 나쁘네’ 하고 따진다면 정신적 소원 목적적으로 썩어질 것을 잡고 사는 것이라서 이 사람에게서 썩는 냄새가 난다.
아무리 성경을 인용할지라도 세상사람들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따지는 것은 마귀 짓이다. 전부는 거짓말이다. 현재에서 궁극적 결과적인 구원이 되지 않는 말은 전부가 거짓말이다. 거짓이나 이단이나 적그리스가 이런 말을 한다. 사단 마귀가 이런 수단으로 사람을 넘어뜨린다.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 속의 참과 거짓을 영의 눈으로 구별 분별하며 자기의 마음을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
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영생’이란 오래 오래 사는 거다. 지옥도 안 죽고 오래 오래 살지만 이곳의 삶을 영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생은 신령천국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미래가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땅의 삶이 평강이요 걱정 근심이 없는 거다.
이 영생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세상의 어느 지도자도 주지 못한다. 어떤 이방종교의 교주도 주지 못한다. 이방종교에는 영생이 없다. 능력이 있다고 하는 목사도 이 영생을 주지 못한다. 오직 영생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며 자라고 따르는 자에게 이 영생을 주신다.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된 성격과 성질과 성분은 전부가 거룩하고 죽지 않는 영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그러나 세상 인본주의로 속화된 교회는 기본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이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말할 게 아니고, 그러나 실력적으로 이뤄진 구원이 없다. 영능화 실력화 되는 게 없다. 안 믿는 사람들처럼 사람을 외모 외형 기준으로 본다.
주님이 우리를 외식으로 보셨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한다. 주님께서 나를 외식적인 눈으로 보시지 않았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외식적인 세상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구원을 기준으로 보는 거다. 사람을 볼 때 ‘예수를 안 믿어도, 제대로 예수를 못 믿어도 너에게는 이룰구원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고 보는 것은 외식이 아니다.
목숨을 바쳐서 주님께 열심히 충성봉사를 했는데도 주님께서 ‘난 너희들을 모르겠다’ 라고 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활동과 사역은 많이 했지만 속성적으로 사람이 주님의 성품으로 변해진 게 없다는 거다. 다른 말로는 세상정신이 그대로 들어있다는 거다. 멸망될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거다. 성경의 법대로, 하나님 법대로, 창조의 법대로 안 믿었다는 거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다른 종교처럼 세상을 사는 게 따로 있고, 예수 믿는 게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 전부가 예수님의 정신과 사상과 감화성으로 사는 건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선악과를 먹고 나온 타락된 지식을 기준으로 사는 것은 계속 선악과를 따먹는 거다. 인간은 생명과를 먹고 사는 게 삶의 정로인데 자기의 생각과 정신이 선악과를 먹은 지식이 기준이 되어서 ‘예수를 믿으면 손해를 보는 것도 많고,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자기의 성격과 성질과 성분이, 자기의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예수님의 것으로 닮은 것은 멸망이 될 게 없다. 죽을 게 없다. 심판 받을 게 없다. 영생이다. ‘영생’이란 질적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안 죽을 것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믿는 우리에게 말씀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영생의 나라에 가기 전에 영생적인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지라는 거다. 이게 예수 믿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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