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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호랑나비돛배
홀로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가파른 목조계단 위에
호랑나비 날개 한 짝 떨어져 있다.
문득
개미 한 마리 나타나
뻘뻘 기어오더니
호랑나비 날개를 턱, 입에 문다
그러고 나서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호랑나비 날개를 번쩍 쳐드는데
어쭈,
날개는 근사한 돛이다.
(암, 날개는 돛이고 말고!)
바람 한 점 없는데
바람을 받는 돛배처럼
기우뚱
기우뚱대며
산길을 가볍게 떠가고 있었다.
개미를 태운
호랑나비돛배!
문주란
뜨락에 핀 꽃들을 보며 벌건 대낮부터 곡차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들 벌게진 눈길로 길쭉길쭉한 푸른 잎새들 사이에서 말좆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문주란을 감상하고 있는데, 훌떡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 거사(居士)가 문주란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이년 저년 찝쩍거리지 말고
저 문주란처럼
좆대를
하늘에다 박아,
하늘에다 말이야!
대머리 거사의 일갈 때문일까. 문주란이 놓여 있는 뜨락 위의 하늘이 더 깊고 쨍쨍해 보였다.
소용돌이 춤
폭우 내린 다음 날
맨 종아리로 무심천 여울목을 건너다보면,
밤새 불어난 물이 큰 바위에 부딪치며
소용돌이 춤을 추고 있네.
저렇듯 소용돌이치는
물의 무희(舞姬)가 악어의 이빨을 가졌더라면
바위는 마모되어 흔적도 안 남았으리라.
하지만 바위의 허리를 부드럽게 애무하는
무위(無爲)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문득, 내 생의 소용돌이도 겹쳐지네.
대관령 옛길처럼 숱한 굽잇길에서
행운의 여신을 부둥켜안고
소용(笑容)돌이 춤을 춘 적도 있지만
물불을 못 가리는 물욕에 눈멀어
물기둥 불기둥을 끌어안고
회오리친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홀황홀혜할 때도 있었지만
소용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화상을 입거나 익사할 뻔한 적은 또 얼마던가.
이제 등 뒤에 바짝 다가선
마지막 굽이,
홀연 죽음의 무희가 손 내미는 순간에도
그 손 맞잡고 춤출 수 있으려나.
산수유 목련꽃들이 쩍쩍 벌어지며
겨우내 웅크린 마음들을 들뜨게 하던
지난 봄날,
거대한 솔숲과 천년 사찰을 널름 집어삼킨
화마(火魔)의 소용돌이 춤도 나는 보았네.
언제 철들래?
평생 가슴에 품고 갈 감동어린 풍경 한두 컷이 있다면
무거운 生이 한결 가벼워지리.
지난겨울 네팔 페와 호수에서
뱃놀이하며 바라본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솟구친 히말라야 영봉들,
뱃머리가 힘차게 나아가며 일으킨
호수 물결 위로 영봉의 하얀 빙설이
은빛 비늘로 부서지며 소용돌이칠 때,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곁님이 말했지; 여보, 이젠 죄 짓지 맙시다!
오늘 그에 버금갈 풍경 또 한 컷 얻었으니
네팔 다녀온 뒤
치말라야라고 별명을 붙인 치악산 등산을 마치고
황골 고샅길로 들어서는데,
깔깔대는 동네 아이들 몇 모여 있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황구 두 마리가 엉덩이를 맞대고
쌍붙어 있었어. 짓궂은 사내아이 두 녀석이 몽둥이를 들고
쌍붙어 있는 걸 자꾸 떼놓으려고 괴롭히기에
이 녀석들, 하고 제법 큰 소릴 질러 멀리 쫓아 보내고는
히힛, 정작 나는
그 좋은 구경에 오랫동안 발길을 떼놓을 수가 없었지.
내가 아직 그렇다니까.
먼지 덮인 골동품 가게에서 사온 밀교 분위기 물씬한
남녀교합상(男女交合像)을 매일 한두 번씩 만지작거리거나
창턱 가까이 놓은 문주란이
우산살 펼치듯 슬로로 꽃잎을 열 때
꽃잎 속으로 긴 코를 쓱, 들이밀기도 했지.
그런 나를 힐끔거리며
언제 철들 거냐고 곁님은 빈정대지만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무서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좋은 풍경 한 컷 얻은 날 밤은 그제나 이제나
쉬 잠 못 이루고 뒤척이지.
이게 무슨 병일까, 난 왜 아직도 가슴이 콩콩 뛸까.
쌍붙어 있던 놈들은 딴청 부리듯 각기 딴 방향으로
먼 산을 향해 눈알만 멀뚱멀뚱 굴렸는데……
직박구리
어떤 시인이
꽃과 나무들을 가꾸며 노니는 농원엘 갔었지요.
때마침,
천지를 환하게 물들이는 살구나무 꽃가지에
덩치 큰 직박구리 한 마리가 앉아
꽃 속의 꿀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지요.
곁에 있던 누군가 그걸 바라보다가,
꽃가지를 짓무르며 꿀을 빨아먹는 새가 잔인해 보인다며
훠어이 훠어이 쫓아버렸어요.
아니, 그렇다면
꿀이 흐르는 꽃가지에 앉은 生이
꿀을 빨아먹지 않고 무얼 먹으란 말입니까.
시바 히말라야*
- 힌두교 사원에서
해질녘 종 칠 때가 되었는지
열서너 살쯤 돼 보이는 어린 동자승이
사원 경내에 매달린 종을 치러
촐랑촐랑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사원 뒤로 우뚝 만년설을 머리에 인
시바도 자애로운 눈길로
어린 동자승을
대견하다는 듯이 굽어보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사원,
욕망의 공장인 머리를 뚝 떼어놓고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참배객들이 모두들 꼬린내 나는 신발을 벗고
줄을 서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신들의 나라에 왔으니
신들의 나라 법을 따라야 마땅하겠다.
줄을 서서 기다리기가 짜증이 났지만
나는 구름신발을 신고
붉은 노을이 물드는 영산(靈山) 위를 거니시는
시바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기다린 보람이라 할까,
이마에 동자승이 찍어주는 꽃물 들이고 나오는 참배객들처럼
나도 이마를 벌겋게 물들일 수 있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처럼 꿰어야 할 신발도
벗어야 할 신발도 없는 별들은
맨발로 사원 지붕 위를 사뿐사뿐 거닐고 있었다.
* 네팔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시바 히말라야'로 부른다
악양 시편 1
스멀거리는 안개가
악양 들판의 고요를 하늘로 밀어 올리는 새벽,
그 고요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들판을 바라보니
들판 또한 나를 바라보네.
반 뼘쯤 자란 논보리도 초록초록 눈을 떠
나를 바라보네.
논보리밭 사잇길 말뚝에 매인
흑염소 두 마리도 고개를 갸웃대며
낯선 나를 바라보네.
그렇게 나를 바라보다가
어린 뿔로 들이받을 듯 달려들기에
뿔 없는 나도 손가락뿔 세워 저를 들이받는 시늉을 하며
흥에 겨워 한참을 노는데,
어디서 갑자기 불어온 들개바람에
보리밭이 흔들리고
냇가의 억새가 흔들리고
어린 흑염소 뿔이 흔들리고
흑염소와 놀던 나도 휘청, 흔들리네.
문득
중심을 잃은 황홀에 몸 비비다
다시 눈을 들어 들판을 바라보네.
오늘 같은 날은,
악양 들판이 일으키는
초록 지진에 흔들리다 파묻혀도 좋겠네.
악양 시편 3
미안하다
섬진강
희디흰 모래톱에
때 묻은 발자국 남기는 것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모래톱에 발목을 빠뜨리며 걷다가
모가지 쑥 빼어
하늘에 흐르는 궁전(宮殿)을 쳐다본다
가난한 내 세간살이를
소나기처럼 쏟아버리고
저 구름궁전 위로 솔가할 순 없을까, 무슨
신산(神算)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뭉클한 생각에 쏠려본다
돌아보면
모래톱 위에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도
내 것이 아닌데
저 구름 위에 세(貰) 들고 싶어 눈으로 찍어놓은 점도
자취가 없는데
가슴에 뭉클하게 남은 이건 뭔가
어디든 들고나는 일이
어느 사원의
불이문(不二門)을
쓰윽 지나치는 일 같다면……
가슴에 뭉클하게 남은 이건 뭔가
몸을 얻지 못한 말들이 날뛸 때
누가 방음벽을 설치해 놓았을까 아흔이 되신
노모의 귀는 캄캄절벽이다
그 절벽에 대고
고래고래 고성을 질러봐야
말들은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고 만다
몸을 얻지 못한 말들은
노모가 젊을 적 키질할 때
키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나가던
쭉정이 같다
하루 해가 다 저물도록
말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절벽에 갇힌 늙은 고독은 그래도 몸이 있다고
몸을 얻지 못한 말들이 다가와
고래고래 날뛸 때
키로 쭉정이를 날리듯 밀어내고
말뚝
삼십 년 만에 만난 배불뚝이 동창생 녀석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예나 이제나 고향 우시장(牛市場)에 박힌
말뚝처럼 비쩍 마른 건 여전하구나!"
평생 내 삶을 괴어온
내 안에 살아 계신 이가 불쑥 나서며
이렇게 날 변호하는 것이었다.
"비쩍 마른 말뚝임엔 틀림없으나
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이라네!"
옻나무
원주 변두리 깊은 골짜기의
산비탈,
초가을 볕이 내 몸의 체액을 말리고 있었지.
이미 무수한 칼집을 받아
몸뚱이 가득 말라붙은 검은 체액.
투명한 허공이,
허공을 빗질하는 가을볕이 검은 타이어 바퀴 자국 같은
너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허공과 몸 비비는
상처가 왜 그리 눈부셨던지.
검은 상처가 환히 비추는,
칠기공예가의 장롱에 아홉 겹으로 칠해진
불멸(不滅)의 빛을 미리 보았기 때문일까.
몇 번인가 네 모습에 연민이 일어
골짜기를 찾아들곤 했지만,
오늘 네 상처에서 불멸의 빛을 읽다니.
나 아닌 나가 되는 신비(神秘)를 읽다니.
불그죽죽 일직 단풍 들고 골병 든,
너로 인해 더욱 깊어진 가을 골짜기에서.
꽃다운 첩 들여?
귀빠진 쉰한 살 오늘 내 일기 속엔, 빈집이 세 채나 들어와 있네
원주시 신림면 일대 살림집을 구하러 시골 빈집들을 순례하듯 찾아 헤매며
기울어기는 빈집에서 만난 부서진 문짝 다섯, 거미 일곱 마리, 마른 쑥대 가득 덮인
마당들의 괴괴함이 으흐 몽당귀신처럼 들어와 있네
쉰한 살,
빈집이 세 채라!
(얼마 전 만난 짓궂은 벗은
우리 나이가 첩(妾) 둘 나이라는데)
집마다 살림 차려
꽃다운 첩 들여?
문짝 달고
쑥대 걷고
꽃다운 첩 들여?
은밀한 기쁨
예기치 않게 찾아든 추위에
현관 앞에 놓아둔
천리향이 옹송그리고 있었다
얼른 안으로
천리향을 들여놓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봉긋봉긋
꽃망울들이 나와 있어
"어, 벌써 꽃망울이……"
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같이 사는 이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속삭였다
"은밀한 기쁨이지 뭐에요"
내년 봄에 필 꽃망울인데!"
은밀한 기쁨?
암, 그렇고말고!
이젠 당신이 시인 해라, 시인 해!
뒤로 걸어보렴
너무 앞으로만 걸었어.
앞으로
앞으로
걸어도
진보는 없고
생은
진부해지기만하니
이젠
뒤로 걸어보렴.
(혹시 알아?)
뒤로
뒤로
걷다가
네 오랜 그리움
영혼의 단짝을 만나게 될지……
민음의 시 130
『수탉』
- 지은이 / 고진하
- 펴낸 곳 / (주)민음사
- 펴낸 때 /2005년 12월
고진하
-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1990), 『프란체스코의 새들』(1993), 『우주 배꼽』(1997), 『얼음 수도원』(2001), 『수탉』(2005), 『거룩한 낭비』(2011) , 『호랑나비 돛배』(2012), 『꽃 먹는 소』(2013), 『명랑의 둘레』(2015), 『야생의 위로』(2020) 등이 있음.
- 김달진문학상(1997), 강원작가상(2003), 영랑시문학상(2016) 수상.
-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원주 한살림교회 목사.
[출처] 시집 354. 고진하 -『수탉』|작성자 느티나무
고진하 목사 다섯번째 시집 ‘수탉’
동아일보 / 2006.01.13. 권기태 기자
중진시인 고진하(53·사진) 씨가 다섯 번째 시집 ‘수탉’을 민음사에서 펴냈다. 그가 사는 강원 원주시의 이곳저곳을 마치 수탉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잡아낸 생명의 모습들을 충만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흥미로운 시집이다. 아내와 벗들, 죽은 호랑나비를 물고 가는 개미, 직박구리와 민들레 같은 삼라만상이 이 노래하는 수탉의 눈동자에 비친 이야기감이다.
시인은 일상 속에 자체 완결된 소우주들을 발견하고 거기 깃들인 신성성(神聖性)을 노래한다. 고 씨는 목사지만, 그의 시에 걸맞은 것은 유일신보다는 오히려 각자 해탈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만물이 연기(緣起)로 이어져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인 것 같다. 시인은 황달에 걸린 아이의 잠든 얼굴을 고통스레 내려다보며 금빛 찬란한 부처를 보기도 하고, 사찰 앞뜰의 머위 잎에서 대웅전 부처님의 거름 같은 오줌을 떠올린다. 산불로 재만 남은 낙산사의 주춧돌을 보면서 ‘적멸궁’이라고 폐허를 위로한다.
그는 이윽고 한 성상(聖像)에서 종교들의 긴장마저 완전히 사그라진 원융(圓融)의 세계를 본다.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에 가면,//성당 입구에/미륵반가사유상처럼/오른쪽 다리 들어 왼쪽 무릎에 올려놓고/두 발과 두 손에 박힌 못 빼어 한쪽 손에 꼭 움켜쥐고/다른 쪽 손으로 턱 괴고/가시면류관 헐렁하게 쓰고 앉아/눈웃음 짓고 있는 목조예수상이 모셔져 있지요.//한 몸뚱이에 붓다와 예수가 동거하는 저 상(像)에서/(…)/합장한 두 손이 춤 멈춘 꽃잎처럼 이뻤어요.’(‘합장’ 가운데서)
시인은 자기가 모시는 신에 대해 ‘범신론이든/유신론이든/(…)//내가 믿는 하느님은/그런 …論의 그물에 걸릴 분이 아니라니까요.’(‘어떤 인터뷰’에서)라고 밝힌다.
그럼 그의 신학은 어떤 것인가. ‘어떤 형상과 문법과 경계도 고집하지 않는
구름 속을 드나들었다 이젠
구름 신학이다!’(‘구름과 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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