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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라일락
돋올볕에 기대어 뾰족뾰족 연둣빛 잎들을 토해 내는
너의 자태가 수줍어 보인다.
무수히 돋는 잎새마다 킁, 킁, 코를 대보다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
천수관음보살을 떠올렸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지극한 보살이 있어
천개의 눈과 손마다
향낭(香囊)을
움켜쥐고 나와
천지를 그윽하게 물들이는
너의 공양을 따를 수 있으랴.
홍련암에서
바다가 번쩍 들어올린 홍련암,
바다는 왜 하필 절을 그 벼랑 위로 들어올렸을까.
절 받으러 절을 들어올렸을까.
넙죽넙죽 절을 하다가 파랑새를 보았다는
보살(菩薩)도 있다는데,
벼랑 아래 파랑파도가 푸드득 깃을 달고 올라와
팔작지붕에 앉았던 것은 아닐까.
아무렴 어때.
아무렴 어때.
넌 절 받으면 되고, 난 절하면 되지.
오래된 꽃담 아래 서면
ㅡ 낙산사에서
오래된 꽃담 아래 서면
오래 그 아래 머물고 싶어진다.
안에 그윽한 향(香)을 지닌 것들은
푸른 덩굴손을 뻗어 손쉽게
월(越)담을 하지만,
안의 보물을 다 훔쳐내지 못한 나는
아직 이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큰 도둑을 기르는 사원(寺院)의
오래된 꽃담 아래 서면,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큰 도둑이고 싶은 것을.
어머니의 총기
영혼의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센 듯싶은
팔순의 어머니는
뜰의 잡풀을 뽑으시다가
마루의 먼지를 훔치시다가
손주와 함께 찬밥을 물에 말아 잡수시다가
먼 산을 넋을 놓고 바라보시다가
무슨 노여움도 없이
고만 죽어야지, 죽어야지
습관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이젠 섭섭지 않다
치매에 걸린 세상은
죽음도 붕괴도 잊고 멈추지 못하는 기관차처럼
죽음의 속도로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데
마른 풀처럼 시들며 기어이 돌아갈 때를 기억하시는
팔순 어머니의 총기(聰氣)!
연꽃과 십자가
- 법정 스님 : 김수환 추기경
벽이 허물어지는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네.
저마다 가는 길이 다른
맨머리 스님과
십자성호를 긋는 신부님,
나란히 나란히 앉아 진리의 법을 나누는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네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아름답네.
자기보다 크고 둥근 원(圓)에
눈동자를 밀어넣고 보면
연꽃은 눈흘김을 모른다는 것,
십자가는 헐뜯음을 모른다는 것,
연꽃보다 십자가보다 크신 분 앞에서는
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는 것,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것.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귀하다네.
늦은 어울림이라도 어울림은 향기롭네.
이쪽에서 <야호!> 소리치면
저쪽에서 <야호!> 화답하는 산울림처럼
이 산 저 산에 두루 메아리쳐 나가면 좋겠네.
구룡사 은행나무
올망졸망한 흥부네 새끼들처럼
무수한 잔가지들을 하늘 가득 거느리고 있었다
그 잔가지들을 다 품을 수 없어 나는
한아름도 넘는 나무 밑동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렇게, 사랑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어린 은행잎에 듣는 빗방울이 속삭여주었다.
소나무들을 추모함 2
제 키만큼 속으로 깊은 토굴을 파고 절대침묵 속에 용맹정진하던
푸른 수도승들의 다비식이 끝났다.
그 부재(不在)의 잿더미 우으로 흰나비 한 마리 나풀나풀 날아간다.
어쩌면 솔향 그윽한 사리를 찾으러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빙어
그 어느 날 강가에서
속없는 은빛 날고기를 먹었었지.
속이 환한 널 처음 보며 얼마나 눈부셔했던가.
나무젓가락으로 펄펄 살아 뛰는 너를 집어
초고추장에 휘휘 저어 먹으며 얼마나 찜찜해했던가.
먹고 먹히는 것이 산 것들의 숙명이라지만
감출 죄의식조차 없이 투명한 생(生)을
너무 사납게 씹고 또 씹었던 것은 아닌가.
먹을 것이 왜 하필 여리고 속없는 것이어야 했던가.
속없으니 뒤탈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가.
아작아작 투명한 것을 씹어
불투명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던가.
물의 길을 따라가다 재수 없게 걸려온 생(生)이
미로의 창자 속으로 들어가 무엇이 되었던가.
비계와 똥이 되었던가.
미로 속 미궁을 깨부수는
통쾌한 유머 같은 것이 되었던가.
속 다르고 겉 다르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었던가.
혹 배탈 같은 뒤탈은 없었던가.
가을 하늘처럼
속없이 눈부셨던 널 떠올리면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자꾸 물어서 뭘 또 건지려 하겠는가.
밥
밥 냄새는 구수하다.
뜸드는 밥솥 곁에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
밥 냄새는 구수하다.
어머니의 눈물에
어머니의 살을 썩썩 베어 안치고
밥을 지으시던,
이제는 늙고 손이 떨려
밥 짓는 시늉만 하시는,
밥이 되신 어머니는 구수하다.
참 사랑은
먹는 자가 먹히는 자가 되는 거여
밥이 되는 거여, 라고
아직 밥이 되지 못하고
낱낱의 쌀알로 맴도는 아들에게
밥 되기를 가르치시는
나의 어머니, 나의 예수여!
질경이
밟히고 밟힌 질경이
또 고개 빳빳이 쳐들고 일어나듯
그렇게 밟지 말고,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그대의 두 발로 꽉꽉 밟아주오.
죽어서,
그대 사랑의 옷깃 속으로 퍼렇게
스며들도록!
제(祭)
사랑의 증식을 멈춘 미소 띤 거미줄,
하늘을 향해 눈감고 누워 있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얼굴에 입맞추며
추모하기 위해 늘어선 저 행렬이
제 어미 몸뚱어릴 뜯어먹기 위해 몰려드는
어여쁜 염랑거미 새끼들만 같다
어, 어무이여!
자유에 대하여
진돗개 한 쌍이 한판 붙어 잘 놀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울려 노는데 십만 원쯤이 들었다고 한다 점잖은 체면에 교미라는 말은 너무 원색적이라 개 혼례를 치르고 왔다고 실실 웃으며 말하는 친구는, 이십 년쯤 개를 사육해 온 개 사돈이 다붓다붓 들려준 말이라며 이죽거렸다 개는 밥 주는 사람과 목줄 끌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목줄 끌러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그러니 개도 자유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냐고! 설마 그렇겠냐, 그렇겠냐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려 내 목덜미를 쓸어 보았다 내 목덜미엔 아무 것도 만져지지 않았으나, 내 몸 안에서는 무슨 쩔렁대는 사슬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하늘빛 고요
ㅡ 피정 일기
저는 죽었습니다. 이제
당신 안에서
새로운 신뢰를 얻길 원합니다.
낡은 시간의 옷을 벗기고 당신이
갈아 입혀준 새 옷이, 빛나는 현재이길 원합니다.
해일이 휘몰아치는 당신의
바다, 거센 의혹의 물살 견디면서
제 영혼의 진주를 키우렵니다.
고통은 저의 다정한 벗,
반지를 끼듯 삶의 고통과 팔짱 끼고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가렵니다.
소지(燒紙)가 타오르듯
사랑은 불타 올라야 하는 법. 이미
죽은 저를 위해
비석 따윌 세우지 말게 해주십시오.
심해의 물고기처럼 저는 당신에게
눈멀렵니다.
눈멀어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겠습니다.
강진만(灣), 오늘
저 바다에 떠 있는 하늘빛 고요는 바로 접니다.
당신의 크신 은총에 감사할 밖에요!
석류
ㅡ 피정일기
새소리에 잠이 깨어
어슴새벽 뜰로 나가니
석류 열매들이 떨어져 사방에 나뒹군다.
쪼개져 붉은 잇몸과 하얀 치아를 드러낸
석류.
벌어진 입에서 무슨 말인가 뱉을 듯도 싶지만
수도원의 고요를 깨뜨리지는 않는다.
심술궂게 입을 쩍, 벌려보지만
완강한 침묵을 깨뜨릴 순 없다.
손가락으로 씨앗을 파내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달콤하다.
명상의 씨앗도 이처럼 달콤할까.
묵언중이신 수녀님들께 물을 수도 없고
입안에 있는 씨앗만 오물거린다.
달콤하다.
민음의 시 100
『얼음수도원』
- 지은이 / 고진하
- 펴낸 곳 / (주)민음사
- 펴낸 때 /2001년 4월
고진하
-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1990), 『프란체스코의 새들』(1993), 『우주 배꼽』(1997), 『얼음 수도원』(2001), 『수탉』(2005), 『거룩한 낭비』(2011) , 『호랑나비 돛배』(2012), 『꽃 먹는 소』(2013), 『명랑의 둘레』(2015), 『야생의 위로』(2020) 등이 있음.
- 김달진문학상(1997), 강원작가상(2003), 영랑시문학상(2016) 수상.
-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원주 한살림교회 목사.
“불편한데 시골 떠나지 않는 이유? 더 귀한 것을 얻었으니까요!”
농민신문 / 2018-07-02
양석훈 기자
‘시골살이 10여년’ 시인 고진하
강원 원주시 흥업면에 터 잡아 집 이름은 ‘불편당’이라 지어
아내·딸과 한 이불 덮는 경험 철 따라 옷 갈아입는 화단
뒤뜰에 자라는 잡초들까지…시골이 준 선물에 마음 부자
본업인 시 짓기도 더 잘돼
10여년 전 강원 원주시 흥업면에 터를 잡아 귀촌한 시인 고진하씨(64)의 집 대문에는 ‘불편당(不便堂)’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불편당은 고씨가 지은 당호. 대문을 뒤로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과연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시골 태생인 데다가 도시에 사는 동안 늘 귀촌을 마음에 품었던 고씨였지만 시골살이는 불편했다. 집 안을 데우려면 아침마다 장작을 패야 했고,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서 한밤중에는 요강을 ‘타야’ 했다. 시내는 차로도 족히 20분은 걸릴뿐더러 시골집은 자꾸 손봐도 고칠 데가 나왔다.
그러나 고씨가 시골을 떠나지 않는 까닭은 그런 불편함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의 일이다. 벽이 얇은 전통한옥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참다못한 아내가 “왜 이런 데 와서 가족을 고생시키느냐”고 고함치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이라 고씨는 아내·딸과 한 이불 덮고 살갗을 비빌 수 있었다. 겨울도 여름처럼 지내는 아파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화단도 시골이 준 선물이다.
때때로 시골살이에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아내도 마당 화단을 보면 “꽃만으로도 부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화단에서 꽃 몇송이를 꺾어다 화전 부쳐 먹는 것은 그야말로 호강이었다. 짝 찾아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와 해마다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 까는 제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시골에서 즐기는 호사다.
시골이 고씨에게 준 선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잡초다.
“이곳에 온 뒤 잡초를 ‘발견’했어요. 자꾸 베어도 다시 자라는 잡초를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했죠.”
공부해보니 대부분의 잡초는 먹거리가 될 뿐 아니라 농약을 치지 않아 건강에도 좋았다. 약성도 풍부했다. 채소 대신 개망초·쇠비름·질경이 등 잡초를 먹으니 생활비도 덜 들었다.
더욱이 잡초 공부를 열심히 한 아내는 ‘남들 퇴직할’ 나이에 ‘잡초요리가’라는 새 직업도 얻었다.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쌓인 도시였다면 잡초에 관심 두기가, 또 잡초가 이렇듯 팔방미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을 터였다.
“어림잡아 50종의 잡초가 자라는 뒤뜰은 우리에게 ‘장터’나 다름없어요. 우렁이로 농사짓는 동네 논가의 잡초도 이따금 뜯어서 먹으니 시골 논밭이 다 우리 것처럼 느껴져요.”
시골에 살면서 고씨는 마음 부자가 됐다. 마음이 낙낙해진 덕분에 본업인 시 짓기도 더 잘된다.
고씨는 이런 시골살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최근 시골살이를 에세이집으로 엮어냈다. 제목은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 불편당에 들어서 화단과 잡초·제비집을 둘러보고 고씨의 해사한 얼굴도 마주하고 나니 이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시집 699. 고진하 -『얼음수도원』|작성자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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