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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0:2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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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28절-31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왜 빼앗을 자가 없는 거냐? 차원적 실력적으로 생각을 해 봐라. 진리 자체화로 만들어졌는데 세상의 어떤 지식이나 사상이 이것을 무너뜨리고 이 사람을 빼앗아 갈 수 있겠느냐? 자기가 버리지 않는 한 못 빼앗아 간다. 이건 절대권이다.
애굽으로 피난을 가던 마리아가 품속에 있는 ‘예수=구원’을 집어던지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치가 그렇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요셉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구원’을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수를 가지고 있으면 어디를 가던 보호를 받는다. 왜냐? 이 사람의 모든 이해타산 사고방식이 성령님의 감화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 안에는 하나님의 보호가 들어있는 거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어디를 가도 부딪힌다. 그러니 피해를 보게 된다.
빼앗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수 믿는 사상적 차원이 실력적으로 생명과를 먹는 하나님의 이해타산으로 들어간 차원 높은 삶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본질은 질적 근원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빼앗을 자가 없는 거다. 즉 땅의 생각과 땅의 권은 그 질이 세상의 것이라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빼앗으려고 올라오지를 못한다.
주님의 역사에 든 것은 질적으로 세상에 속한 게 아니라서 사단 마귀나 거짓이나 이단이나 적그리스도가 뺏으려고 올라가지 못하는 하늘의 차원이다. 빼앗을 수 있는 주권이나 능력이 없다. 이것을 이치적으로 말을 하자면 하나님을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갈 그 무엇도 없다. 우리가 예수 믿는 차원이 이런 거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룰구원은 이런 차원이다. 예수 믿으면서 이걸 모르면 하나님의 것에 대한 욕심도 없고, 세상의 바람에 불려 다니고, 이상한 사람에게 끌려가고 한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으로 닮아진 것은 영원히 내 것이라서 하나님도 못 뺏어간다. 왜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상 주어놓고서 뺏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이 질적 온전으로 나의 성품화로 된 것은 그 질이 하나님의 것과 똑같기 때문에 하나님도 못 뺏어가는 건데 마귀나 거짓 종이 어떻게 뺏어가느냐? 문제는 인간 내가 버리지 않는 한 아무도 못 뺏어간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에는 이런 게 들어있다. 이게 교회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에 이게 없는 교회가 많고, 이 일을 안 하는 교회가 많고, 신앙을 질적으로 구별 분별을 안 하는 교회가 많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세상이 중심이 된 교회가 많다. 개인적으로 보면 물질성에 코가 꿰어져 있거나, 자기의 육신이 죽을 까봐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거나, 인정정실에 걸려들었거나 공갈 협박에 넘어간 자가 많이 있다. 이런 것은 다 세상성이요 육성이기 때문에 이런 신앙으로 나가면 이뤄진 구원도 없고, 앞으로 이뤄질 구원도 없다. 그러니 멸망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심판이 들어있는데 예수 믿는 것을 어떻게 어영부영 할 수 있겠느냐?
29절: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만유보다 크신 분은 물질계와 신령계를 창조하신 분이요,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고 섭리하고 역사해 나가시는 주권을 가진 만능의 능력자시요, 무에서 유로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해가 물러가게도 하시고, 허공을 만든 분이요, 이적 기사나 표적도 행하시고, 모든 창조물을 기르시고, 모든 영들을 부리시는 분이라서 이 분에 도전할 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크신 분이 어떤 자에게 당신의 양떼를 주시겠느냐?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신 양떼를 누가 뺏어갈 수 있겠느냐? 그런데 오늘날 거짓 종이나 이단자들이나 적그리스가 남의 양떼를 빼앗아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셨다고 하면서 안 뺏기려고 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질적인 면으로 주님의 양떼라면 이 양떼를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다.
참 종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양떼를 자기의 개인 소유로 만들 수 있느냐? 이것도 안 된다. 목자도 양도 예수님께 속했다면 이 목자는 양떼를 하나님의 본질로 예수님께로 밀착을 시켜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기의 신앙의 질을 예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거다. 양떼는 목사의 사람이 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30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질적 본질적으로 하나요, 소원 목적적으로 하나요, 의사 단일적으로 하나다. 하나라야 같이 갈 수 있다. 둘이서 같은 길을 가는데 질적인 면에서 사상이 다르면 대립이다. 고통이다. 우리를 구원하심은 우리를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하나가 되게 만드심이다. ‘온전’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통일이 되는 거다.
마지막 날 부활 때도 질적 본질적으로 주님의 신령한 것으로 하나가 되어야, 단일성으로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게 아니겠느냐? 신앙의 질이 주님과 이질로 되어있다면 어떻게 신령한 영의 세계로 들어가겠느냐? 세상 육의 생각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못 들어간다.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된 영의 생각만 들어간다.
31절: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님의 말씀을 이치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되고 깨달아질 텐데 당시의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 싫다는 거다. 다르게 말을 하면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과 같이 되느냐?’ 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온전한즉 너희들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인간창조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을 살게 되면 교만하고, 저질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한 상태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옳은 이치의 말씀에 반대를 하고 도전을 하면 예수님께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믿는 사람 중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방기한 채 관심이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러면 발전이 없다. 이 사상이 자기의 일생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수를 옳게 바로 믿으면 이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면에도 힘이 있다. 모든 고생을 고난으로 여기지를 않는다. 믿는 우리에게는 일반적인 고생은 그 안에 구원이 들어있기 때문에 고생이 아니다. 정금이 되려면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 두들겨 맞아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다 보면 이런 저런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것을 거치면서 사는 데 지혜도 나오고, 자기 다스림도 나오고, 무엇보다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인데 고난과 고통이 뭐가 문제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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