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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0:3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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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32절-42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다시 요단강 저 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32절-3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경을 주신 분은 선재적 그리스도시요, 선재적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계신 분이요, 이 분이 예수라는 인간으로 오셔서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이루셨고, 유대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을 하는 분인데 유대종교의 율법사들은 이런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했다.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일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분수에 넘는 일을 한다고 하면서 돌을 들어서 치려고 했다. 말씀으로 자신을 지으신 분을 돌로 치려고 하고 있으니 몰라도 몰라도 이렇게 모르고, 악해도 악해도 이렇게 악할 수 있을까? 성령 훼방 죄를 짓는 이들의 결과가 어떻게 될까?
말로 주님을 부인하면 미래적으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 훼방 죄는 영원히 사함이 없다. 그러면 말로 주님을 거역하고 부정하고 부인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성령 훼방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게 무슨 뜻일까? 입으로 거역한다는 것은 구원에 대해, 주님에 대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말을 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환경을 만나서 깨닫고 예수를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아예 세상으로 나가면 회개를 하지 못한다.
성령 훼방 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씀이 자기에게 와서 정신 사상적으로 흑백을 분명히 알도록 마음을 감화시켰는데도 자기 마음이 이 옳은 것을 것을 무시하거나 밟아버리면 이 사람은 이 면에서는 회개가 안 된다는 거다. 믿는 사람에게 말씀이 와서 권고 권면을 하는 일이 항상 있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그 권고 권면은 없다. 그래서 영적인 면에서는 자기에게 옳은 게 왔을 때는 그 당장에 바로 잡아야지 내일 모레로 미루다가는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그 면을 바로 잡을 기회가 영원히 없기 때문에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한다고 하는 거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이룰구원을 이룰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그 결과를 볼 거다. 네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거다’ 이 말이다.
주님께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시는데, 어린이들은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자’ 라고 하면 안 입으려고 한다. 아이라서 그렇다.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갈수록 믿음이 점점 깊이 들어가고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수 년, 수십 년 예수를 믿으면서도 늘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린아이처럼 헌 옷을 안 벗으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믿음의 연수가 많아질수록 교회에서 듣고 배운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책임이 있고, 사명이 있다. 이를 위해 평소에 진리말씀으로 정립을 해서 언제든지 대답을 해 줄 수 있도록 기본실력을 갖춰야 한다.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서도 사람을 주님께 인도해 낼 줄 아는 지도자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39절: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이 말씀이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니까 도망을 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으나 예수님은 소원 목적이나 하시는 모든 일의 차원은 하늘의 거고, 바리새 교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땅의 사고방식으로 된 신앙사상이라서 주님은 이런 곳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주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완전케 하려는 거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세상의 지식을 기준으로 신앙을 하고 있는데 땅의 지식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예수님의 하늘의 높은 수준을 잡을 수 있느냐? 질적 근원적 차원적으로 잡히지 않는 거다. 잡을 수 없는 차원으로 예수님을 잡고자 하니 예수님은 그 손에서 벗어나는 거다.
그러면 이 예수님이 나중에 왜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거냐? 그들의 세력에, 그들의 주격에 붙잡혀서 죽은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몸이 잡혀주신 거다. 그러나 당신의 정신과 사상은 잡히지 않고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설정된 그대로 나가는 거다. 이 설정은 당신의 설정이지 인간의 설정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이 설정이 망가지지 않는다. 이런 것을 아는 신앙과, 모르는 신앙은 그 수준이 천지 차이다. 생명적인 신앙과, 육적인 신앙은 그 수준이 천지 차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구원의 복음이 인간의 주격에 의해 스톱이 되거나 변경이 되는 것으로 안다.
구약에 느헤미야서나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백성들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방인들이 와서 방해를 하느냐,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방해를 하느냐? 후자다. 이것은 지금으로 말을 하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아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성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의 신앙을 망가뜨린다는 거다.
참 하나님의 종인 에스더나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설계대로 성전을 짓자고 하고, 어떤 일을 하자고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도리를 가르쳐 주는 건데, 지금 이방사상을 가진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가견적이고 유형적인 종교적 업적을 이루는 게 신앙이라고 하면서 성도들의 신앙을 세상성으로 끌고 가고 있다.
영적인 차원에서 구원으로 나가는 사상은, 이 역사는 그 어떤 인간의 사상이나 세력이 막지를 못한다. 하나님의 세력을 인간이 무엇으로 막겠느냐? 못 막는다. 죽은 것을 살려내는데 이걸 누가 막겠느냐? 문제는 옛사람 자기가 세상의 이해타산을 가지고 자기 속에서 되어지는 주님의 구원역사를 막는다면 자기에게서 구원역사가 중단이 된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를 하시는데 이 역사를 인간이 무슨 세력으로 일을 막을 있겠느냐? 아무도 못 막는다. 다만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님과 유기적으로 되는 거지만 자기의 노력으로 되는 이룰구원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막지 않는 이상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창조하셨는지, 왜 메시아를 약속하셨는지, 왜 부활을 시키는 건지, 왜 신령천국이 있는 건지 하는 면을 자기와 관계성을 지어서 생각을 하면 그 이치를 알게 될 텐데 알려고 하지도 않고, 교권 세권이 합세 된 자신들의 손익을 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예수=구원’이라는 본질의 신앙이 잡히지 않는 거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구원, 즉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의 구원인데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믿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안 잡히는 거다. 교권 세권 물질성적인 이해타산이 들어가면 이 사람에게는 절대로 성령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안 잡힌다.
우리는 진리본질의 말씀을 들으면 ‘무슨 뜻일까?’ 하고 상고하면서 깨닫기를 주님께 구해야지 과거처럼 일반 종교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라. 우리의 신앙은 정신과 사상으로 들어가는 거지 행동적으로 ‘이래야 신앙이고, 저러면 신앙이 아니고’ 이런 게 아니다. 정신과 사상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격화 되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던 믿음생활이고 이룰구원의 생활이다. 이게 안 되면 예수를 믿는 것과, 자기의 생활이 따로 놀게 된다. 다만 신앙이 어린 사람에게는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알게 하고 올려주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이다.
유대인들은 활동 행동을 강조하고, 예수님은 사람의 정신 자체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이 둘은 물과 기름 같아서 결합이 안 되는 사상이다. 말세시대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로 되어야 결합이 되고 하나가 된다.
40절: ‘다시 요단강 저 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유대인들과 예수님은 물과 기름 같아서 결합이 안 되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어디로 가셨느냐? 세례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주던 요단강 저편에 가서 거하셨다고 한다. 왜 이곳에 또 가셨을까?
41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여기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세례요한은 표적을 행하지 않았으나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이 다 참이라고 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세례요한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자꾸 표적만 보려고 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거다. 자꾸 표적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안 믿는 신앙이라는 거다. 오늘날 육적 세상적으로 흐르는 교회 안에 이런 게 얼마나 많으냐?
42절: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인즉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은 다 참이다’ 라고 했다.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바로 받은 자들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이 참인 줄 알고 바로 믿었다. 말씀을 듣고 믿어야지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믿는 것은 신앙의 질이 아니다. 교회는 진리이치의 말씀을 자기 속에 채우면서 옛사람성을 빼내는 거다. 이러면 인격화 자체화된 말씀을 따라 자기의 언행심사가 적절하게 지혜롭게 나가게 된다.
세례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은 요단강 저 편에 사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유대 율법 학자들이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 교인들보다도 질적 본질적 근원적으로 훨씬 더 옳은 믿음을 가졌다. 이들의 신앙과는 질이 다른 수준의 믿음이다. 바리새 교인들의 신앙의 질은 세상성이라서 근본적으로 잘못 놓인 신앙이다.
교인들이 신앙의 바탕이 잘못 놓이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신앙의 질에 진리본질의 교훈을 섞어서 신앙을 할 수 있다. 이러면 절대로 강한 신앙의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오는 사건도 못 이기고, 시대적으로 오는 유행적인 신앙사상도 못 이긴다.
여기에 와서 듣고 배우면서 질적인 면에서 자기가 이때까지 믿어온 신앙과 어떻게 다르고, 어느 게 높은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거들랑 과거적으로 알고 믿어온 신앙은 완전히 내려놓고 새로 시작을 해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이걸 바로 잡을 수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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