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프레시안 2001-12-21 오전 10:16:01
나는 요즘 치과에 다니고 있다. 참, 나는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고 수도권 신도시 38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이가 둘, 주량은 생맥주로 3천 씨씨 정도, 요즘 뚱뚱해진 것 같다, 얼굴이 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좀 곤두서는 사나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절대 이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성 아무개와 동일인이 아니다. 동일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그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작정이다. 나는 소설 쓰는 성 아무개와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같은 종류의 인간도 아니고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 것부터가 기분 나쁘다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 두자.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 중요한 문제의 출발점으로 가자면, 나는 치과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다니고 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 때문이다. 치과에서 하는 말로는 그게 7번이란다. 하여튼 이 치과는 올여름에 의사가, 그네들 말로는 원장 선생님이 바뀌었다. 원장도 바뀌고 원장의 성별도 바뀌었고 간호사도 바뀌었다.
전(前) 원장은 삼십대 후반의 잘 생긴 남자 의사였는데 하고 싶었던 공부인가를 한다고 그만두었다. 그 의사는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썩 평판이 괜찮았다. 내가 이 아파트 단지에서 평판을 들을 만한 사람이란 우리 식구뿐이니 우리 식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괜찮았다는 말이다.
우리 식구들 중에서 그 의사가 치과를 운영하는 동안 그 치과를 안 가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흔이 넘는 어머니는 예전에 떠돌이 치기공사에게,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야미’ - 이 말은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뒷거래, 밀거래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어머니는 이런 경우 꼭 ‘야미’라고 해야 속이 시원한 양반이시다 - 로 치료 받은 이가 성치 못해 치과에 여러 번 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태 전에 인근의 정식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다른 이 또한 성치 못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자 잘 생긴 이 의사가, 어머니는 이 의사에게 잘 생겼다는 표현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그 전에 치료받은 의사에게 연락해서, 두 사람이 학교 선후배였다던가, 치료과정을 물었고 그 선배의 치료를 보정하는 의미에서 공짜로 그 이를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이가 남극성 냉장고라면 냉장고를 판매한 남극성 전자의 사후서비스 기간 내에 북극성 전자주식회사가 냉장고를 공짜로 고쳐준 것에 해당되겠다.
그러다가 나도 우리 아이들의 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 치과에 가보게 되었다. 잘 생기기도 했고 마음도 괜찮다는 그 의사는 과묵하기까지 했다. 나는 어느 여성인지, 그의 부인이 된 여성은 한눈에 이 미남에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겠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이 미남은 연애를 많이 해 보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는지 내가 생각해도 문제다. 이런 쓸데없는 일은 소설 쓰는 성 아무개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으로서 소위 ‘문제를 위한 문제’의 범주에 해당되는 문제에 불과하다. 여하튼 그 의사는 내 눈에도 약간 괜찮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안식구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치과에 가본즉 잘 생긴 이 의사, 집사람도 시어머니에게 물이 들어 ‘잘 생긴, 잘 생긴’ 해대고 있다, 아이들 이를 보는 김에 집사람의 이도 예방 차원에서 봐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흥분했다.‘의사라면 고객이 병이 들 때를 기다리되 절대 완치를 해주지 말고 조금씩 앓게 하면서 병원 문턱을 제 집 문턱 넘나들 듯 해야지, 예방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예방. 그 친구 개업 의사로 대성하기는 글렀구만.’ 이런 요지의 논평을 덧붙였던 기억이 난다.
자, 그런데 이 의사가 젊은, 내가 보기에 삼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여성으로 바뀐 것이다. 바뀐 의사는 그 전 의사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일단 전임 원장보다 말수가 많다. 내 이를 드릴로 갈아내는 도중에도 간호사와 상가 일층의 분식집 아저씨 머리카락 숫자를 이야기할 정도니까. 왜 그게 중요하냐 하면 곧 배달될 돌솥비빔밥에 지난번 이층 중국집의 볶음밥처럼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으면 곤란한데 그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셀 수 있을 정도여서 그릇 안에 머리를 빠뜨리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라나. 물론 이건 내 짐작이다. 나와 엇갈리며 치과에 음식배달을 하러온 아저씨가 대머리여서 짐작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내 어금니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게 문제다.
치과에서 의자에 드러누워 의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력한 경우가 있을까. 이럴 때 의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면 나는 신이라고 부르겠다. 여성은 물론 여신이겠다. 그런데 여신께서는 내 이를 들여다보더니 벌레 먹은 이의 앞에 있는 이까지 벌레가 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이는 지난번의 잘 생긴 의사, 아니 잘 생긴 신에게 거금 십오만 원인가를 바치고 치료 후 금으로 덮은 이였다. 7번이 썩으면서 7번과 맞닿는 부분이 약간 썩은 것 같다, 절대 ‘썩었다’가 아니라 ‘썩은 것 같다’고 했다, 하더니 느닷없이 마취주사를 놓고 그 부분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삼십여 분 동안 내가 들었던 말 가운데 기억날 만한 이야기는 일층 분식집 아저씨의 머리카락이야기뿐이었다.
여신은 치료를 마친 뒤에야 앞의 이도 충치가 생겨서 이를 씌운 금과 기타 등등의 성분이 함유된 보철물을 들어냈으며 다시 그 위를 씌워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와서 그 이를 다시 덮는 데 1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7번은 따로 23만 원인가 책정이 되어 있었으니 갑자기 예상치 않았던 돈이 들게 된 셈이었다.
나는 그 전에 내 이를 씌우고 있던, 잘 생긴 신인지 의사인지가 치료해 주었던 그 금속은 어디로 갔느냐 그걸 다시 쓸 수는 없느냐고 했더니,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차마 혹시 성한 이를, 썩었을지도 모른다는 혐의만 가지고 드릴로 파헤쳤다가 괜찮았던 건 아니었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게 지금 원통하다. 물어보는 걸 가지고 의사와 간호사 셋이서 달려들어 내 이를 몽땅 뽑아버릴 것도 아닌데.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나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내게 내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성한 이일지도 모르는 이를 치료하고, 아니 이 경우에는 치료가 아니라 망가뜨린 것이겠다, 그 이를 다시 원래대로 해놓는 비용을 내게 전가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심만 할 뿐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보아도 전문가들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방면의 전문가, 권위자도 그렇게 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길드’가 오래됐을수록 설명은 없다. 질문을 싫어한다.
의사?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변호사? 교통사고 때문에 변호사를 쓸 일이 있었지만 너무 대하기가 어려워서 브로커를 찾았다. 아니 브로커가 찾아왔다. 무수한 박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게 물어볼 게 별로 없었지만 같은 ‘사’자 돌림이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교통사고에 ‘사’ 자 들어가는 사람 중에서 내게 제일 큰 보탬을 준 사람은 병원에서 집까지 나를 태워다준 택시 운전기‘사’시다.
약간만 과장을 해보자. 세상에는 무수한 전문가가 있다. 고장 난 차를 맡기면 정비사가 신이 된다. 국정을 맡기면 정치가가 신이다. 치안은 경찰이, 행정은 공무원이 신이다. 가능하면 그런 신과 접촉을 안 하고 살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앞으로도 육해공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이승에서 무슨 일 때문에라도 치과병원의 의자에서처럼 무력하게 드러누워 전문가, 권위자, 권한의 위임을 받은 사람의 처분에 맡기게 될 가능성은 백분의 백, 확률 1.0이다.
대책 1.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모르는 게 약이다. 알기 싫은데 알게 된다면, 빨리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다.
대책 2. 따지고 추궁하고 밝혀낸다. 손해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자료를 받아낸다. 상대를 패가망신시킨다는 자세로 끝까지 해본다.
대책 3. 우리 민족의 수준을 믿는다. 4.19 혁명과 광주 민주화 항쟁, 87년 유월의 혁명을 이뤄낸 위대한 이 민족이 언젠가는 사회 구석구석, 갖가지 분야에서 선진화될 것이라고 믿고 참고 기다린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가능하면 아프지도 말고 차를 고장내지도 말고 법을 어기지 않고 착하게 살면서.
대책 4. 나도 어떤 분야의 권위자가 된다. 평소에는 조금 당해주다가 내 분야로 그들이 들어오면 눈물이 확 나도록 인생의 쓴맛을 보여준다.
대책 1은 농경문화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럴듯하고 대책 2는 내가 싫어하는 미국식인가 싶고 대책 3은 소설 쓰는 성 아무개 식의 대책을 위한 대책에 불과한 것이니 웃어넘기자. 대책 4가 내 기질에 제일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내가 치과 의사에게 품고 있는 의심이 이제까지 완강하게 버티어온 이 사회 각계각층의 최상층부의 권위가 깨져가는 징후는 아닌지 잠깐 생각한다. 그 권위가 부당하다, 그 권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같잖다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든 적이 있다면 그 곳부터 깨져나갈 것이다.
법랑질에 이어 상아질이 벗겨지고 신경이 드러나 전문가, 권위자들이라는 족속들이 조그만 자극에도 아이쿠 저이쿠 끔쩍끔쩍 놀란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은 소수의 기득권층, 권력자들을 ‘왕따’시키는 익명의 개인들의 운동장이 된 것 같다.
세상이 그렇거나 말거나 난 지금 마흔두 살, 신도시에서 살고 아이가 둘이며 시린 이를 핥으며 치과에 다니고 있다. 이름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요즘 치과에 다니고 있다. 참, 나는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고 수도권 신도시 38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이가 둘, 주량은 생맥주로 3천 씨씨 정도, 요즘 뚱뚱해진 것 같다, 얼굴이 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좀 곤두서는 사나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절대 이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성 아무개와 동일인이 아니다. 동일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그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작정이다. 나는 소설 쓰는 성 아무개와 절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같은 종류의 인간도 아니고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 것부터가 기분 나쁘다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 두자.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 중요한 문제의 출발점으로 가자면, 나는 치과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다니고 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 때문이다. 치과에서 하는 말로는 그게 7번이란다. 하여튼 이 치과는 올여름에 의사가, 그네들 말로는 원장 선생님이 바뀌었다. 원장도 바뀌고 원장의 성별도 바뀌었고 간호사도 바뀌었다.
전(前) 원장은 삼십대 후반의 잘 생긴 남자 의사였는데 하고 싶었던 공부인가를 한다고 그만두었다. 그 의사는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썩 평판이 괜찮았다. 내가 이 아파트 단지에서 평판을 들을 만한 사람이란 우리 식구뿐이니 우리 식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괜찮았다는 말이다.
우리 식구들 중에서 그 의사가 치과를 운영하는 동안 그 치과를 안 가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흔이 넘는 어머니는 예전에 떠돌이 치기공사에게,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야미’ - 이 말은 일본말이고 우리말로는 뒷거래, 밀거래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어머니는 이런 경우 꼭 ‘야미’라고 해야 속이 시원한 양반이시다 - 로 치료 받은 이가 성치 못해 치과에 여러 번 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태 전에 인근의 정식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다른 이 또한 성치 못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자 잘 생긴 이 의사가, 어머니는 이 의사에게 잘 생겼다는 표현을 써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그 전에 치료받은 의사에게 연락해서, 두 사람이 학교 선후배였다던가, 치료과정을 물었고 그 선배의 치료를 보정하는 의미에서 공짜로 그 이를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이가 남극성 냉장고라면 냉장고를 판매한 남극성 전자의 사후서비스 기간 내에 북극성 전자주식회사가 냉장고를 공짜로 고쳐준 것에 해당되겠다.
그러다가 나도 우리 아이들의 이를 치료하기 위해 그 치과에 가보게 되었다. 잘 생기기도 했고 마음도 괜찮다는 그 의사는 과묵하기까지 했다. 나는 어느 여성인지, 그의 부인이 된 여성은 한눈에 이 미남에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겠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이 미남은 연애를 많이 해 보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는지 내가 생각해도 문제다. 이런 쓸데없는 일은 소설 쓰는 성 아무개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으로서 소위 ‘문제를 위한 문제’의 범주에 해당되는 문제에 불과하다. 여하튼 그 의사는 내 눈에도 약간 괜찮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안식구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치과에 가본즉 잘 생긴 이 의사, 집사람도 시어머니에게 물이 들어 ‘잘 생긴, 잘 생긴’ 해대고 있다, 아이들 이를 보는 김에 집사람의 이도 예방 차원에서 봐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흥분했다.‘의사라면 고객이 병이 들 때를 기다리되 절대 완치를 해주지 말고 조금씩 앓게 하면서 병원 문턱을 제 집 문턱 넘나들 듯 해야지, 예방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예방. 그 친구 개업 의사로 대성하기는 글렀구만.’ 이런 요지의 논평을 덧붙였던 기억이 난다.
자, 그런데 이 의사가 젊은, 내가 보기에 삼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여성으로 바뀐 것이다. 바뀐 의사는 그 전 의사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일단 전임 원장보다 말수가 많다. 내 이를 드릴로 갈아내는 도중에도 간호사와 상가 일층의 분식집 아저씨 머리카락 숫자를 이야기할 정도니까. 왜 그게 중요하냐 하면 곧 배달될 돌솥비빔밥에 지난번 이층 중국집의 볶음밥처럼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으면 곤란한데 그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셀 수 있을 정도여서 그릇 안에 머리를 빠뜨리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라나. 물론 이건 내 짐작이다. 나와 엇갈리며 치과에 음식배달을 하러온 아저씨가 대머리여서 짐작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내 어금니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게 문제다.
치과에서 의자에 드러누워 의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력한 경우가 있을까. 이럴 때 의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면 나는 신이라고 부르겠다. 여성은 물론 여신이겠다. 그런데 여신께서는 내 이를 들여다보더니 벌레 먹은 이의 앞에 있는 이까지 벌레가 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이는 지난번의 잘 생긴 의사, 아니 잘 생긴 신에게 거금 십오만 원인가를 바치고 치료 후 금으로 덮은 이였다. 7번이 썩으면서 7번과 맞닿는 부분이 약간 썩은 것 같다, 절대 ‘썩었다’가 아니라 ‘썩은 것 같다’고 했다, 하더니 느닷없이 마취주사를 놓고 그 부분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삼십여 분 동안 내가 들었던 말 가운데 기억날 만한 이야기는 일층 분식집 아저씨의 머리카락이야기뿐이었다.
여신은 치료를 마친 뒤에야 앞의 이도 충치가 생겨서 이를 씌운 금과 기타 등등의 성분이 함유된 보철물을 들어냈으며 다시 그 위를 씌워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와서 그 이를 다시 덮는 데 15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7번은 따로 23만 원인가 책정이 되어 있었으니 갑자기 예상치 않았던 돈이 들게 된 셈이었다.
나는 그 전에 내 이를 씌우고 있던, 잘 생긴 신인지 의사인지가 치료해 주었던 그 금속은 어디로 갔느냐 그걸 다시 쓸 수는 없느냐고 했더니,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차마 혹시 성한 이를, 썩었을지도 모른다는 혐의만 가지고 드릴로 파헤쳤다가 괜찮았던 건 아니었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게 지금 원통하다. 물어보는 걸 가지고 의사와 간호사 셋이서 달려들어 내 이를 몽땅 뽑아버릴 것도 아닌데.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나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내게 내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성한 이일지도 모르는 이를 치료하고, 아니 이 경우에는 치료가 아니라 망가뜨린 것이겠다, 그 이를 다시 원래대로 해놓는 비용을 내게 전가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심만 할 뿐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보아도 전문가들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방면의 전문가, 권위자도 그렇게 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길드’가 오래됐을수록 설명은 없다. 질문을 싫어한다.
의사?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변호사? 교통사고 때문에 변호사를 쓸 일이 있었지만 너무 대하기가 어려워서 브로커를 찾았다. 아니 브로커가 찾아왔다. 무수한 박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게 물어볼 게 별로 없었지만 같은 ‘사’자 돌림이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교통사고에 ‘사’ 자 들어가는 사람 중에서 내게 제일 큰 보탬을 준 사람은 병원에서 집까지 나를 태워다준 택시 운전기‘사’시다.
약간만 과장을 해보자. 세상에는 무수한 전문가가 있다. 고장 난 차를 맡기면 정비사가 신이 된다. 국정을 맡기면 정치가가 신이다. 치안은 경찰이, 행정은 공무원이 신이다. 가능하면 그런 신과 접촉을 안 하고 살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앞으로도 육해공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이승에서 무슨 일 때문에라도 치과병원의 의자에서처럼 무력하게 드러누워 전문가, 권위자, 권한의 위임을 받은 사람의 처분에 맡기게 될 가능성은 백분의 백, 확률 1.0이다.
대책 1.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모르는 게 약이다. 알기 싫은데 알게 된다면, 빨리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다.
대책 2. 따지고 추궁하고 밝혀낸다. 손해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자료를 받아낸다. 상대를 패가망신시킨다는 자세로 끝까지 해본다.
대책 3. 우리 민족의 수준을 믿는다. 4.19 혁명과 광주 민주화 항쟁, 87년 유월의 혁명을 이뤄낸 위대한 이 민족이 언젠가는 사회 구석구석, 갖가지 분야에서 선진화될 것이라고 믿고 참고 기다린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가능하면 아프지도 말고 차를 고장내지도 말고 법을 어기지 않고 착하게 살면서.
대책 4. 나도 어떤 분야의 권위자가 된다. 평소에는 조금 당해주다가 내 분야로 그들이 들어오면 눈물이 확 나도록 인생의 쓴맛을 보여준다.
대책 1은 농경문화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럴듯하고 대책 2는 내가 싫어하는 미국식인가 싶고 대책 3은 소설 쓰는 성 아무개 식의 대책을 위한 대책에 불과한 것이니 웃어넘기자. 대책 4가 내 기질에 제일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내가 치과 의사에게 품고 있는 의심이 이제까지 완강하게 버티어온 이 사회 각계각층의 최상층부의 권위가 깨져가는 징후는 아닌지 잠깐 생각한다. 그 권위가 부당하다, 그 권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같잖다는 생각이 한 번이라도 든 적이 있다면 그 곳부터 깨져나갈 것이다.
법랑질에 이어 상아질이 벗겨지고 신경이 드러나 전문가, 권위자들이라는 족속들이 조그만 자극에도 아이쿠 저이쿠 끔쩍끔쩍 놀란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은 소수의 기득권층, 권력자들을 ‘왕따’시키는 익명의 개인들의 운동장이 된 것 같다.
세상이 그렇거나 말거나 난 지금 마흔두 살, 신도시에서 살고 아이가 둘이며 시린 이를 핥으며 치과에 다니고 있다. 이름은 말할 수 없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