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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26 추천 수 0 2025.11.16 20: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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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6-10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장 6-10: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든 소식을 듣고 즉시 나사로에게 가지 않고 이틀을 더 유했으니 나사로가 죽기를 바랐던 게 아니겠느냐? 나사로가 일부러 죽기를 바란다는 게 아니라 나사로가 죽어야 주님이 역사를 하시는구나.

 

 

우리는 이것을 이룰구원의 이치로 생각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역사는 성령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신앙적으로 보면 나사로 속에 죽어야 할 게 안 죽고 있으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게 주님의 뜻이고, 죽어야 할 게 다 죽어야 그 다음에 주님께서 역사를 하신다는 거다.

 

 

우리의 영인성장 면에서 보면 우리 속에 죽어야 할 것이 죽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오는 거지 안 죽으면 역사가 안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도 선이다. 하나님은 선이시니 이렇게 하시는 것도 아가페 사랑에서 나오는 거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고 있다. 신앙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신앙성이 이룰구원으로 들어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안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야속할까?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 함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면서 나사로가 죽기를 바랐다는 것은 나사로가 죽기까지는 당신이 나타나실 때가 아니라는 거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즉 주님이 하시는 일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함인데 이 일은 순전히 당신의 주권에 의한 구원섭리에 의해 되는 거지 인간들의 형편에 따라 되어지는 게 아니다. 세상적인 믿음을 가진 교회는 자기의 필요에 따라 열심히 세상 것을 구하지만 이런 것은 일 년을 구해도, 십 년을 구해도 시간낭비이고 헛 믿음이다.

 

 

2:에서 예수님께서 모친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도, 사람을 치료하시는 것도 당신이 우리의 형편과 마음을 다 아시고 알아서 하시는 거다. 그러면 나의 어떤 것을 아시는 거냐?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다 아신다. 또한 내가 세상적인 자기 주관성으로 사는 건지,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온전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건지, 세상 쪽으로 틀고 있는 건지를 다 아신다.

 

 

우리 주님은 당신이 아시고 나에게 적절하게 역사를 하시는 거지 인간들이 큰 소리로 부른다고 해서 움직이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상태를 보면 자기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인간이 주격으로 되어있는 거고, 예수님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종으로 되어있는 거다. 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주권구원을 모르면, 즉 우리의 구원은 내 주권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된다고 하는 주권구원을 모르면 예수님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원망을 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이룰구원 차원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구하면 주신다는 건데,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으면 내 속에 하나님의 소원 목적이 생기게 되고, 이러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을 구하게 되고, 이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면 주시겠다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주신다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하나님께 애타게 구하지 않아도 자기의 힘과 꾀와 욕심으로 세상에서 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하게 되기도 한다. 짐승들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철을 따라 먹고 산다. 그런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먹고 마실 것을 구하고 있으니 만물보다 어리석은 게 아닌가?

 

 

7-8: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이틀을 더 유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니까 제자들의 말이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는데 왜 또 그곳으로 가시려고 합니까?” 라고 했다. 이건 인간적인 걱정이다. 제자들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구원의 섭리를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제자들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던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신다고 하는 게 무엇을 말하는 거냐? 예수님께서 다시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시는 것은 당신이 죽을 까봐 무서워서 가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가시는 거다. 즉 진리를 죽이려고 할 때 처음 세례를 받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말씀하는 거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이니 내가 진리로 인해 핍박을 받고 죽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겠다는 결심으로 들어가라는 거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정신으로 받아야 하는데 어떤 정신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받으라고 하니까 별 생각 없이 받았느냐? 세례를 받으면 교회에서 직분을 맡길 까봐 안 받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겠다고 하는 게 세례다. 이 정신이 없이 세례를 받았다면 회개해야 한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했듯이 우리도 이 증거를 받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다시 세례를 받는 사람도 있는데, 이미 받은 세례의식이 다르다고 해서 다시 받는 게 아니라 세례의 의미를 모르고 받았기 때문에 옳은 세례의 의미를 알고서 다시 받을 수 있는 거다. 신앙은 의식에 있는 게 아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9-1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시간적으로 열두 시, 정오 이렇게만 볼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항상 낮이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제일 밝은 곳이다. 낮이면 일을 할 수 있다. 밝으면 구별 분별을 할 수 있다. 자기에게 말씀 깨달음이 오면 이게 열두 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일을 하면 언제고 낮에 일을 하는 거다. 세상의 공부는 이게 없고 전부는 물질에 관한 거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낮 열두 시이지만 유대인들이 있는 곳은 항상 밤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애굽 쪽은 밤인데 이스라엘 백성 쪽은 낮이었다. 무슨 칸막이로 중간을 가로막아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이걸 계시적으로 보면 모세가 있는 곳,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곳은 밝지만 애굽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둡다는 거다. 그래서 애굽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즉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은 낮이지만 애굽사람들은 마귀 같은 왕을 모시고 있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신이 밤이다.

 

 

예수님께서 역사하는 그곳이면 항상 대낮이다. 그 깨달음이 어두울 리가 없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으니 교회 인도자들은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한다. 각 교회들의 신앙상태가 낮 열두 시냐, 밤이냐?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면 밤이다. 어두운 백성이다. 어두움의 자녀들은 빛을 싫어한다. 깨닫는 것을 싫어한다. 이치를 싫어한다. 그래서 물질축복 정신을 가진 자들은 어두운 곳으로 간다.

 

 

지금 나는 빛을 알고 빛을 따라가는 거냐, 모른 채 그냥 따라가는 거냐? 과거에는 모르고 따라갔지만 이제는 빛을 알고 말씀을 따라가느냐? 내가 지금 빛이 있는 곳에 앉았느냐, 빛이 없는 곳에 앉았느냐? 세상성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면 빛이 없이 사는 거다. 영의 눈으로 보는 자기의 신앙정신이 있는 건데, 자기의 신앙의 질이 마귀와 같이 있는 거냐, 예수님과 같이 있는 거냐? 또한 내가 지금 빛과 교제를 가지고 있는 거냐, 안 가지고 있는 거냐? 또 내가 어디에 마음을 더 두고 있느냐? 우리는 이걸 질적으로 구별 분별해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이걸 구별을 못하는 신앙이 아닌 신앙자가 많다. 이건 소경이다. 이것을 모른 채 목사를 따라가는 것은 인정정실을 좇는 거다. 예수를 믿는다면 깨달음이 낮처럼 밝아져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낮의 사람과 교제를 하면 이 세상에서 빛을 본다고 하는데 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는 거고,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밤에 다니면 다치게 되어있다. 빛이 있어야 사람의 얼굴이 구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과 교제를 하고 있느냐?

 

 

실족이란 사람이 진리의 옳은 정로로 가다가 넘어지는 거다. 즉 비진리로 가는 거다. 사람이 진리의 정로로 가야 반듯하게 적중으로 가는 건데 세상을 좇으며 예수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실족이다. 이 사람에게는 딛고 설 수 있는 반석이 없기 때문에 신앙의 사람으로 서지를 못한다. 빛이 없이 밤에 다니면 이 사람은 구별 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족하게 된다. 진리본질을 가지면 교회의 교훈을 들으면 아 이 목사님은 진리에서 넘어졌구나. 실족을 했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받으면 사람의 정신과 마음과 소원 목적과 사람의 속을 구별하게 된다.

 

 

빛이 없는 교회 인도자, 빛이 없는 교인, 빛이 없는 사람과 교제하고 어울려 다니면 이 사람은 어두움에 붙잡히게 되고, 거기에 물들고, 그 재미로 살게 되니 이 사람의 신앙은 병이 들고, 부딪히고, 미워하고, 싸우고, 원수를 만들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게 된다. 이런 게 다 어두운 곳에서 되는 일이다. 자기가 사람 속에 살면서 사람을 모르면 자기 인생이 어찌 되겠느냐?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없는 것과 교제를 하면, 즉 같이 다니면 이 사람은 어두워져 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 교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은 어두움과 교제를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 강대국 밑에서 에돔족인 헤롯을 왕으로 섬기고 있었다. 이질적 사상이다.

 

 

야곱은 물질적인 신앙인데, 신약에서 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야곱의 우물에서 야곱의 물질적인 정신 사상을 계속 퍼먹고 있었다. 이 여자는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남편 여섯을 갈아치웠는데, 이것은 세상충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만족이 없었다. 야곱의 신앙을 늘어뜨리고 늘어뜨리고 조직화 시키면 계:666이 된다. 질이 똑같다. 인간 수인 666은 아무리 6666, 666666.....으로 나가고 불어나도 그 질이 하나님의 수인 7로는 안 된다. 질의 수준이 7로 못 올라간다.

 

 

우리의 신앙의 질적 수준이 666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무리 세상의 영광과 누림을 입어도 참 만족이 없고 7의 차원인 주님에게 들어서야 기쁨이고 안식이다. 안식을 하면 기쁘듯이 주님을 만나야 자기 속에서 샘솟듯이 기쁨이 나온다. 이게 안식이다.

 

 

밤에 다니면.’ 이런 자들과 교제를 하면, 친숙하면, 이런 자들과 소원 목적을 같이 하고, 어깨를 같이 하고, 이런 신앙을 가지면 이 사람은 빛이 없기 때문에 실족을 하게 된다. 실족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신앙의 질이 버림받은 상태가 되는 거고, 결국은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는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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