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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11-2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11-26: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16: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잠이 들었으니 깨우러 가자라고 했고, 이 말에 제자들이 나사로가 잠들어서 쉬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이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도마가 우리도 죽으러 가자라고 했는데, 예수님과 도마가 장난기로 이런 대화를 한 거냐? 도마가 우리도 죽으러 가자라고 한 것은 누구를 영광스럽게 할 생각으로 한 말이냐? 앞에 보면 답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죽을 병인지 살 병인지 다 아신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나사로는 죽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눈으로 나사로를 보면 나사로가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쉽게 살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잠이 들었다고 하신 거다. 그러면 이게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는 거냐? 뒤에 가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무엇을 모르는 믿음이냐? 기본구원이냐, 이룰구원이냐? 이룰구원 면에서 현재에서 살아나는 신앙의 이치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치를 가르쳐 주기 위해 죽은 나사로를 잔다고 하신 거다.

 

바리새 교인들은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부활을 안다고 하는 게 하나의 종교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모르는 지식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바리새인에게 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현재 살아나는 지식을, 그 신앙을, 그 사상을 모른 채 바리새 교인들처럼 부활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나사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것을 모른다는 면에서 주님이 통분히 여기시는 거다.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시는 말씀도 통분히 여기시는 게 들어있다.

 

현재 살아난다는 것은 이룰구원의 의미인데, 우리가 이 이치를 바로 알아서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이룰구원으로 관계성을 지어나가면 사는 게 기쁘고 즐겁다. 요셉이 감옥 속에 들어가니 감옥이 천국화 되었듯이 예수 믿는 자기가 안 믿는 사람들 속에서, 직장 속에서 언행심사로 감화를 주어서 사람이 변화되는 장면이 있다면 이게 천국이다. 우리는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에스더를 보면서 이런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적극적이요 전투적이요 개척적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생활을 하면서 이 정신과 사상으로 산다면 뭐가 무섭겠느냐? 이 정신으로 살면 죽음아, 오너라. 네가 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게 되는 거다. 주님께서 이 약속을 하셨고, 보장을 해 놓으셨다.

 

교회는 참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공장인데 오늘날 교회에 이게 없다. 도리어 안 믿는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와서 세상 쪽으로 더 깡깡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니 교회부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 믿는 너부터 심판이 온다. 목사 너부터 심판이 온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들은 도매금으로 심판이 들어가는 거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거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이걸 모르시느냐?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은 나사로는 죽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육신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면에서 옛사람성적이고 부패성적인 것은 죽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 속에서 옛사람성적이고 부패성적인 것이 죽어야 주님의 성품이 살아나게 되는 건데 이게 안 죽으려고 하니 예수 믿는 게 힘이 드는 거고, 세상을 사는 것도 힘이 들고, 생각하는 것도 힘이 드는 거다. 사람이 이런 상태로 살면 사는 생각은 없고 죽는 생각, 썩는 생각밖에 없다. 이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통째로 선악과를 먹고 있는 거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마귀의 온상이 된다. 가르치는 자가 이런 상태라면 그 교회는 귀신의 집이 되고 마귀의 온상이 된다. 이런 교회에 세상의 사기꾼들이 들어와서 그런 교육을 받고 나가서 예수의 종입네라고 하며 온갖 사기를 치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우리 속의 옛사람 부패성이 죽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터치를 안 하시는 거다. 우리 속의 옛사람 부패성이 죽으면 현재적으로 주님의 새로운 역사, 산 역사가 된다. 그러니 예수 믿는 우리가 어디에 이해타산을 놓고 살아야 되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성전에서 장사를 하던 대제사장들처럼 항상 물질계산이요 돈 계산을 하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회초리를 들고 그 정신을 내쫓으신다. 그래야 교회가 산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장사가 잘 되고하는 것은 마귀의 꾀임에 빠진 거다. 말이 문제가 아니라 말속의 정신 사상이 어디에 무게를 두고 말을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이제는 무엇이 죽고 무엇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라.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뿐이다. 생명과를 먹은 지식과, 선악과를 먹은 지식이 있다. 선악과를 먹은 지식은 전부가 세상 물질성이요, 눈으로 보기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것을 욕심을 낸다. 세상의 존귀 영광성은 다 임시성이다. 임시성은 현상적인 세계다. 이것은 아무리 많이 가진다고 해도 결국은 불타서 없어지고, 썩고, 지진이 나면 가라앉고 무너진다.

 

지구상의 지진은 네가 어디에 기초를 하고 섰는지 보자하고 한 번씩 흔들어 보는 거다. 높이 올라간 것일수록 무너짐이 심하고, 넓게 된 것만큼 찢어짐이 심하다. 이것을 깨달으라고 세상 마지막이 될수록 하나님께서 지진을 자주 보여주시는 거다. 이 지진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람지진이 일어난다. 사람지진은 사람들끼리 정신세계가 단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다.

 

17-19: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베다니 동리가 예루살렘에서 5리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걸어가면 30분이 안 걸린다. 그러니 베다니 동네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 많다. 일가친척이 많구나. 그래서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라는 말씀을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과 관계성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느냐, 멀리 있느냐?’ 하는 면을 생각하게 한다. 한 집에 살아도 마음으로 먼 사람이 있고, 멀리 살아도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이 있다. ‘가깝고, 멀고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께서 와서 보신다고 하는 것은 유심히 관찰이다. 관찰을 해보니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그러니 시체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생물은 죽으면 부패가 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한 5리쯤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금방 오실 수 있는 거리라서 두 지방 사람들이 나사로가 죽었다네라고 하며 왔다 갔다 하는데 예수님은 왜 이리도 안 오실까?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에서 원망이 나오게 생겼다. 예수님의 오심이 왜 그리 멀기만 할까? 믿는 사람이 세상을 가까이 하다가 신앙 면에 병이 들면 예수님과 왜 그리 멀기만 한지? 하나님의 역사가 왜 그렇게 멀기만 한지? 이런 사람에게 구원이 오는 게 왜 그리 더딘지?

 

멀고 가까운 일가친척들과 이웃들의 인정 어린 권고와 위로에 푹 빠지면 구원에 귀가 멀어진다. 인정성에 푹 빠지면 주님의 역사가 방해가 된다. 인정성에 빠지면 자타의 구원에 시험이 된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구원이 되게 하라. 그래야 자타가 행복해진다. 성경에 우는 자들로 같이 울고 웃는 자들로 같이 웃으라고 하는 게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뜻으로 같이 울고 웃으라는 거냐? 무엇 때문에 울고 웃는 건지? 어디에 소원 목적을 두고 울고 웃는 건지?

 

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나가서 예수님을 맞았다. 마음의 동작성이 참 빠르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말하자면 인간 위로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위로를 받느라 여념이 없다 보니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마리아의 이런 마음은 예수님의 소식을 빨리 듣는 것에 방해가 되는구나.

 

우리가 사람 속에 살기 때문에 사람을 알아야 하지만 그들에게 푹 빠지면 안 된다. 사람에게 푹 빠지면 그들이 너를 잡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간다. 네가 인도자가 되어서 예수님께 인도를 해야지 사람에게 푹 빠지면 너의 신세가 어떻게 되겠느냐?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오빠가 죽고 나니 슬픔에 잠겨서 사람들의 위로를 받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빨리 알아듣는 면에, 말씀을 듣는 면에 귀가 막혀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평소에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되는데 왜 그러지를 못했을까?

 

21-22: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이 말이 마치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격이 은근히 마르다에게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무슨 말인가 하니 마르다의 이 말이 주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셨기 때문에 오라비가 죽었다는 말로 들리니 오라비가 죽은 게 주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 잘못했으니 회개하시오. 그리고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 보십시오라고 하는 말이 된다. 어느 교회에서든지 자기 주관성이 강한 이런 믿음이 참 많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게 누구의 책임이냐? 하나님께서 생명과만을 만들어 놓고 선악과를 안 만들어 놓았으면 선악과를 안 따먹었을 게 아니냐? 생명과만 만들어 놓았다면 무엇을 따먹느냐?’ 하는 면에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느냐? 없다. 이러면 심판이 없게 되고, 이러면 성도들에게 천국의 차등이나 상급이 없게 되고, 이렇게 되면 천국의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면이 감소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선성에 어긋나게 된다. 생명과 하나만 딱 만들어 놓으면 이렇게 된다.

 

인간의 자유를 통해 성도들에게 천국의 최고의 기쁨과 만족을 주기 위해 두 가지가 있는 거다. 지금도 세상에 생명과와 선악과가 있고, 교회 안에도 생명과와 선악과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를 먹으라고 하시는데도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셔서 생명과와 선악과를 먹으면 각각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실수를 해서 영이 죽었는데 이 책임을 하나님께서 지시는 거다. 그래서 기본구원을 주시는 거다. 그 다음에 이룰구원 차원에서도 당신처럼 온전하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성령님이 오셔서 도와주신다. 그러니 기본구원도 은혜지만 이룰구원도 은혜다. 우리로 당신처럼 존귀 영광스럽게 되라는 게 아가페다.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의 말을 듣고 나사로를 살려주는 게 아니라 주님이 알아서 살리신다고 한다. 이 알아서 하심이 세상 모든 만사에 들어가 있다. 당신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알아서 하신다.

 

24-26: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현재에 살아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씀인데 마르다는 세상 끝날에 부활 때 사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주님은 각 개인이 현실에서 부활의 믿음성을 말씀하심인데 마르다는 인간의 마지막 부활을 말한 거다.

 

12:에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한 것을 주석에 보면 십자가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룰구원 면에서 주님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 목적을 높이 들어라이 말이기도 하다. 이러면 세상 왕이 심판을 받는다. 이 심판성은 세상 마지막 때의 심판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 구별 분별을 해서 주님의 것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적이고 죄악적인 것을 선택해서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한다.

 

심판에는 구별성과 선택이 들어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이룰구원 면에서 현재적으로 매사에 심판을 해서 주님을 높이는 게 나와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영광스러워진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이게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거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믿어서 망하는 곳, 심판을 받는 곳, 구별 분별이 안 되는 곳에서 탈출을 해야 한다. 영적인 면에 구별 분별력이 있어서 지식이 바르고, 질서정연하고, 생각이 잡혀야지 왜 그런 곳에 있다가 심판을 받겠느냐?

 

오늘날 교인들은 어느 부활을 믿고 있을까? 현재에 사는 부활성을 믿느냐, 미래의 부활만 믿느냐? 미래의 부활성의 정신으로 살면 현재에 죽지 않을 것에 삼킨바 되는 삶이 된다. 이게 이룰구원의 사상이다. 우리 기독자는 마지막 때 되어질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현재 자기의 삶에서 진행이 되고 있음을 현재에 알아야 한다. 현재 잘못 믿으면 천국에 가면 잘 믿어지는 거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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