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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1::3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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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34절-44절: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34절-36절: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그들이 이것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사실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대방을 넘겨짚어서 자기 속에서 일을 만들어서 그 사람을 거기에 집어넣어서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는 일이 있다. 이건 악한 짓이다.
누가 자기를 육적 인정정실로 위로해주면 자기를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지만 이 일이 오히려 주님의 살리시는 구원의 일이 막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정실에 쏠린다. 아무리 진리라고 해도 인정정실에 쏠리면 이 사람은 시험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거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때는 예수 믿는 일이 막임이 되지 않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타의 구원에 보다 더 유익이 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37절-38절: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유대인들이 당신이 인정정실로 눈물을 흘리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이 답답하시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아니라 40년이 되었어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분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신앙의 태도가 마음이 아파서 통분히 여기시는 거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쉬운 일인데 이것을 믿지 않고 있는 그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신 거다.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너희들이 막았으니 너희들이 열어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이 하라.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살았던 것이 죽으면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생명이 떨어지면 부패로 들어간다.
인간이 아무리 상대를 위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 것은 전부가 선악과 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것으로 연관이 되어있다. 예수님의 생명과 연관이 되어있지 않으면 죽은 것과 연관이 되어있는 거다. 그래서 자기의 사고방식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존귀 영광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생명과 연결이 아닌 물질과 외부의 환경과 연결이 된 정신이기 때문에 그 어떤 환경이나 존재를 통해 자기의 꿈을 이뤘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가 있다. 그러니 어리석은 거다. 믿는 우리는 늘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말로는 ‘하나님의 주권, 독권’ 하면서 앞뒤의 결과가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제 뜻대로 살다가는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부가 영원히 안 죽는 것으로 영생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임시성이다. 일반사람들은 임시성을 추구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입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부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분의 지식도 도덕성도 전부가 영생이다. 우리가 이 분과 관계가 되면 움직이는 것마다 영생이 된다. 사람이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 코에 산소를 넣는 것은 살리려는 거다. 예수를 믿는 것도 이것과 같은 거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자’ 라고 하는 것은 타락이다. 이건 마귀 짓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모르면 모든 게 사망적인 것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인간 보기에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보이는 일을 해도 그 질이 전부는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사람이 죽는 것을 육신이 죽는 것만 알지 말고 살아있는 사람인데도 정신과 사상이 사망성으로 들어있으면 이것도 죽은 거다. 이 사람의 소원 목적은 마귀적이고 육적이다.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구원’이니 ‘예수’라는 이름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소원 목적이 들어있다.
40절-4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영광을 보게 하려니 돌을 옮기라고 하신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들과 아버지와의 절친성이 느껴진다.
42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당신 자신의 세상살이를 위해 기도하심이 아니라 나와 우리를 위한 기도다. 우리로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하려고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심이다. 주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도 나를 위해서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은 아버지와 막힘이 없이 의사단일이라는 거다.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단일성을 염두에 두고 이 기도를 하신 거다.
43절: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의 이 큰 소리는 세상만물을 만드실 때보다 더 간절하심의 표현이다. 큰 소리라고 하는 이 질이 우뢰소리보다 더 큰 느낌이 든다.
자기가 말은 안 해도, 조용하게 있어도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게 있고, 자기는 큰 목소리로 외칠지라도 신앙 면에서 보면 ‘별 게 아니구나’ 하는 게 있다. 사람이 몸이 아픈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 더 고상하다. 사기꾼은 상대를 위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서 사기를 친다.
예수님께서 돌문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신 이 큰 음성 속에는 당신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오신 당신의 33년의 전 인격, 전 생애가 들어있다. 그러니 세상의 그 어떤 음성이 이 음성보다 크겠느냐? 사람을 살리는 이 음성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들어있는 세상의 그 어떤 음성보다 큰 소리다.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하는 것은 ‘인간 나사로야, 너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곳은 네가 누워있을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딛고 일어나라’ 이 말이다.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하시는 것은 누구 앞으로 나오라는 거냐?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는 거다. 그러면 현재 자기의 마음은 어디에 누워 있느냐? 자기의 현실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의 정신을 살피면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 앞에서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향해 일어나는 자가 현명한 거다. 예수님 앞으로 나온다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러면 자기에게 이룰구원이 된다.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사람이 죽으면 ‘우’ 달려들어서 죽은 몸을 베로 싸고 죽은 묶는다. 그런 것처럼 믿는 사람이 신앙정신이 죽으면 세상이 와서 ‘너는 쓸모가 없다’ 라고 하면서 돌돌 말아버린다. 믿는 사람은 환경이 와서 자기를 말아서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시고, 그 다음에는 ‘너희들이 묶은 것을 너희들이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라고 하신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한다. 그래야 이룰구원이 된다. 이룰구원의 이 뜻을 모르면 자기는 세상에 옭아 매여서 꼼짝도 못하게 된다. 살리는 것은 주님이시고, 풀어놓아서 자유롭게 다니게 하는 것은 성도들이다. 옭아 매인 것을 풀어줘야 한다. 이룰구원의 이치를 말하는 거다.
자기는 진리로 자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진리가 아닌 그 무엇이 와서 자기를 옭아매고 있느냐? 자기가 신앙생명이 없고, 죽어있으면 무엇이 와서 잡아가겠느냐? 예수 믿으면서 송장처럼 살고 싶으냐? 신앙의 세계에서 참과 거짓을 구별 분별하는 능력이 있으면 이 사람은 낮이고, 구별 분별의 능력이 없으면 이 사람은 애굽이다. 예수를 믿어도 구별 분별이 없는 신앙정신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애굽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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