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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1:4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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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45절-48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5절-46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마리아의 집에 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자세히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나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적 교만이 들어있다. 이들이 바리새 교인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고했다.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들리실 때마다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들은 것 같다. 이걸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24절-27절에서의 신앙고백에서 나타났듯이 기본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자신의 집에 오는 유대인들을 믿음의 형제로 얻게 된 거다.
눅16:31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이 있듯이 우리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님을 소개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 우리로 당신을 만나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당신보다 6개월 앞서서 세례요한을 미리 보낸 거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사명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잘 닦게 하는 거다. 즉 죄를 깨닫게 하고 마음 밭에 쓸데없는 풀들을 걷어내서 예수님이 오시면 그대로 성령님의 역사가 될 수 있게 하는 거다.
일반적으로 밭에 씨를 심기 전에 풀도 뽑고 밭을 갈고 이랑을 내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려면 사전에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전작업을 해야 할 게 많다. 그래야 주님이 오셔서 좋은 씨를 심으면 물도 주고 풀도 매서 신앙이 성장이 된다. 교회 인도자는 이 일을 잘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한다.
진리말씀을 듣는 예배시간에 자꾸 빠지면 이게 습관이 되어서 나중에는 ‘안 듣자 주의’가 되고, 계속 예배에 빠지게 된다. 성경을 읽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자꾸 읽으면 읽는 게 습관화가 되고, 나중에는 재미로 들어간다. 처음부터 되는 게 아니라 시련과 연단을 받으며 좋은 쪽으로 자꾸 힘을 쓰고 찾고 해야 좋은 습관화가 된다. 세상의 일도 안 하려고 하면 나중에는 안 하는 사람이 된다. 세상의 일은 믿음의 지혜를 써서 ‘이 정도까지 하면 되겠다’ 라는 게 있는 거다. 그리고 먼저 할 게 있고 뒤에 할 게 있는 거다. 이런 면에 지혜를 써야 한다. 안 그러면 몸이 다 망가진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오셨는데,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여자가 이방 불신자처럼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불쌍한 여자이기 때문에 찾아오신 게 아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비록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웠지만 야곱의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 어찌 보면 이 사마리아 여자가 우리보다 믿음이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마음을 보시고 찾아가신 거다.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는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가 우리가 이 주님을 박대하면 그냥 가신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찾아오시는 거지 물질을 보고 찾아오시는 게 아니다.
마리아는 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감염이 되게 했는데 오늘날 나는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감염시켰느냐,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들로부터 세성정신이 감염이 되었느냐? 나를 아는 자들이 나에게 와서 나로부터 살리는 것을 받느냐, 죽는 것을 받느냐? 나를 아는 자들이 나에게 와서 주님의 일을 본 게 있느냐? 나의 언행심사를 통해 주님을 발견한 자가 있느냐? 이게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로 인해 주님께 영광을 돌린 일이 있느냐, 아니면 나에게 욕을 하고 떠났느냐, 아니면 내가 그들이 좋아서 그들을 따라가고 있느냐? 누가 주격이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싫다고 가버렸느냐, 내가 그들이 싫어서 내가 그들을 피했느냐? 멀어졌던 가까워졌던 육적인 이유에서냐, 영적인 이유에서냐?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믿는 자기가 주격이다. 또한 믿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 중에 진리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는 주격이다. 가정에서도 진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다. 이 책임과 의무가 들어있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믿는 우리에게는 그만큼 의무와 책임이 있는 거다.
마리아를 아는 유대인들이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들이 마리아를 위로하러 올 때 예루살렘을 주격으로 가까워진 건지, 마리아를 주격으로 가까워진 건지? 이들이 마리아 쪽으로 가까워지면 주님으로부터 죽은 게 살아나는 일을 보게 된다. 이러면 미래적으로 희망이 있다. 예수 믿는 자기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종교적인 일을 하는 자를 따라가면 하나님의 역사를 못 본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진다.
성경은 세상과 천국의 축소판이다. 성경은 주름치마와 같아서 주름치마를 죽 펼치면 여러 사람의 옷을 만들 수 있듯이 성경을 펼쳐서 보면 세상과 천국이 다 보이고 우리의 구원도리와 이치가 다 보인다. 그래서 성경을 들고 세상의 미래를 펼쳐서 보면 현재의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가 보이게 된다. 야곱이 열두 아들에 대해 예언을 하는 것에도 이런 게 있다. 이 예언 안에는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사건이 주름이 잡히듯이 축소되어있으니 우리는 이걸 읽고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 중에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바른 믿음을 찾은 사람이 있듯이 우리는 누구와 절친하냐? 성경에 친구가 내 얼굴을 더럽게도 하고 영광스럽게도 한다고 했다. 내가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이 나를 좋아하면 예수라는 친구가 나를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만드신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하면 높여줄까? 어떻게 하면 왕위의 계대가 내려가게 해줄까?’ 라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이 약속이 들어있다.
마리아를 찾아왔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바른 믿음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으니,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으니 얼마나 복된 일이냐? 이 믿음은 마지막 부활은 믿고 들어가는 거고, 현재에서 죽은 믿음이 살아나는 거다. 주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죽을 것은 죽게 만들고, 죽어야 할 것은 죽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이니 전부가 선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생각이 주님께서 이런 주권을 쓰시는 게 자기 생각과는 맞지를 않으니까 자꾸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고한 자들이 예수님을 좋게 말을 했겠느냐, 안 좋게 말을 했겠느냐? 좋은 것도 나쁘게 말할 거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때 알고 있는 대로 말을 하지 않고 자기의 어떤 유익을 놓고 빼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하는 것은 사단의 짓이다. 외식신앙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이런 왜곡된 말을 들으면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겠느냐?
47절-48절: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예수님께서 좋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시는데 왜 이걸 막으려고 하느냐? 계속 이적과 표적을 행하시면 자기들에게 좋을 텐데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공의의 선한 일을 가로막는 것은 마귀 짓이다.
표적이란 놀라운 현상을 말하는데, 세상 일반적으로는 갑자기 순식간에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 나타나는 거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인데, 일반적인 자연이치로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자연이치에 들지 않는 초자연적인 역사도 행하신다. 이 세상의 육적인 이치나 물질적인 모든 이치는 영적 이치를 계시로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이치를 보고 이것을 영원으로 늘려서 생각을 하면 영적인 이치가 된다.
영적인 이치는 본질로 들어가는 거라서 눈에 보이는 물질이치만 아는 지식으로 사는 세상사람들은 알지를 못하고 믿지를 못한다. 그나마 물질이치를 똑바로 알면 좋겠는데 자기의 사적인 감정을 따라 자기의 성격과 성질대로 세상을 사니 일반이치도 다 어그러뜨린다. 그러니 자신들이 볼 때도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세상에서 막 일어나는 거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보고 ‘여자여’ 라고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주석가들을 이것을 “당시에는 어머니에게 존칭으로 ‘여자여’ 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라고 한 것은 믿음의 어머니로서 진리본질의 신앙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데 그러지 않고 결혼식장에 온 사람들의 육적인 기쁨이 연속성으로 이뤄지게 해 달라는 뜻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는 때는 누구의 권고를 따라 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주권에 의해 당신이 알아서 하신다는 거다. 다만 나를 위한 구원의 뜻이 계시면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역사를 하신다. 그런데 믿는 내가 현재적으로 순종도 안 하고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서지도 않은 채 기도를 한다고 해서 들어주시겠느냐? 주님의 일은 인간에게 하는 거지만 신의 영역에 속한 거다. 그래서 육적인 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지만 영적인 면의 병은 병원에서 고치지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본질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면 웬만하면 ‘내가 어떤 면이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진리본질에서 벗어나 세상성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의가 하나님의 역사를 못 보고 못 알아듣는다. 세상의 역사는 빤히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뭘 요구하시는구나’ 하는 것은 잘 모른다. 이렇게 되면 근심과 걱정과 고통과 고민에 빠져서 현실과 싸우는 면에 저항을 받게 된다. 그러니 자기 앞에 싫은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 속에서 막 처받는다. 우리는 영인성장 면에서 마음과 정신이 어느 면이 부족하고, 고장이 났고, 미달이 되어있고, 비뚤어져 있는지를 알고 고쳐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주권으로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는데, 사실은 나타난 표면 속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죄를 사해주고 영적인 영인을 온전케 하는 역사가 들어있다. 이 일은 병원이나 세상에서 도통을 했다고 하는 사람도 못한다. 신이신 하나님이라야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은 성령님의 역사다. 세상사람들과 세상 속화된 교인들은 이걸 알지 못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병 고침 속에서 이 역사를 보지 못했다. 지금도 교인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죄를 사해주고 영적인 영인을 온전케 하는 역사는 보지 못하고 주님의 만능의 능력으로 자기의 육적이고 세상적인 소원 목적을 채워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못 고쳐서 원수를 삼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다. 이건 캄캄한 거다. 그러니 마귀가 와서 늘 자기를 가지고 논다.
교회는 성도들을 영능의 실력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천국의 사람이 되게 하는 곳인데 오늘날 교회가 말은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면서 물질중심으로 사람을 엮어놓고, 인정정실로 묶어놓아서 도무지 생명의 말씀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그런 곳에서 탈출을 해서 죄에서 자유를 얻고 영능의 실력을 쌓아간다.
예수를 믿는다면 자기가 살아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외식신앙, 인본주의, 육본주의, 세상주의에 붙어서 자기의 신앙양심을 속이고 있다면 이 사람은 죽은 나사로처럼 죽음에 포로가 되어서 무덤 속에서 썩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자기를 인정정실이 살려주겠느냐? 세상의 그 어떤 권으로도 살려낼 수가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직 주님만이 살리신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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