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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25] 2025년 12월 21일 일요일
낮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2월 21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하게 개였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쌀쌀한 날씨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충북도가 추진 중인 '일하는 밥퍼' 사업이 새로운 노인 근로·복지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60세 이상 어르신이나 취약 계층에게 간단한 소일거리(농산물 다듬기, 공산품 조립 등)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 화폐를 지급하며 자존감 회복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돕는 사업입니다.
근로 시간은 하루 2~3시간. 2시간 일하면 1만 원, 3시간이면 1만 5,000원이 지역 화폐나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된다고 합니다.
장자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잘 설명해도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해시킬 수 없고, 아무리 겨울의 얼음을 설명해도 여름벌레는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해력이 다른 만큼 문제 해결 능력 또한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아끼는 한 후배는 15년 전 큰 회사를 잘 운영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속아서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살던 집마저 경매로 넘어가 중학생 자녀들을 친척에게 맡겨야 할 정도로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하다가 어느 날 고향집에서부터 서울까지 2주 동안 홀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그 뒤로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요사이 작은 규모지만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그는 저에게 “고통스러웠지만 나를 속인 사람을 용서하고 실수한 나 자신도 수용하게 됐다.”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홀로 걸은 시간이 곧, 높은 곳에 오르는 과정 아니었을까요? 그 시간을 계기로 그는 끊임없이 의식을 변화시켜 온 것입니다.
후배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높은 곳에 오르는 방법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평소에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높은 의식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의식을 얻는 일이 어찌 쉽겠습니까.
높은 의식은, 이전과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깨닫는 노력 속에 천천히 자라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 조절로 몸을 단련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히 훈련하지 않으면 높은 의식은 생기지 않습니다.
낮은 곳에서 보는 세상은 막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용기가 나지 않고 두려움과 좌절, 게으름을 안고 살수 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면, 보이는 세상이 넓어지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용기와 희망,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일상 속 ‘높은 곳’이 어디일까 늘 확인하며 살고 싶습니다.(출처 ; 좋은생각 2026년 1월호에서, 낮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 윤재윤 변호사)
●누구나 쳐다볼 수 있는 길가 높은 곳에서 네 갈래 길 한복판에 서서 소리 지른다. 내 말 좀 들어 보라고(잠8:2)
●우리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살아간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하지, 미루거나 외면하지 말자. 다시는 이 길을 지나지 않을 테니까.(스티븐 그렐렛)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기도 김포시 돌문로 15번길 45 다솜마을 아파트 103동 101호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양심이라는 돌주먹
88 서울올림픽 복싱 결승에서 라이트미들급 국가대표 박시헌은 당대를 호령하던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와 맞붙었습니다. “레벨이 달랐다”고 박시헌은 고백했습니다. 당시 경기를 유튜브로 다시 봤습니다. 선방했지만 안타깝게도 수준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라운드 종료 후, 그러나 주심이 들어 올린 건 박시헌의 손이었습니다. 3대2 판정승. 박시헌은 웃지 못했습니다. 본인조차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는 머쓱하게 상대를 끌어안았습니다. 이 경기는 AFP통신이 뽑은 역대 올림픽 5대 판정 논란에 선정됐습니다.
스물세 살의 전도유망한 복서 박시헌은 대회 직후 은퇴했습니다. 승리를 도둑질했다는 야유가 거셌습니다. 은퇴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지도자로 전향했지만 경기 중 석연찮은 판정이 나와도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대인기피증, 극단적 충동까지 찾아왔습니다. 그가 겪은 비극의 일부가 영화 ‘카운트’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동네 꼬마들이 아들에게 “너네 아빠 금메달 가짜!”라고 놀리는 장면 등은 모두 실화입니다. 영화에서 박시헌 역 주인공이 “금메달을 반납하고 싶다”고 하자, 높으신 분들은 힐난합니다. “올림픽이 장난이야?”
그리고 지난 9월, 로이 존스 주니어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훈련장에 박시헌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며 포옹할 때만 해도 그 의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던 존스는 박시헌이 금메달을 꺼내 보이자, 금세 얼굴을 쓸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30년 넘게 당신을 링 위에서 기다렸다”며 “잘못된 걸 알고 금메달을 돌려준다”고 박시헌은 말했습니다. 한국말이 채 통역되기도 전에 과거의 경쟁자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존스는 “신의 은혜”라고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였습니다.
양심의 가책, 이 퇴색된 옛말이 아직 누군가를 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습니다. 2년 전 이뤄진, 존스가 늦게나마 공개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만남. 결코 영리한 선택이라 할 수는 없는,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일로 여겨질 것입니다. 박시헌은 반칙하지 않았습니다. IOC는 모든 혐의를 기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홈 어드밴티지를 주장할 수도 있는 시합이었습니다. 요즘대로라면,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 운운하며 법적 조치로 여론을 틀어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도 피해자”라며 역공을 펼 수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계책을 집어치우고, 그는 남자다움을 택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피 터지게 싸우고도 잘못 앞에서 깍듯이 용서를 구하는 것, 주먹의 무도(武道)일 것입니다. 그저 이기기 위해 무도(無道)해지는 세상에서 더는 남자다움에 대해 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남자가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그러나 남자다움을 논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할 것입니다. 정의로움을 세 치 혀로 재잘대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습니다. 말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잡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을 용기도 없이, 가당찮은 금(金)을 가슴팍에 치장한 가짜 투사들은 오늘도 안전하고 어설픈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박시헌의 금메달은 지금까지 한국 권투가 따낸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한국에 없습니다. “주인에게 줬다”고 했습니다. 왕좌 탈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정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링에서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카운트를 열까지 셉니다. 셈이 다하기 전 끝내 옳은 방향으로 몸을 트는 일, 패배만큼 불의에 아파하는 일, 그리하여 끝내 상처에 영광을 안기는 일, 지금 한국에 필요한 성취는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재도약은 그때 시작될 것입니다.(출처 ; 에스프레소에서,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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