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28] 2026년 1월 11일 일요일
더 큰 마을을 만들어가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11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차갑습니다. 바랍도 불고 있네요! 아무쪼록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시형 박사는 올해(2025년) 92세이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강연 준비를 하며, 최신 연구 동향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 같은 하루 일과 중 식사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네요. 이 박사는 “식사는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하루의 리듬을 조율하는 중요한 행위”라고 강조했다는 겁니다.
미국 흑인들의 삶을 변화시켜 준 두 흑인 인권운동가가 있습니다. 맬컴 X와 마틴 루터 킹입니다. 두 사람은 ‘흑인 인권’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맬컴X는 폭력을 불사했지만,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을 주장했습니다.
맬컴X는 원래 목사의 아들이었고 개신교인이었지만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이슬람 국가 단체에 가입했고,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무슬림이 되고 개명하는데 직접적 여향을 준 인물입니다. 그는 백인과는 절대로 공존이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킹 목사는 백인과의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킹 목사는 이슬람 국가에서 탈퇴했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는 가운데 맬컴X는 이슬람주의자에게 암살당했고, 킹 목사는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암살당할 때 두 사람의 나이가 똑같이 39세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마을의 차이입니다.
맬컴X는 자신의 마을을 점점 축소했고, 킹 목사는 마을을 넓혀갔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후, 킹 목사의 마을은 더 확장되었습니다. 킹 목사의 생일은 미국의 공휴일이 되었고, LA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거리가 만들어졌고, 워싱턴 DC에는 그의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좁은 마을, 아니 마을 없이 살아가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큰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끔찍이 싫었던 동네로 들어가 만나기조차 부끄러웠던 사람들을 향하여 메시아를 선포했습니다.
머릿속의 마을이 넓어져야 다시 마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메시아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의 마을이 넓어져야 다시 마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함께 할 마을이 살맛 나는 동네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물동이를 붙들고 살았던 우리의 삶에서 벗어나 우리를 만나주신 예수님과 함께 넓은 마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가 앞세웠던 지연, 학연, 혈연, 체면, 지방색, 성별, 진영논리 등 쓸모없는 물동이를 버리면 마을이 넓어지고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 모두가 물동이를 버리고 마을로 들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예수마을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출처 ; 빛과 소금 2026년 1월호에서, 이성희 연동교회 원로 목사)
●[마6:14]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삶을 살았고, 내가 지켜보게 하였다.(클라렌스 켈란드)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기도 김포시 돌문로 15번길 45 다솜마을 아파트 103동 101호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더 많은 돈 번다고 인생이 행복해지진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줏빛 염료는 은(銀)만큼이나 비쌌습니다. 보라색은 황제나 높은 귀족들의 옷감에서나 겨우 쓰일 정도였습니다. 키티온 출신의 철학자 제논은 이를 다루던 상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 귀한 염료를 싣고 가다가 아테네 근처에서 난파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후에 제논은 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떠올립니다. “배는 가라앉았지만, 성공적인 항해였다.” 왜 그는 이렇게 상황을 후하게 바라봤을까요?
밑천을 잃은 상인은 하릴없이 아테네를 돌아다녔습니다. 하루는 그는 서점에서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접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 책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선택’에 감동하였으리라. 영웅 헤라클레스가 앞날을 고민할 때, 두 여신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쾌락의 여신은 헤라클레스에게 고통 없는 편안한 삶을 약속했습니다. 반면, 미덕의 여신은 그에게 험하고 힘들어도 가치가 있는 인생을 보여주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미덕의 길을 택했고,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대한 인물로 거듭났습니다.
제논은 부잣집 도련님에, 큰 상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해서 인생이 행복해지지도 만족스러워지지도 않음을 그간의 체험으로 알았으리라. 부(富)는 더 많은 부를 바라게 할 뿐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주변의 질투와 시기라는 부작용도 만만찮습니다. 돈벌이는 중독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제논은 진정 행복하고 바람직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철학은 진정한 부유함을 누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제논은 크라테스라는 철학자를 스승으로 따랐습니다. 크라테스는 제논을 혹독하게 가르쳤습니다. 당시 렌틸콩을 끓인 죽(粥)은 가난한 이들만 먹었습니다. 스승은 제논에게 렌틸콩 죽 단지를 들고 온 거리를 돌아다니게 했습니다. 부유했던 그에게, 이는 멋쟁이들이 가득한 명품 거리에 초라한 행색으로 서 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듯싶습니다. 제논이 쭈뼛거리자, 스승은 지팡이로 렌틸콩 단지를 내려쳤습니다. 죽이 옷에 튀어 엉망진창이 된 모습에 크라테스는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뭐가 창피한 것이냐, 나의 어린 페니키아인아. 부끄러워할 것만 부끄러워하라!”
누더기를 걸친 영혼 깊은 성직자의 맑은 눈빛을 떠올려 보라. 그의 초라한 차림을 비웃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반면, 값비싼 옷과 보석으로 한껏 꾸민 졸부는 어떤가. 사람들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고귀한 인품과 영혼을 갖고 있다면 세상에 주눅 들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없습니다. 후에 제논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만(自滿)처럼 흉한 것은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제논은 꾸준히 검소함을 익혔습니다. 욕심이 없을수록 세상에 덜 휘둘립니다. 제논의 식사는 단출했습니다. 잘 먹을 때도 작은 빵과 조금의 꿀, 적은 양의 향이 좋은 포도주가 전부였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도 피했습니다. 가게 되더라도 언제나 가장 구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논 곁에 모여들었습니다. 그의 흔들림 없는 평온함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한 조각의 빵과 말린 무화과, 그리고 물을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는 굶주림을 가르치는 데도 제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 시대 사람의 평가입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끝없이 쏟아지는 큰비도, 이글거리는 태양도, 무서운 질병도 그를 좌절시키지 못한다. 요란한 잔치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제논은 지치는 일 없이 밤이나 낮이나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렸다.” 제논의 묘비에 적혔다는 글입니다.
제논은 아테네의 색칠한 기둥이 늘어선 회랑(스토아 포이킬레)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논의 생각을 이어받은 자들을 ‘스토아학파’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는 말 잘하는 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에게 말솜씨는 알렉산드로스가 만든 은화와 같았습니다. 보기에는 멋져도 투박한 아티카의 4드라크마 화폐보다 가치가 없습니다. 겉치레에 아무리 신경 써도 깊이와 내용이 없고 진실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올곧게 살아도 험담하는 이는 꼭 있게 마련. 이를 어찌할지 묻자, 제논은 담담하게 답합니다. “비방 중상은 마치 답신을 받지 못한 사신처럼 돌려보내라.” 주변이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며 울컥대지 말고, 평온하고 담대한 마음을 지키는 데만 신경 쓰라는 의미입니다.
제논의 검소한 삶은 역설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왔습니다. 당시 공중목욕탕을 다시 세우는 데 큰돈을 기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는 아흔이 넘게 천수(天壽)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는 제논을 이렇게 평합니다. “나는 행운과 명성에서는 제논보다 더 낫다. 그러나 이성과 교양, 완전한 행복이라는 점에서는 그에게 뒤처진다.”
제논은 “절제는 아름다움의 꽃”이라 했습니다. 그는 “‘조금씩’은 절대 작지 않다”며 우리를 격려하기도 합니다. 욕망을 꾸준히 줄여나가려 노력해야 함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온갖 화려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욕망의 디톡스’를 통해 탐욕을 심으려는 세상에 맞서보시길 권합니다.(출처 ; [안광복의 주말의 철학],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