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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2: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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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성경 : 롬2:12-15
제목 : 믿음과 행위
찬송 : 521(253), 180(168)
롬2:12-15절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해야 할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24)는 말씀과 같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질타의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과 부조리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존경받아야 할 교인들과 목사들의 비리(非理)로 교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교인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자, 교황청에서는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로마교황 ‘레오 10세’(재위기간; 1513-1521)는 칙령을 내려 논쟁을 금지하고 어기는 자는 파문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불복하므로 파문을 당하고, 바울사도가 말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주장하며 개신교 탄생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얻는 다고 하므로, 종교개혁은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미완의 종교개혁이 됐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는‘행위’자체를 배제한 의미가 아니라‘행위’를 전제로 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이‘행위’가 빠진‘믿음’만 강조하다보니 ‘믿는다’고 만 하면 구원을 얻은 것으로 잘 못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롬1: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은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 대표적 성경 구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롬2:12-13절에는‘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므로, 의인은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정의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지켜야 할 의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관련해서, 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이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행28:26)라고 책망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는 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책망만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행함으로 사는 삶이 되어야만, 비로소 영적 변화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님의 진리다’라는 판단과 확신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실행하려는 ‘행함’(Action)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교인들은 말씀을 듣지만 순종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진리를 듣기만 하는 차원과 그 진리를 행동하는 차원 사이에는 놀라운 벽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벽 앞에서 많은 이들이 용기를 잃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했다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좌절하고 포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를 행할 때,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이제까지 누렸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풍요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진리를 행동하는데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진리를 행함은 고난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에게 고난은 필수입니다. 여기서 고난이라 함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신앙적, 영적인 모든 차원의 고난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사람 앞에는 항상 고난의 가시밭길이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은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은 통과해야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진화(進化)할 때, 고통이 따르듯이, 이‘고난과 역경’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 같이, 우리도 주님지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주님을 따를 때 얻는, 주님께서 믿는 이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늘 말씀에 비춰보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구원받고 은혜 받았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는 못해도 말씀대로 온전히 살려는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박현식 목사’(한국목회임지연구소)님의 “이런 목사님을 찾습니다” 과연 있을까? 라는 칼럼에 나오는 글입니다.
오래전 전, 텔레비전 공익광고에 ‘하루 1분만 투자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캠페인 내용입니다.
출근길에 남의 집 대문 밖에 떨어져있는 신문을 주워 담 너머로 던져 넣어주는데 6초, 횡단보도에서 어르신을 부축하여 건너는데 23초, 사무실에서 후배를 위해 커피 한잔 타 주는데 27초, 버스에서 하차 벨을 대신 눌러주는데 4초가 걸린다는 내용입니다. 이 캠페인은 우리사회가 남에 대한 배려(配慮)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의 기초질서를 잘 지킴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큰 배려입니다.
소설가 ‘표문태’ 씨의 단편 소설 중에서 ‘마구간의 진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값비싼 말 한 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무더운 여름날 이 말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마을의 모든 유지와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 말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장시간 회의를 열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그 마을에서 조금 모자란다고 주민들에게 조롱당하던 한 청년이 잃어버린 말을 끌고 왔습니다. 모두 놀라서 “아니,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이 말을 찾을 수 있었던 거지?”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그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 이 말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제가 이 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니까 너무 간단했습니다. 제가 말이라면 이 무더위에 물을 마시고 싶을 것 같아서 시냇가를 찾아갔죠. 거기서 말처럼 몸을 구부리고 앉아서 물을 마셨습니다. 물을 다 마시니까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시원한 숲에 가서 좀 쉬어야겠구나, 그래서 마을 뒤에 있는 숲에 가보니 거기에 말이 있길래 이렇게 끌고 왔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랑의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민주화가 급속히 확산된 반면 기초질서에 대한 의무나 책임은 소홀해졌습니다. 기초질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더욱이 사회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을 위한 조그만 배려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영국의 황태자‘윈저 공’이 인도 대표인 한‘라자’(지방 토후)를 런던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연회가 끝날 무렵 시종들이 들고 온 손 씻는 물을‘라자’가 마시는 물로 오인하여 단숨에 들이켜 버린 해프닝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윈저 공’도 태연하게 담소를 즐기며 자기 앞의 손 씻는 물을 인도인처럼 마셨습니다. 다른 참석자들도 모두 물을 마셨고 연회는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국은 인도와의 외교에서 이익을 보았다고 합니다.
만약‘윈저 공’이 손님에게 물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준다며 우아하게 손을 씻어 보였다면 연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윈저 공’이 자신도 손 씻는 물을 마심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지혜가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우리들이 솔선수범해서 질서를 지킴으로,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 좌회전할 일이 있어, 끼어들기를 하려고 하는데 뒤차가 빵빵거리기에 잠시 머무려고 하는데 뒤차가 내 차 앞으로 급속하게 들어와 막더니, 곧바로 좌회전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하였습니다. 남은 끼어들기를 하면 빵빵거리던 사람이 자기는 기분 나쁘다고 앞차를 가로 막는 것도 모자라, 좌회전 차선으로 끼어들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내로남불’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끼어들기를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잠시 뒤차가 기다려 주면 5초도 안 걸리는데, 그 시간마저 기다려 주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것은 자기는 아무렇지 않게 끼어들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묵묵히 섬기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자랑하지 않고, 이웃을 배려하며, 조건 없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복음을 전하고 증거 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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