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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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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통합 교단지)에서 신년특집 원고를 부탁해와서 기고했습니다. [영적 갈망의 시대 / 무속과 영성 사이] 라는 특집을 기획하여 세 번째 순서로 제게 "영적 권위가 사라진 교회" 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하더군요. 평소 제 생각으로는 무너진 영적권위의 회복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여겨 사양하지 않고 글을 보냈습니다. 부끄럽지만 중요하다 생각해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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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 "세속의 힘을 잃어야 교회가 산다"
목사로서 안타까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전도하기가, 목회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때가 또 있었나 싶다. 자동차 뒤꽁무니에 있었던 그 많던 물고기 표시가 없어진 시대, 아파트 대문에 교패(敎牌)를 슬그머니 떼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기독교와 교회가 욕을 먹는 때이다. 영적권위는 물론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대접도 받기 어려운 시대에 교회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하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이 다 떠나간 시대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청년들에게 이 큰 숙제를 넘겨주기가 마음 아플 따름이다.
요즘, 오래전 읽은 [가톨릭 교회사] 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알란 슈레크 라는 미국 프란치스코 대학의 신학교수가 쓴 책인데, 가톨릭본부에서 새신자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쉽게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일반신도가 이해하기 쉽게 집필했다는 책이다. 2,000년도에 발간된 이 책을 읽고 필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알란 슈레크 라는 저자가 보는 교회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도 정확하다는 것에 대해 놀랐고, 또 하나는 가톨릭에도 이런 신학자가 있다는 것에 놀랐었다.
요즘 필자가 다시 이 책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교회가 속절없이 무너져가고 있는 시대에, 무엇보다 영적 권위가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를 통해 배울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흑역사를 통해, 또 그런 위기를 통해 그들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했으며 대처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분명 반면교사의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가톨릭은 망했어도 여러 번 망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정말 역사적으로 망할 것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됐는데, 그것이 오히려 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되는 반전의 기회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가톨릭교회는 역사적으로 세 번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로 1517년 종교개혁을 든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시 교회는 부패했었다고 하면서 종교개혁이 그런 교회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린 사건이 됐다고 말한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종교개혁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분노의 사건이었고 형제들이 떠나간 슬픈 사건이었지만 그는 역설적이게도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는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15세기 말부터 불어 닥친 수많은 문제점의 심연에서 교회는 다시 교회 안에서의 쇄신작업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여 바른 믿음, 바른 봉헌으로 무장한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p.100,219) 그 결과 돈과 힘으로 밀어붙였던 선교방식과는 전혀 다른 선교를 추구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생긴 선교회가 바로 예수회였다. 프란시스 자비에르, 마테오리치 같은 선교사들이 다시금 주님의 방법인 희생과 순교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1870년 이탈리아의 세속군부가 교황령을 탈취했던 때라고 말한다. 1,500년 가까이 세상을 호령하던 교황의 그 막강한 힘이 세속의 힘에 의해 무력화되던 때에 다들 교회는 망했다고 한탄했지만 오히려 그 굴욕이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축복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황령은 세속의 군사력에 의해 탈취되었고 이로서 교회가 유럽에서 정치적인 세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기나긴 역사는 끝이 나게 되었다. 교회나 많은 신자의 눈에는 이런 교황령의 멸망과 입헌정부의 등장이 비극으로 보였으나 실제로 이것은 하나의 축복이 되고 교회로서는 기회가 되었다. 교회와 국가의 연대가 종식되자 가일층 그 본연의 임무인 영성개발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p.130)
세 번째 사건은 독재자 무솔리니가 교회의 땅을 축소시켰을 때라고 하였다.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무솔리니는 교회의 땅을 현재의 바티칸으로 축소해버린 것인데, 그것은 바티칸을 얻어 독립한 것이 아니라 바티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땅을 다 잃은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오히려 교회로서는 커다란 은총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로서는 커다란 은총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권위가 지상왕국을 소유함으로써 주어진다는 생각을 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다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p.147)
지난 1년, 한국사회는 크나 큰 혼란을 경험했고 교회는 그 혼란의 정점에 있었던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지난 20~30년간 교회는 꾸준하게 몸집을 키우더니 이제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사회와 국가를 향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데 그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위기로 되돌아왔다. 교회의 위기는 어디서 초래되는가? 그것은 교회가 세속의 힘을 가질 때이다. 교회의 영적권위는 언제 무너지는가? 그것은 십자가가 아닌 세속의 권세를 추구할 때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를 비판하는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 종교재판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 이 땅에 다시 오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자 노 추기경인 대심문관이 예수를 체포하여 감방에 가둔다. 그리고는 왜 교회의 질서를 방해하느냐고 몰아세우고는 화형에 처할 것이라 윽박지른다. 노 추기경은 예수의 잘못은 세 개라고 말한다. “당신은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제안을 거절했소! 인간은 자유보다 빵을 원하오.”, “당신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기적을 보여줘야 했소! 인간은 기적 없이는 믿지 못하는 존재란 말이오!”, “당신은 세상의 모든 왕국을 거절했소! 하지만 우리는 로마의 권력을 받아들였단 말이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다시 감방에 잡아넣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교회가 이 땅에서 다시금 영적권위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십가가의 길을 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희생하고, 내가 죽는 것 외에는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요12:24) 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십자가가 남을 살리는 상징이 아닌, 한국기독교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하는 상징이 되었음을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에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탠리 존스 목사님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라고 본다. “교회는 선교의 주체이자 객체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교회가 다시 영적권위를 되찾기를 소망한다. 그 방법 외에는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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