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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1-5120] 회개는, 위선자, 끼리끼리, 절박한 소리, 깊은 구렁텅이...
만가지생각 최용우............... 조회 수 10 추천 수 0 2026.01.18 07:13:21
[원고지 한장 칼럼]
5111. 회개는
회개는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명령하는 ‘타동사’가 아닙니다. 회개는 ‘제가 회개합니다’라고 하는 ‘자동사’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회개하라 설교하고 설득하고 강요하고 명령하고 강제로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도 다른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며 내가 내 가슴을 치며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5112. 위선자
어떻게 하면 나의 숨은 죄와 허물을 잘 감출 것인가? 혹 들켰다면 어떻게 그럴싸하게 잘 포장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의 숨은 허물을 잘 찾아내어 들출 것인가? 어떻게 그 허물을 효과적으로 비난하여 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상대적으로 나는 높아져서 우쭐댈 것인가? 그런 태도로 사는 사람은 ‘위선자’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5113. 끼리끼리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눅16:19) 부자가 호화로운 옷을 입은 것은 바리새인들이 옷깃에 푸른 술을 길게 늘어뜨린 것에 빗댄 것입니다. 부자가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는 것은 그의 일상의 삶 자체가 비슷한 신분의 사람들이 어울려서 먹고 마시며 자기들 끼리만 교제를 했다는 뜻입니다.
5114. 하늘 법정에서는
부자는 죽어서 하데스(지옥)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눅16:22-23)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히브리 혈통을 가졌기에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지옥의 불쏘시게라고 무시했는데 하늘 법정에서는 그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정작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5115. 절박한 소리
부자는 살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눅16:24-25) “부자 주인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종들에게 밥 한 숟가락만 저에게 주어 이 주린 허기를 면하라고 해 주십시오. 제가 배가 고파 디지겠습니다.” 나사로의 외치는 그 소리가 얼마나 배고프고 절박한 소리인지 부자는 부에 취해 있어서 몰랐습니다.
5116. 이미 다 받았다
부자는 살았을 때 받을 것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눅16:26) 부자의 ‘좋은 것을 받았고’ 앞에 소유격 대명사가 붙어 있는 것은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 안락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사로의 고난에는 소유격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나사로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유대 사회의 구조적 잘못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5117. 깊은 구렁텅이
부자와 나사로 사이의 구렁은 부자가 만든 것입니다.(눅16:26)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는 ‘대문’이라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대문을 넘어 부자의 세계에 진입할 수 없었고 부자는 나사로가 그 경계를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세의 ‘큰 구렁텅이’라는 넘지 못할 경계는 생전에 부자 자신이 만들었던 경계선이었습니다.
5118. 버려두었기 때문에
부자는 재물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힘듭니다.(눅16:26-31) 부자가 음부에 간 것은 문간에 있던 거지 나사로를 핍박하고 괴롭혀서가 아니라 그냥 두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느라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강남 바리새인들 모습도 똑같습니다.
5119. 부자와 천국
부자는 평생 자기 소유로 자기 안락을 누리고 자기 소유로 자기를 높이는 것뿐인 사람들입니다. 형통과 출세만을 위해 소유를 늘리고 소유 자체가 목적인 인생을 삽니다. 부자는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자이므로 음부에 스스로 저절로 자동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신 것입니다.
5120. 예수님 자신이 종
종에게 “빨리 와서 앉아 먹어라”고 하는 주인은 없습니다.(눅17:7) 링컨이 ‘노예 해방’운동을 했을 때, ‘자본가’들은 이 성경 구절을 자신들의 재산축적과 인간 착취를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종(노예)’를 합법화시켜주는 성경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예수님 자신을 ‘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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