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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30] 2026년 1월 25일 일요일
하나님의 나팔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25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히 춥네요. 아무쪼록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일랜드 메이누스 대학 심리학과 교수팀이 영국 성인 9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날 때 느끼는 슬픔이 가족을 잃었을 때만큼 크고 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체감해 온 경험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간증자의 자리에 서게 될 때마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묻습니다.
“하나님, 제가 성도님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요? 이 감격의 순간에 무엇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은 항상 짧지만 강력하고도 분명한 한마디를 심어주십니다.
‘감사함을 알게 해줘라. 그리고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해줘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결국 우리의 완전한 자유는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 말씀에, 저는 혹여나 제 뜻대로 하려는 욕심의 세포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거둬들입니다.
감사는 형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술만의 움직임이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참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고난 속에서 피어납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난을 통과한 감사는 그 깊이가 다릅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으면 언젠가는 진정한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제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고백입니다. 마치 제 영혼의 뿌리 깊은 곳을 흔드는 강물과 같습니다. 감사함은 단지 말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삶 그 자체가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거듭 증거하건대,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절망과 억압의 땅,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고, 자유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땅,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요구되는 땅…. 그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저를 보살피셨고, 마침내 이곳 대한민국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수많은 위기와 죽음의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구원자이시며, 저의 보호자이십니다. 제 생명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선물입니다.”(출처 ; 목숨을 건 갈증, 자유, 정유나 지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각자의 세계관이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은 말로 나누는 포옹과도 같다.(윤성근)
●저는 16대의 휴대폰으로 일요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끼리 서로 연동이 되어서, 제가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휴대폰에 이름이 입력이 되곤 합니다. 하오니, 편지가 거듭 반복해서 올 경우, 꼭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010-3234-3038)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원치 않는 분에게는 결코 보내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기도 김포시 돌문로 15번길 45 다솜마을 아파트 103동 101호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이 답장을 보내와 너무 기뻤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병세가 악화돼 메시지를 받을 수 없게 되셨다면 어찌하나!’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려다 멈췄습니다. 선생님은 지난가을부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자택에서 지냅니다. 당시 나는 ‘월간조선’ 기사를 보고 선생님께 전화로 문안했습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아름답고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모든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셨습니다. 크나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분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 유럽의 프리마돈나’. 그는 지난 10여 년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음악 학교를 세우고, 우물 40여 개를 파서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몇 해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항암 치료는 받지 않고, 여생을 믿음과 평안 중에 지냅니다.
선생님은 천주교인이지만 20여 년 전 몇 해에 걸쳐 함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특별히 찬양으로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은퇴를 앞두고 주님 앞에서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댁에 가보니 기도실을 따로 만들고 수도자로 살고 있었고, 기도 중에 받은 신비로운 은혜 체험을 고백했습니다.
자동차는 승합차로 바꾸었습니다. 나눌 물품을 가득 싣고 직접 운전해 고아원, 양로원을 찾아 노래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때로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찬양했습니다. 당시 성당에서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을 가볍게 여겨 잘 부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부르면 모두 거룩한 감동에 사로잡혔기에 성당도 CCM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거룩함과 속됨이 따로 있겠는가! 어떤 마음, 어떤 체험과 고백이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리라.
아프리카도 오가며 가장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평생 헌신할 곳을 찾고 재산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말라위에 처음 음악 학교를 열었을 때는 뜻밖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9시에 모이자 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계도 시간 개념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며 기다렸습니다. 진실한 기도와 사랑이 그렇게 이끈 것이리라!
선생님은 유럽을 다녀오면서 내게 그림을 찍은 사진을 하나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모습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금빛 액자에 넣어 지금까지도 서재에 두고 있습니다.
문득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선생님이 생일 축하 문자를 받을 수 없다 해도 하늘에서 받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담긴 그림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축하 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너무나 기쁘게도 곧 답신이 왔습니다. “제 생일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작은 그림을 발견했을 때 제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빛나는 두 남성의 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 소식에 달려가는 그림 속 두 남성과 그 그림을 보고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던 한 여성의 가슴은 이미 부활의 소망으로 죽음을 넘어선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죽음을 이긴 믿음에서 영원의 빛이 비쳐옵니다.(출처 ; [산모퉁이 돌고 나니]에서,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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