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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비어야 흐른다
수학시간 딱딱한 삼각자 중앙에 뚫린 구멍을 보며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매끈하게 채워져 있어야 더 튼튼할 것 같은데 왜 굳이 구멍을 낸 것일까. 그 답은 소통에 있었습니다. 구멍이 없으면 종이와 자 사이의 공기가 빠져나가 진공 상태처럼 달라붙어 버립니다. 밀착이 지나치면 오히려 자를 옮기기 어렵고 종이가 찢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성과 인간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면을 지식과 신념으로 빽빽하게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안에 거룩한 빈 공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내 주장과 확신, 옳음이 꽉 차 있다면 그 관계는 숨 막히는 밀착 상태가 되어 작은 움직임에도 서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 안의 견고한 진(고후 10:4)을 허물고 신령한 구멍 하나를 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삼각자 구멍이 자의 뒤틀림을 방지하듯 우리 마음의 빈 곳은 관계의 갈등 속에서도 내면이 부서지지 않도록 영적 유연성을 지켜줍니다. 우리 마음의 삼각자에는 타인의 숨결이 드나들고 하나님의 손길이 머물 수 있는 따스한 빈 공간이 있나요. 채우지 않아 더 아름다운, 그 비어 있음이 우리를 성숙한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겨자씨/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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