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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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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신학교 교수들에게]
기독교인이 타종교와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목사나 신학교 교수가 성서나 신학자 인용 없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 언어의 물을 빼고, 기독교가 준 계급장 떼고, 성경 인용하지 않고, 비기독교인의 언어와 용어로 한 시간이라도 말하고 두 페이지의 글을 쓸 수 없다면, 그는 기독교 목사나 신학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냈는데, 오늘 한국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교회에서 내몰고, 신학교 교수는 '신학교'를 너무 사랑하여, 교수직을 지키기 위해서, 위험한 예수를 대형교회 제사장과 빌라도에게 넘겨 준다.
사적 신학 버리고 공적 신학 연습하자. 개혁한답시고 500년 전 신학, 50년 전 서구 신학 우려먹는 일 중단하고 지금 신학하자. 신학자라면 최소한 1년에 한 번이라도 기독교 교리적 언어의 물을 빼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독교적인 글을 쓰고 강의해 보라. 일반 신문에 칼럼 하나 올려 보라. 그런 글을 쓰려고 자판기를 치기 시작하면, 과연 내가 바른 목회와 신학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공적' 신학을 비기독교인에게 이야기해 보라.
위키백과에 이름 올리고 디비피아에 신학논문 올린다고 누가 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설교와 내가 쓴 논문을 비기독교인이 듣거나 읽지 않는다면, 나는 '세상의 빛'이나 '세상의 소금'이 아니다. 언제 당신을 '교회의 빛'으로 불렀던가? 교회 안에서 빛나기 위해서 그만 애써라. 확증편향증에 걸린 한국 교인들을 더 그 길로 몰아가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에 불과하다.
강단 대신 차라리 저울을 속이지 않는 가게로 가라.
교단 대신 차라리 독거노인 돌보는 복지사가 되라.
'내가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배달부가 되는 게 낫다.
팬데믹이 와도 무교, 유교, 불교는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기들의 말을 해야 하는 개신교는 크게 쇠퇴했다. 보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 소금처럼 녹아서 쇠하였다면, 세례요한처럼 예수를 위해 쇠하였다면, 신앙도 유지하고 성장도 했겠지만, 주일 예배 모이는 숫자에 연연하는 성장을 추구했기에 이제는 갈 방향을 잃었다.
고려말 불교가 왜 망했는가? 불승이 없어서 망했는가? 천지빼까리였다.
조선말 유교가 왜 망했는가? 유학자가 없어서 망했는가? 문집도 넘쳤다.
해방 후 천도교가 왜 망했는가? 변하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교회 우물 안이 온실처럼 평안해도 그것은 거짓 평화요
교회와 신학교의 교권을 차지해도 그것은 가짜 힘이다.
페북과 유투브에서 수 천의 좋아요를 받아도 그건 신기루다.
곧 우물안 물이 마르고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곧 교회와 신학교의 상당수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곧 좋아요를 눌렀던 이들이 돌아서서 손가락을 씻을 것이다.
다 나 때문이요, 내 탓이다. 내가 사이비다.
목사도, 신학교 교수도 아닌 자의 말이 과했으면 용서하시라.
--몇 년 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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