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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일요 편지 3632]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세속적 인본주의 세계관과 기독교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2월 8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도 이곳 김포는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히 춥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한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추천을 누르는 공간입니다. 인간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최근 새로 생겨난 소셜미디어(SNS) 몰트북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나타나는 문구입니다. AI만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투표할 수 있는 ‘AI용 카톡방’, ‘AI용 X’입니다.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인공지능끼리 대화하고 토론하는 ‘AI 전용 SNS’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두 번째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인간이 죄를 지어 멸망의 자리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시고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중하게 여기셨기에 그 아들 예수를 죄인의 자리와 죽음의 자리에 던지셨을까요?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실로부터 시작해서 목숨 걸고 죄인 인간을 사랑하신 사실로 확증됩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인 인본주의(Humannism)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인간 존엄성은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이라는 기독교의 요체를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인본주의 앞에 ‘세속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지칭하는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세속적 인본주의에서는 창조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므로 인간의 피조물적 기원에 반대하며, 영혼의 존재와 부활과 영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속적 인본주의는 현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 밖 세상뿐 아니라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도 은밀하게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통계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출석하지만, 삶의 가치관이 세속적이라면 삶에서의 성령의 열매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출처 ; 빛과 소금 2026년 2월에서, 신문환 연대 명예교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 사람이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행복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희망을 갖는 것, 둘째는 할 일이 있는 것, 셋째는 사랑하는 것이다.(윌리엄 바클리)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북한은 굳이 남침할 필요도 없고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의 저출산을 경고한 1월 초, 페이스북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득남했습니다.” 신생아 영상과 함께 올라온 출생 신고였습니다. 50년 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는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탄생은 귀하고 축복받을 일입니다. 그런데 저 소식은 파란만장한 아버지 때문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1982년 함경북도 회령의 탄광촌에서 태어났습니다. 6·25 때 잡힌 국군포로 중 전향한 사람들, 북한 출신이지만 전쟁 때 남한에 우호적인 행위를 하거나 다른 이유로 추방된 사람들, 그들을 관리·통제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온갖 사투리를 다 들으며 자란 소년의 장래 희망은 군인이었습니다. 남조선 괴뢰와 미 제국주의자들의 착취로 고통받는 남한 인민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닥쳤습니다. 배급이 줄고 지연되더니 끊겼습니다. 식량과 바꿀 수 있다면 뭐든 장마당에 내다 팔았습니다. 수령의 은혜고 뭐고 닭 한 마리만 준다면 어느 나라로 가도 상관없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사회주의 낙원에서 아침마다 누가 굶어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웃이 죽어도 문상을 가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생명줄은 탄광에서 나오는 화물 열차였습니다. 소년은 배낭을 지고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 석탄을 훔치고 열차가 멈추기 전에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뎠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왼쪽 무릎과 발목 사이가 너덜너덜했습니다. 왼손도 덜렁거렸습니다. 열차 바퀴가 지나간 것입니다. 열네 살 소년은 마취제도 진통제도 없는 병원 수술대로 옮겨졌습니다. 의사가 톱으로 무릎을 썰었고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습니다. 긴 수술 중에 몇 번을 기절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소년의 뺨을 때렸습니다. 때리면서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
그것은 소년을 평생 따라다닐 질문이었습니다. 이름은 지성호.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고 꽃제비(거지)로 살던 그는 2006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습니다.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그해 7월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약 1만㎞를 걷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는 북한 인권 단체를 이끌고 대북 라디오 방송을 하며 중국에서 곤경에 처한 탈북 여성들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입국하자마자 의수와 의족을 받았지만, 그는 목발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미 의회 국정연설 중 소개된 지 씨가 목발을 번쩍 들어 올린 장면을 기억할 것입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그 목발은 생에 대한 의지, 자유를 향한 열망의 상징입니다. 긴 절망 끝에 그는 아버지에게 목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성한 팔과 다리로 뭐든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올해로 탈북 20년. 한국에서 극빈층으로 생활을 시작한 지성호 씨는 지금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지사입니다. 오랜만에 전화해 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하면서 머스크의 경고를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 낳았습니다(웃음).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며칠 있었는데, 제일 기쁜 건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장애 때문에 저는 마음에 빚이 있었거든요. 북한 아이들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50㎞, 멀고도 가까운 그곳의 참혹한 현실을 지성호 씨의 몸이 증언합니다. 아버지가 된 이 남자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얻는 날까지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합니다. 한 팔과 한 다리의 힘으로 밀고 가는 불굴의 희망. ‘너는 왜 살아야 하느냐?’는 그 삶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출처 ; [태평로]에서,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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