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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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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20절-22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0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이 명절은 전 이스라엘의 명절이다. 세상사람들의 명절은 귀신에게 제사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하지만 구원 얻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절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을 한다.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는 창세 이후 마지막 그날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포함이 된다. 지금 예수 믿는 우리도 영적 이스라엘이다.
영적 이스라엘이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는 것으로 아브라함의 구원계대 생명계대를 이어받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신앙노선이다. 소속이 그렇고, 입장이 그렇다. 소속은 되어있으면서 입장은 다른 데로 되어있으면 아니다. 구원 얻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지키고 다스리는 실력배양을 하고, 죄를 이기고, 자기의 주격적 지식이 선악과를 먹는 이해타산을 다 버리고 생명과를 먹는 하나님의 이해타산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믿는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이룰구원의 연속이다. 하루하루를 인간창조의 목적인 인격과 성품이 주님처럼 닮는 구원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이 하루하루를 무시하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며 사는 사람은 요행이나 바라게 된다. 이건 신앙 믿음이 아니다. 자기의 현재의 상태는 하루하루를 거쳐오면서 된 거다. 이걸 무시할 거냐? 앞으로 또 무시하며 살 거냐?
회개에는 하루하루를 이룰구원이 없이 헛으로 살아온 것도 포함이 되는 거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도 다 토해버려야 네가 구원이 된다는 거다. 자기 속에 죄적인 것을 넣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봐야 말씀을 자기의 육적 세상적인 것에 이용만 할 뿐 자기를 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없다. 이러면 믿음의 사람이 안 되고 점점 더 악하게 된다. 이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유월절은 죄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있는 거다. 이방나라는 죄에서 해방이 없으니 이 명절이 있을 수 없다. 이 명절에 예배하러 한두 사람만 오겠느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면서 양의 피로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이 명절에 빠진 사람이 없을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헬라인은 이방인인데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 나라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유월절을 맞아 하나님께 예배하러 유대나라로 왔다. 이게 옳은 거다. 와야 옳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다. 소식만 듣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 헬라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과 비교를 하면 정말 돋보인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면서도 예수를 믿는 헬라인 중에 누구와 사귀고 싶으냐?
행17:에 보면 많은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핍박하는데 경건한 헬라인들이 사도들을 따랐다. 그런가 하면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사도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받아 간 일도 있다. 솔로몬 왕 때 에디오피아 여왕이 솔로몬에게 와서 솔로몬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갔고, 신약에 와서는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복음을 받아 갔다. 솔로몬에게 와서 지혜를 받아 간 에디오피아 여왕은 솔로몬의 소식을 듣고 그 지혜가 탐이 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지혜를 받아 갔다. 이 생각은 옳은 거다. 개 취급을 받던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자의 간청으로 귀신들린 자기 딸이 주님으로부터 나음을 받았다.
주님을 믿고 따르면 손해가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사는 사람의 생각과 사는 방식은 말씀에 놓고 보면 미친 거다. 귀신이 들린 거다. 그래서 평소에는 정상적인 것 같지만 어떤 극한 사건이 오면 악령의 짓이 나온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기를 보고 한탄을 하며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의 잘못된 것을 딱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인들 어떻게 하겠느냐?
옳은 진리를 들을 때 뇌가 비지 않은 이상 옳다는 것을 안다. 이 때 ‘내 것이다’ 하고 그 옳은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하면 주님의 도움으로 고쳐진다. 그런데 멸망을 당할 악한 사람은 옳은 것을 가르쳐 줘도 안 듣는다. 이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하나님의 만능의 능력으로 사람의 이성을 꺾어버릴 수도 있는 거지만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공의가 없어진다. 자기의 이룰구원은 자기의 노력대로 들어가는 거다. 인격의 세계에서는 행한 대로 따르게 된다. 자기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 지식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면 자기에게 옳은 지식이 왔을 때 그 지식을 무시하지 말아라.
구약에 보면 이방인인데도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응답해 달라고 하는 게 있다. 성전은 장소적이지만 이 성전을 영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성전이다. 성역 안이다. 구원 안이다. 혈통적으로 이방인이라고 해도 이룰구원 안에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신다. 이런 기도는 현재도 응답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이다. 아무리 이방인이라고 해도 진정으로 예수님께 돌아오면 특수한 은혜를 받는 거고,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예수=구원’ 이걸 무시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21절-22절: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헬라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빌립에게 가서 ‘우리가 예수님을 뵈옵고자 합니다’ 라고 했다.
헬라는 철학이 발달을 했기 때문에 헬라인들은 철학적 학식이 많다. 빌립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살아온 어부다. 그래서 비교를 하면 빌립이 세상학적으로는 딸릴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의 제자요, 앞으로 천국복음의 대사의 일을 할 사람이요, 인간의 창조목적을 전할 자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학적으로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빌립을 무시하면 안 된다. 세상 철학자들은 지금도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모른다.
헬라인 몇이 자기 나라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복음에 감화를 받았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와서 예수님을 먼저 찾았다. 오늘날 목사들은 목사들끼리 모이면 구원도리에 대해 궁금한 게 아니라, 성경에 관해 궁금한 게 없는 것처럼 ‘교단이 어디냐? 어느 신학을 나왔느냐? 학위가 뭐냐? 교회건물이 크냐? 교인이 몇 명이냐? 세계적인 부흥강사냐?’ 하는 것을 먼저 묻는다.
이런 것들이 예수님과 무슨 관계냐? 구원과 무슨 관계냐? 목사들이 모이면 성경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할 거냐? 구원에 대해 모르고 구원의 이치를 몰라서 목회가 안 되고 있다면 말씀 쪽으로 치우쳐서 나가야지 구원과 관계가 없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은 외식자들이다. 외식자들은 천국복음에 방해자들이요 저주받은 자들이다.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제자 빌립에게 와서 자신들을 예수님께 소개해 달라고 했다. 반면에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인 후에 예수님께서 이적 기사를 나타낸다는 소문을 듣고 ‘내가 죽인 세례요한이 살아났나?’ 하면서 보고자 했는데 이 간절함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간절함과는 다르다. 용어가 같다고 해서 뜻이 같은 것으로 알면 안 된다. ‘사람이 도랑을 친다’와,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친다’ 라고 할 때 ‘친다’고 하는 말이 뜻이 같으냐?
헬라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으니 이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소개받고자 하는 게 옳은 거고 아름답다. 만일 헬라인들이 바리새 교인들이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면 예수님을 소개받을 수 있느냐? 그런데 오늘날 보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자에게 가서 예수님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자가 많다.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좋게 말을 하겠느냐? 오히려 예수를 죽이자고 설득을 할 거다.
예수님 초림 때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오다가 멀리서 헤롯 왕궁이 보이자 ‘메시아는 당연히 저런 웅장하고 화려한 곳에서 나시겠지’ 하고서 헤롯 왕궁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곳이 그만큼 돋보인 거다. 헤롯을 만나서 왕으로 오신 메시아에 대해 물으니 헤롯이 하는 말이 ‘왕은 바로 나다. 유대의 왕은 나뿐이다. 나 외에는 왕이 없다’ 라고 하면서 헤롯이 왕으로 난 사람이 있으면 죽이려는 마음으로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을 불러서 왕이 어디서 나는지를 물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정치를 잘하는 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베들레헴, 즉 떡집에서 나온다, 성경에 정치를 잘하는 곳에서 왕이 나오는 게 아니라 베들레헴, 즉 말씀의 떡집에서 나온다고 예언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세상 속화된 채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자기의 왕으로 모시고 있다. 이런 정신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이요, 속은 도둑이면서 예수의 옷을 입고 있는 거다.
이런 신앙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된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신앙은 뿌리부터 말랐다. ‘단체가 크다 작다. 조직이 있네 없네. 정통이니 아니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생명의 본질에서 떠난 뿌리부터 마른 신앙이다. 이러면 신앙이 자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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