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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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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목사 |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 믿는 자기가 누구의 잣대로, 누구의 저울로 판단을 받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선악과 따먹고 영이 죽고 하나님 앞에 저주받고 타락된 안 믿는 사람들의 지식의 판단을 받는다면 이는 안 믿는 사람만도 못한 거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이 이방신을 믿는, 혹은 잡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는다면 그 수준이 저질이다.
예수님은 무슨 잣대로, 누구의 잣대로 우리를 판단하시느냐? 하늘의 판단이요 하늘의 잣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판단과 하늘의 잣대로 우리를 판단하시는데, 이것을 지식적 학적으로 말을 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판단을 하시고, 성품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으로 판단을 하신다.
믿는 우리의 위치와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진리통치, 생명통치, 아가페 사랑통치를 받는 존재인데 이런 존재가 세상사람들의 잣대로 길림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집에서는 쓸모가 없다. 세상에서는 행동을 규제하지만 하나님의 집에서는 정신과 마음을 하나님의 잣대에 맞추는 양육이다.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것은 말세가 되면 믿는 사람들이 거의가 세상위주, 세상 판의 신앙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말세를 사는 우리는 더욱 힘을 써서 하늘의 기준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믿는 우리의 차원과 수준과 위치가 하나님 다음인데 세상에게 밟히면 되겠느냐?
요즘 기독교계에서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신천지이고 아니고 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어서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성경 전체가 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 신천지도 그렇고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도 그렇고 이런 신앙으로 나가고 있느냐?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게 말세가 되면 신천지와 같은 교회가 많이 불어난다는 말이냐? 지금 이 시대에 정통교회의 교인들과, 신천지 교인들 중에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한 말씀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느 쪽이 더 많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몰아붙이는데, 이 마지막 시대의 교인들이 가룟유다처럼 돈을 좋아하고 돈 때문에 예수 팔고 진리를 파는 속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영접하고,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건데 교회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을 근거로 해서 세상으로 커지고 종교적 세상으로 나간다면 돈을 좋아하는 가룟유다의 정신과 뭐가 다르냐? 이런 게 다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말씀에 들어가는 거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을 어느 교단이나 교파에 소속이 된 것으로 따지지 않고 당신의 속성을 기준으로 따진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것은 말세를 사는 지금의 믿는 사람들이 가룟유다를 닮은 사람이 많다는 거냐, 주님을 닮은 사람이 많다는 거냐?
내가 희한한 말을 들었는데, 요즘 교인들 중에 ‘생활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월급을 천만 원을 받는데 이 중에 생활비로 한 달에 200만 원을 쓴다고 하면 200만 원의 십일조로 20만 원을 하나님께 드리고 800만 원은 은행에 집어넣는 게 생활의 십일조라고 한다. 이게 십일조의 정신에 맞는 거냐? 성경에서 말씀하는 십일조가 이렇게 드리라는 거냐? 이런 잔꾀를 쓰는 게 말씀대로 바로 하고자 하는 발상에서 나온 거냐, 안 하고자 하는 발상에서 나온 거냐? 참으로 희한한 발상이다.
세상은 전부가 하나님의 거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을 인간의 고안으로 이것저것을 만들어서 쓰는 거다. 그러니 세상에 사는 것 자체로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이 나와야 하는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선악과를 먹은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것도 드릴 줄을 모른다. 이건 안 믿는 사람들의 정신으로 사는 거다.
성경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세상만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 자기의 것은 하나도 없다. 특별히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기의 몸을 주님이 피로 사셨으니 하나님의 거다. 그러니 자기의 몸과 생각과 물질을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써야 하는데 자기의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쓰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지 않고 자기의 육을 위해 쓴다는 면에서 불의의 재물이 되는 거고, 그러나 믿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자타의 구원을 위해 써야 한다는 뜻으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 즉 예수님을 사귀라고 하는 거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말씀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단정을 하지 말아라. 성경에 가룟유다를 기록한 것은 가룟유다를 우리에게 데리고 와서 ‘가룟유다의 마음이 좋으냐, 나쁘냐?’ 하고 나에게 묻는 거고, ‘가룟유다의 마음이 나쁘다면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래?’ 하고 묻는 거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지만 예수를 믿지 않을 때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게 많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바탕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처럼 믿기 전에 세상의 욕심을 품은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면 이 사람은 반드시 진리 팔고, 사랑 팔고, 신앙정조를 팔게 된다. 이게 가룟유다다.
우리는 성경을 그냥 읽으면 안 된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때 앞뒤로 보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앞뒤로 보면 그 사람의 정신 사상 품행 정신 방향 목적이 나타난다. 이런 것은 문자적으로만 보면 못 본다. 낱말적으로만 해석을 하려고 하면 자기 생각 자기 마음이 들어간다. 성경은 자기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라고 기록한 거다.
성경에 가룟유다에 대해 기록을 한 것도 가룟유다의 마음바탕을 깨닫게 해서 우리 속에 들어있는 가룟유다와 같은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 거다. 그런데 가룟유다를 보면서 이렇게 깨닫는 것은 없이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았으니 지옥에 갔다고만 하고 있으면 가룟유다를 통해 이룰구원을 이룰 수 있는 깨달음이 없는 거다. 이러면 너도 가룟유다와 같은 거다.
가룟유다가 돈을 좋아해서 예수 팔고, 스승 팔고, 구원을 팔고 세상을 따라갔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어디로 갔겠느냐? 이런 것으로 인해 지옥에 간다면 이 말을 하는 자기는 한 가지도 안 걸리느냐? 한 가지라도 걸려 있다면 자기가 말한 대로 자기는 지옥에 간다는 말이 된다. 성경은 깨닫고 고치라고 기록을 한 건데 자기는 안 고치고 다른 사람을 정죄부터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절대로 안 고쳐진다.
주님의 성품으로 고쳐진 사람은 고쳐진 게 언행심사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이러지 못하는 사람은 말은 많고, 봉사심도 없고, 남 욕을 잘 하고, 남의 흉을 잘 보고, 저주를 잘 하게 된다. 성경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고쳐진다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축복이 되게 하신다. 믿음의 사람은 끝내 승리한다는 말속에는 이런 것도 들어있다. 이게 복의 사람이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구원하려 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서 온전케 하려 함이다. 이게 구원이다. 최종적 심판은 마지막 때 되는 것이니 우리는 그 날이 오기 전에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의 기준에 빨리 맞춰지는 게 복된 사람이다. 이러면 남이 차지하지 못하는 신령한 것을 차지하게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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